동아시아의 비대칭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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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바로 이렇게 묻겠습니다. "동아시아란 무엇인가요."
이병한 님이 말하듯 동아시아는 서양과의 힘 관계와 지역 내부의 경합 관계가 서로 긴밀하게 얽히는 장입니다. 저는 지난 편지에서 나라마다 갈라지는 동아시아 상상에 관해 분량을 할애했는데, 내부의 경합 관계를 주목한 내용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병한 님이 '대서양의 세기에서 태평양의 세기로'라는 선 굵은 이야기를 했으니 저는 이번 편지도 지난 편지에 이어 '동아시아의 균열'에 좀 더 천착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의 대화는 잘 맞물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 대화를 시작하면서 제가 논점들을 포착하겠다고 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맡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의 대화가 공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죠. 협업이 되지 않는다면, 분업이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몇 차례 논점으로 등장했지만 뒤로 미뤄뒀던 동아시아 내의 비대칭성, 중심-주변의 관계, 그리고 국가 단위의 동아시아 상에 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이 될 다음번 편지에서는 균열과 비대칭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가능한 연대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편지이니 상투적으로 연대를 운운하며 마무리지을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이번 편지까지를 거친다면, 제가 생각하는 동아시아 연대의 상을 밝히기 위한 절차를 밟아둘 수 있을 것 같고, 저로서는 그 연대의 상을 지금까지의 제 논의가 이르게 되는 한 가지 귀착지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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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지난번 편지에 이어서 동아시아 상상에는 서양에 의해 인식되고 서양을 향해 인정 투쟁을 한다는 오리엔탈리즘의 동학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으며, 동서 반전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문제군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아시아주의는 서양에 맞선 동양의 연대를 지향했지만, 동시에 동양 민족 내부의 복잡한 갈등과 길항 관계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주의가 대립물로 상정한 서양 자체가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동양 각국의 역학 관계 속에서 출현한 '서양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오늘날에도 동아시아라는 범주를 실감케 하는 것은 가령 이병한 님께서 말씀하시는 미국의 몰락이라는 정치 경제적 조건이나 유럽에 맞선 하나의 문화권이라는 공동 인식이라기보다 제게는 오히려 북핵 문제, 국사의 충돌, 영토 분쟁과 같은 긴장 관계라고 여겨집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동아시아 상상에는 서양과의 힘 관계와 아울러 역내의 경합 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습니다.
그리하여 동아시아론은 더없이 복잡한 방향성을 띠게 됩니다. '동아시아'라는 울림은 확장주의적 내셔널리즘을 견제하거나 새로운 공간 감각을 환기하는 면도 있지만, 동아시아라는 비전은 자국을 지역의 수준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논리로도 활용됩니다. 그것이 동아시아 상상에 균열을 낳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번 편지에서 공을 들였던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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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균열을 인식론의 위상에서 검토한다면, 동아시아는 인식의 대상이지만 동아시아 인식은 인식 주체의 발화 위치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에서 동아시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누가 어떤 동아시아를 인식하는가와 직결됩니다. 따라서 동아시아를 인식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인식하는 주체의 장소성을 추궁하는 쪽으로 바짝 끌어와 동아시아 인식을 음미해야 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결국 "동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를 "동아시아는 누가 왜 발화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인도합니다. 이때 저는 '시좌(視座)'라는 일본어 표현이 유용할 것 같습니다. 시좌라는 말에는 '본다'는 행위와 어디서 보는가라는 '장소성'이 결합되기 때문이죠. 즉, 동아시아 인식을 물으려면 누가 어디서 보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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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묻는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동아시아 시좌가 필요한 것일까요.
한국의 동아시아론 가운데 한국적 조건에 근거한 유의미한 동아시아론이라면, 주변성과 결착된 논의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변'이라는 장소성이 한국의 동아시아론에서 사상의 조건이자 발화의 근거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소위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론'은 절반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절반의 성과라고 말하는 까닭은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론'이 기존의 지역학적 시야에서는 외면 받았던 이중의 비대칭성을 조명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 논의는 동아시아가 세계 체제의 주변에 자리하며, 또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열위에 있다는 조건을 사상적으로 발효시켜 일궈낸 지적 입장입니다.
외부 조건과 힘이 주체의 의지와 힘을 능가할 때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론'은 그 조건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탄력적일 수 있는 주체성을 모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사상에 값합니다. 오리지널리티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지난번 편지에서 거론한 정책론으로 흡수되어 대량 생산되는 동아시아론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절반의 성과'라고 표현해두고 싶습니다. 한국 지식계에서 양산되는 동아시아론을 보면 '주변'이라는 조건으로부터 긴장어린 사상 자원을 빚어내 타국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동아시아'라는 모호한 지평에 한국 측의 기대를 투사하는 식이 되어버릴 위험성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지정학적 주변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대로 한국의 역할론으로 이어질 위험성인 것입니다.
동아시아론의 진정한 사상사적 의의가 바깥에서 주어진 정형화된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장소성에 근거하여 사고를 숙성시키되 그 사고를 타자에게 번역해내고 타자와 고투를 나눠 갖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주변성과 결착된 동아시아론은 절반의 미달이라고도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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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아시아의 비대칭성을 본격적으로 사고해야 할 곳에 이르렀군요. 여전히 여러 동아시아론은 많은 경우 각국의 물리적, 역사적 규모의 차이를 간과하고 국민 국가라는 일률적 전제 아래 한-중-일처럼 나라 이름을 나열하여 동아시아를 표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국가 간 규모의 차이는 서유럽과는 사뭇 다릅니다. 국민 국가 체계를 전제하는 세계체제론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문제군이 이 지역에는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지리적 규모와 역사 경험에서 빚어지는 낙차는 국민 국가에 대한 감각도 불균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불균등한 국가 감각은 동아시아 상상의 균열을 가중시킵니다.
중국은 규모가 서유럽이라 불리는 지역보다 넓으며 다민족 국가입니다. 중국은 유럽의 국가모델로는 실상을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프랑스 중국 현대사 연구자 장 세노는 "중국 현실은 이제 서구의 대안(도전)이 아니라 제3세계나 '선진국'이 모두 겪고 있는 '근대성'의 미해결 주제들의 압축이다"라고 말한 바 있죠.
'중국의 굴기'는 그 규모로 말미암아 동아시아(나아가 아시아) 지역의 동학에서 핵심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규모를 이해하는 인식을 결여한다면 그것은 쉽사리 중국 위협론으로 비쳐집니다. 한편, 지리적 규모에서 대국은 아니지만 경제적 위상과 제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일본도 한국의 동아시아 상으로는 좀처럼 담아내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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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대칭적 규모가 국가 감각과 역사 인식에서 간극이 빚어지는 한 가지 사례로서 고구려사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사 문제가 불거진 직접적 계기는 소위 '동북공정'이었지만, 고구려사 문제는 한국이 냉전기의 고립된 '섬'의 위치에서 벗어나 대륙과의 '국경'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반도의 긴장 국면이 점차 해소되자 북한이라는 유예된 공간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중국과의 민족주의 충돌, 역사 서술의 문제가 부상한 것입니다. 아울러 고구려사 문제로 인해 지금의 정치 주권에 고대사를 귀속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수면 위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고구려사 문제가 한국과 중국 간의 상호인식의 비대칭성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에 보다 주목하고 싶습니다. 사실상 중국의 내부에서 동북공정은 지원 액수로 보건대 핵심적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여론에서도 그다지 회자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국 위협론과 겹쳐지며 사회적 이슈로 달아올랐습니다.
고구려사가 어디에 귀속되어야 하는가보다 이 감각의 낙차는 동아시아를 사고할 때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즉, 한국의 사회 여론에서는 중국 내부 사태의 경중을 가려볼 만한 시각을 지니지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사는 중국과 한국 간의 문제라기보다 한국의 중국 인식에 관한 문제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규모의 차이를 간과하여 발생하는 착시현상은 역사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동아시아 상 자체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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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처럼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인식이나 규모의 낙차를 사고하는 일은 연구 과제로 삼기도 어려우며, 자칫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버거운 작업을 건너뛴다면 쉽사리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국민 국가의 합으로 동아시아를 떠올리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고구려사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 현상에서 엿보이는 국가 규모의 비균질성, 감각의 비대칭성을 어떻게 동아시아 연구에서 유의미한 사고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 균질적인 국가 단위의 관점을 해체해 어떻게 동아시아라는 시좌를 구축할 것이며, 또한 비대칭성에서 빚어지는 복잡한 현실 상황과 착종하는 역사 관계에 어떻게 진입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모색인 것입니다.
알고 계시다시피 제 전공은 사회학인데, 사회학을 비롯해 기성 학문에서는 개인, 사회, 국가라는 분석 범주가 압도적인 중요성을 갖습니다. 그 경우 하나의 사회가 국제 세계의 기본적 구성 단위로 상정되며, 세계를 분할하면 자기 충족적인 문화와 정부, 경제를 가진 유기적인 통일체로서의 사회가 나타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한 사회와 한 개인은 하나의 국민 국가에 속하며, 국제 세계는 복수의 자기 충족적 단위인 '사회=국민 국가'로 구성된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라는 시좌는 개인, 사회, 국가(개인<사회<국가)라는 범주를 달리 생각하도록 요구합니다. 국민 국가 내부는 균질적이지 않으며, 개인의 정체성도 하나의 국적 혹은 사회로 한정되지 않고 중층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간위로 사고한다면 일국을 넘어선 지역 문제를 다룰 때 이해의 최대치는 '상호 작용'이나 '연동 관계'에 그치고 맙니다. 이것으로는 이 지역을 가로지르고 있는 내재적 연관을 포착해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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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물음은 여기에 이릅니다. 동아시아라는 시좌는 진정 국가 단위의 관점을 넘어서서 복잡한 상황과 착종하는 역사 관계로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는가. 그리하여 저는 여러 동아시아론에 삼투해 있는 근대화론의 요소를 주시하게 됩니다.
동아시아 상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국가가 담론의 단위로 설정되는 까닭은 동아시아론이 근대화론의 변형된 판본이라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경제, 안보와 관련된 정책 연구나 사회과학계의 지역 연구만이 아니라 인문학계의 문화 사상 연구도 국가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를 국민 국가의 지역적 종합이 아닌 시좌로서 사고한다는 것은 국민 국가 질서와 근대화론을 되묻고 그것들과 깊이 연관된 오리엔탈리즘, 내재적 식민화, 냉전 체제 하의 분단화, 자본의 세계화, 경제 권역화의 역사 과정을 재검토하기 위함입니다.
그러한 동아시아의 시좌를 만들어내려면 거쳐야 할 사고의 절차가 있습니다. 먼저 서양이라는 거울에 비춰 동아시아의 상을 만드는 사고의 타성을 타파해야 합니다. 유럽 중심주의에 맞서고자 동아시아의 특수성을 내세우는 지역 특수주의는 거꾸로 선 보편성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이 지역을 섣불리 하나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단위로 간주하는 것은 서양 내지 유럽을 참조 항으로 삼아 나오는 발상입니다. 물론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요소는 이미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근대화론의 형태로 동아시아론에 깊이 새겨져 있음은 다시금 환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버거운 절차가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의 경향을 짚어 내거나 서양과 동아시아의 충돌과 길항 관계를 논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인식이나 규모의 비대칭성을 사고하는 일은 다루기도 어렵고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버거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쉽사리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국민 국가의 합으로 동아시아를 떠올리는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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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렇기에 동아시아 상상의 균열, 감정상의 균열의 지점을 주목합니다. 바로 그 간극을 살피는 작업은 한 사회 내부에서 올바른 주장, 일국의 논리가 다른 사회에서는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자각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는 충돌과 경합의 장입니다. 동아시아 상에는 금이 가 있습니다. 동아시아론에는 민족 감정에 기댄 비논리성이 은연중에 잠복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부득불 대면할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의 참상입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 감돌고 있는 감정과 감각의 간극 그리고 적대성 그리고 그 아래를 관류하는 비대칭성을 성찰하는 일이야말로 '동아시아라는 시좌'를 일구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일 것입니다. 그러려면 국가 단위를 절대시하지도 않지만 국경의 문제를 가볍게 여겨 섣불리 비약을 저지르지도 않아야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라는 시좌는 바로 이 '사이 공간'에서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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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론에서 동아시아가 회자될 때면 그 말에서 대체로 역사주의적 어감을 듣습니다. 역사주의란 진보되었다고 여겨지는 '서양'이라는 담론 구성체에 자신을 비추어 자기 위치를 마련하는 인정 투쟁의 역사관입니다. 그런 역사주의에서 보았을 때 동양 내지 아시아보다 동아시아는 서양과의 지체를 만회한 이름일지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동양과 아시아는 유럽 근대에 대한 패배의 이름이었으나 현재 동아시아는 권력화의 배제적 범주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st Asian Economic Caucus), 동아시아비전그룹(East Asian Vision Group), 동아시아연구그룹(East Asia Study Group) 등에서 사용되는 '기획의 동아시아'는 그런 뉘앙스를 짙게 풍깁니다.
그러나 저는 동아시아를 근대화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한 해법이 아닌 사상적 물음으로 간직하고자 합니다. 동아시아를 묻는다는 것은 탈근대(post-modern)를 묻는 것입니다. 서양의 근대는 아시아를 자신의 이전 시기(pre-modern)로 간주하며 시작되었고, 아시아의 근대는 서양에 패배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탈근대는 근대 이후에 오는 연대기적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럽적 근대, 국민 국가들의 근대, 근대화를 추구해온 역사 궤적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탈근대란 탈식민, 탈국가, 탈패권을 의미합니다. 타율적 근대화 이후 동아시아는 식민화를 거쳤으며, 냉전이 성립하자 양극체제의 분할 속에서 국민국가로 구획되었으며, 지금은 대국이 되기 위한 경쟁 속에서 여전히 온전한 동아시아 상을 구도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뒤틀린 동아시아 상은 바로 정치적ㆍ정신적 식민화, 국가주의, 패권관계의 징후입니다.
어쩌면 온전한 동아시아 상은 불가능한 것인지 모릅니다. 동아시아 상은 앞으로도 균열이 가 있을 것이며, 복잡한 분단선과 비대칭관계는 결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성에서 동아시아의 가능성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완인 채로 동아시아는 그렇게 '물음'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자국의 책임을 지면서도 그 일국 단위의 사고방식을 무너뜨리는 역설적인 입장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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