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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창조자! 이제는 '똥'도 못 닦는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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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창조자! 이제는 '똥'도 못 닦는 신세?

[프레시안 books] 마크 프라우언펠더의 <내 손 사용법>

2006년에 서울에서 지리산 자락 구례로 거처를 옮겼다. 최근까지 나의 주요한 밥벌이 수단은 웹디자인과 인쇄 출판 관련 디자인이었다.

구례 사람들 몽땅 서울로 옮겨가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3분의 1 정도 채울 수 있다. 천만 대도시에서 3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 옮겨 오니 관련 분야에서 지역 경쟁 업체가 없다. 그렇다면, 구례에서 발생하는 디자인 관련한 일은 전부 다 먹겠네? 세상사 어디 그렇게 만만하던가. 경쟁 업체도 없고 일도 없다.

실속 없는 '시골 디자이너'는 마을의 할머니들이 "뭐해서 먹고 사노?" 하고 물어오면 간명하게 설명하기 참 난감한 직업이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을의 노인들은 내가 뭘 하는 놈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포괄적으로 "사진 박고 인뜨네뜨로 머를 만든다더라…" 정도가 가장 근접한 설명이다.

우리 동네에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간혹 내가 한 일이 그럴싸해 보여도 우리 동네 사람들 입장에서는 '딱히 필요한 일'은 아니다. 이런 경우와는 정반대로 어떤 장면에서 내가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사람 구실 못하겠구먼'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상황이 발생하면' 단박이다.

참깨와 들깨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들판의 보리와 밀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텃밭에 올라 온 것이 마늘인지 양파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 남들보다 항상 늦게 파종하고 수확하는 것, 닭을 잡지 못하는 것, 벌통을 이어붙이지 못하는 것, 나락 한 가마니를 들면 똥을 싸지를 것 같은 불타는 고구마 얼굴이 되는 것, 수도가 얼어 터졌을 때 동네방네 소문나게 소리를 지르는 것….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이진법 비트 언어가 만들어 내는 허상을 팔아서 먹고 사는 나의 생존 방식은 다른 나라 리그 이야기다.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일이란 자고로, 몸으로 손으로 '쎄가 나게' 땀 흘려가면서 하는 것이 일이다.

▲ <내 손 사용법>(마크 프라우언펠더 지음, 강수정 옮김, 반비 펴냄). ⓒ반비
마크 프라우언펠더의 <내 손 사용법(Made by Hand)>(강수정 옮김, 반비 펴냄)을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평가한다면 '시답잖은 이야기'로 가득 한 책이다. 3만 평 쌀농사 짓고 농기계도 뚝딱 고쳐서 사용하는 순영이 형님이 본다면 '일도 아닌 일'을 괜히 책으로 만든 것이다. 8000평 감 농사 짓고 직접 저장고를 짓는 종옥이 형님이 이 책을 보면 '꺼리도 안 되구먼' 이라고 말하고 돌아 앉아 곶감이나 계속 깎을 것이다.

프라우언펠더는 텃밭을 가꾸고 직접 개조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뽑고 닭을 기르고 벌을 키우고 발효차를 만들어 마시고 스스로 깎아 만든 나무 숟가락으로 스튜를 퍼먹는다. 이런 일의 9할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평생 해왔던 일이다. 그런데 이 양반은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지?

미국의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2퍼센트가 못된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6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는 시골 사람들이다. 미국이나 대한민국에서 '우리 동네 사람들이' 텃밭과 벌을 치는 일은 당연하고 흔한 일이지만, 나머지 98퍼센트 미국 사람들과 94퍼센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거나 딴 나라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희소 가치만 있고 별 실속 없는 디자이너이지만, 우리 동네는 거의 대한민국 변방 5퍼센트에 해당하는, 별 중요하지 않은 그렇고 그런 마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판도는 대략 그렇게 짜여 있다. 프라우언펠더가 로스앤젤레스와 인근 마을에서 하고 있는 일은 '그 동네'에서는 희한한 일인 것이다.

프라우언펠더는 실리콘벨리가 호황이던 시절, 잘 나가던 IT 전문 칼럼니스트, 블로거, 엔지니어, 디자이너였다. 경제 상황이 좋을 때는 문제의식을 느끼기 힘들다. 실리콘벨리의 거품이 사라질 무렵에 그는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전과 동일한 수준에서 소비를 지속하기 힘들 때 인간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는 아내와 커피숍에 앉아서 이런 고민을 했다.

"지난 몇 달간 토막 난 수입으로 생활하며 만지작거렸던 급진적인 생각들을 진지하게 의논하기 시작 했다." "문제는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닐까? (…) 이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결국 모든 걸 내버리고 라로통가로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라로통가는 남태평양 쿡 제도의 외딴 섬이다. 그와 가족들은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남태평양으로 결연하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남태평양에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았는가? "폐렴과 기관지염과 서캐와 기생충과 발톱무좀과 사회적 고립에 만신창이가 되어" 넉 달 반 만에 라로통가를 떠나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되돌아간다.

시골에 살다 보니 종종 귀농·귀촌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인생의 전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 내가 우선 하는 소리는 '사는 곳 바뀐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는 대답이다. 프라우언펠더는 자신과 가족의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 답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삶의 방식을 바꾼 게 아니었다. 그저 살아가는 환경을 바꾸었을 뿐이었다." "즐겁게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으로 뭘 찾으려는 건지 우리도 몰랐다는 게 문제였다. 로스앤젤레스 탓으로 돌렸던 우리의 문제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따라 라로통가 행 비행기에 올랐다. 알고 보니 우리가 문제였다. 그건 지상낙원으로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내 손을 써서 내가 속한 세계와 유의미한 방식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낸 대가였다.

그는 현재 "뭔가를 만들고 고치고 수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전 세계적인 DIY 운동을 주도하는 잡지 <메이크>의 편집장이다. 이 책은 <메이크>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DIY 고수들의 이야기와 사례 그리고 그런 만남의 교훈을 '내 삶에 적용'시켜 나간 과정의 기록이다.

절대다수의 현대인들은 '포장된 상태의 제품'으로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대면한다. 사람들에게 대형 할인점 식품 코너에 진열된 '닭고기'와 가족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농가 마당의 '닭'은 같은 의미와 용도가 아니다. 우리는 통상 '닭고기 제품' 몇 가지를 앞에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정도 권리는 누릴 수 있지만 '직접 닭을 키워서 잡아먹을' 선택권은 희박하다.

우리를 둘러 싼 객관적 환경과 조건이 그러하다. 우리는 항상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가지고 있지만 선택 항목 자체를 결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선택 항목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대역죄에 해당한다.

'지혜가 있는 사람'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도구를 들고 뭔가를 직접 만들면서부터 가능했다. 물건을 만들고 고치는 것은 원래 인간이 가진 능력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기능을 화폐와 교환하지 않는 한 대단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값싸고 편리한 공산품이 지천이다. 이제 물건이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닌,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는 것이다.

새것은 낡은 것에 비해 일종의 사회적 우월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광고는 '당신의 물건은 낡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걱정하게 만들고 소비를 부추긴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의 어딘가에 배치되어 밥벌이하고 소비하고 자식을 낳고 늙어간다. 물론 '지금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행복을 내일로 미루는' 일은 당연하다. 그리고 아주 간혹 몇 백 년 전에 출발해서 지금 내 눈에 들어 온 별빛을 보며 생각한다.

"왜 살지?"

책의 앞머리에는 '추천의 말'이 나열되어 있다. 한 줄이 명징하게 뇌리에 박힌다.

"왜 삶의 통제권을 되찾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마크 프라우언펠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손이 가졌던 원래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손의 복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통제권'을 되찾아 오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손은 석기보다 오래된, 석기를 만든 최초의 연장이었다.

지구상의 다른 포유류의 동일한 부위를 사람들은 '앞발'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손은 포유류 일반의 동일한 부위에 관한 해부학적 명칭이 아니라 그 쓰임과 놀라운 기능에 관해 특별한 의미와 차별성을 부여한 유일한 명칭이다. 2011년 현재 손의 사회적 지위는 5만 년 전보다 형편없이 추락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손으로' 창을 던지지 않는다. 더 이상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말려서 자신의 옷을 '손으로' 만들지 않는다. '손으로' 똥도 닦지 않는다. 2011년 현재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불과 60년 전까지 절대다수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으로 하던 일의 결과물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번다. 우리는 '타인의 손'을 구매한다. 만약 사람들이 광고를 거부하고 제 각각이 살고 있는 현지에서 모든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저물어 가는 화석 연료 시대의 노을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크 프라우언펠더는 심각하지 않은 척, 얼핏 보기엔 경쾌해 보이는 'DIY LIFE STORY'를 슬쩍 내밀었다. 2011년 현재,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 책을 별로 '먹어주지' 않겠지만 우리 동네를 제외한 나머지 94퍼센트 동네에서 이 책에 대해 '꺼리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평한다면 세상이 제법 많이 변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내가 심지 않은 나무는 어떻게 되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내가 심은 나무의 상태에는 신경이 쓰였다. 그 나무에 내 시간과 노력이 담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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