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로 잠시 주춤하던 핵발전소 증설 계획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00만 킬로와트 급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에 대한 운영을 허가했다. 운영 허가란 핵발전소가 시운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후쿠시마 사고로 여론에 밀려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 운영 허가가 잠시 유보되고 있었다. 그러더니 2일 상업 운전 허가를 내주었다.
이로써 한국 사회에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23기에 이르게 되었고 월등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밀집도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같은 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규 핵발전소 2기에 대한 건설도 허가했다. 즉, 신울진 1, 2호기 건설 허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어서 정부는 2024년까지 계획된 12기의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 신규 후보지 선정도 올해 안으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변함없이 핵발전소 증설 정책을 밀고 나갈 것이라는 공약을 지키게 되었다. 부산, 울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증설 계획에 대한 반대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 목소리들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얻지 못하는 사이 정부의 계획이 차근차근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허가를 받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이행되고 이어 신규 후보지 선정까지 정부의 계획대로 이행되면, 2024년 우리 원자력 발전의 발전량 비중은 60퍼센트를 차지하게 된다. 34퍼센트인 현재 상황에서는 전력 수요 감축과 재생 가능 에너지 전력의 빠른 증가로 핵 발전 전력을 대체하자는 제안에 동조하는 이들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60퍼센트인 상황에서 탈핵이란 글자 그대로 불가능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탈핵에 대한 논의들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고 수습은 이루어지지 않고 언제 어디서 방사능 오염을 접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핵 발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런 탈핵으로의 희망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 정치적인 사안들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핵발전소 증설을 위한 정부 행보에 대한 시민 사회의 개입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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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증설과 더불어 또 다른 사안이 정부의 핵연료 사이클 구상이다. 핵발전소 체제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핵폐기물 처리와 원활한 핵연료 공급이 절대적이다. 35기로 가동 원자로가 늘어가게 되면, 여기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비롯한 방사성 폐기물 처리는 지금보다도 더 큰 문제가 된다.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으로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가 임시로 해결되기는 했지만,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가 시급하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에 고리 핵발전소의 사용 후 핵연료 보관 시설 포화를 시작으로 2021년에는 현재 발전소 어디에도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당장 고준위 폐기장 건설 착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것이 핵연료 사이클 추진이다. 즉,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 혹은 재처리하여 최종 처리해야 할 폐기물을 줄이고, 여기서 나오는 플루토늄을 연료로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플루토늄 분리 기술과는 다른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활용하는 구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처리가 아닌 재활용에 기반을 둔 핵연료 사이클 추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경우, 1974년 처음 원자력 기술을 도입할 때 미국과 맺은 원자력 협정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해서 연료로 제조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국내 발전 시설의 개발과 건설만 가능하고, 연료 수입과 제조는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핵연료 사이클을 확보해서 원자력 산업 체제를 완성하자면 이 원자력 협정의 개정은 필수적이다. 6일 시작해 8일 끝난 4차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이 바로 이와 연계되어 있었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방안'이 주요 의제로 되어 있는 이 회의에서 정부는 핵연료 재활용 권한 확보를 미국에 요구했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플루토늄만을 따로 분리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것이 재처리와 달라 이것이 핵무기 제조 기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파이로프로세싱 역시 플루토늄 추출 기술로 재처리 기술로 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앞으로 계속 진행될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에서 원하는 권한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게다가 파이로프로세싱이 정부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추출 과정에서 쓰이는 장비들 모두가 방사능에 오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재활용 과정을 통해 방사성 폐기물이 증가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밖에 재활용 설비에서 누출되는 방사능 오염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핵연료 사이클을 전제로 여기서 나오는 연료를 활용할 수 있는 소듐 고속 증식로 개발까지 계획하고 있다. 수입 우라늄에 의존하는 대신에 연료 재활용이 가능한 고속 증식로 개발 계획은 기술 합리적인 판단일 수는 있다. 다만, 이 증식로는 경제성과 사고 위험성으로 인해 1970년대에 많은 국가들에서 개발 중단을 했던 원자로라는 사실을 제외하고 보면.
물밑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런 정부의 일련의 사업들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한국 사회를 완벽한 원자력 제국으로 변모시키게 될 것이다. 이들 계획은 우리 사회를 핵발전소 초강대국으로 부상시키는 것은 물론, 재처리 시설과 고속 증식로를 갖춘 초위험 사회로 진입하게 할 것이다. 아스팔트 방사능 원인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이런 초위험 사회를 관리할 능력은 갖출 수 있을까? 정부의 핵발전소 강국을 향한 행보를 지금 멈추게 하지 않는 한 탈핵으로 가는 문은 열 수도 없을 것이다. 바짝 정신을 차릴 때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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