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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저항하는 동양, 과연 가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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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저항하는 동양, 과연 가능합니까?

[동아시아를 묻다·9] 다케우치 요시미의 '근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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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요시미를 논제로 꺼내셨군요.

저도 내일(10월 14일) "다케우치 요시미의 '전쟁의 사고'가 지니는 사상사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해서 다시 읽었습니다. 발표를 무엇으로 열까 생각하는 중인데, 그의 '오카쿠라 덴신'을 인용하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카쿠라 덴신은 다루기 힘든 사상가이자 또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사상가다. 다루기 힘들다는 것은 그의 사상 어딘가에 정형화되기를 거부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고, 위험하다는 것은 그의 내부로부터는 부단히 방사능이 퍼져 나오기 때문이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화상을 입을 수 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위생적으로 무해한 것은 애당초 사상도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사상이 사상이 되는 것은 거기에 독이 있기 때문이다. 사상이란 어느 정도 현실에 작용하여 (정신을 포함한) 현실을 변혁하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사상은 그것이 사상이기 때문에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위험물인 것이지, 덴신이 유별나게 위험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과거의 사상가를 대하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태도는 다케우치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케우치는 다루기 힘든 사상가이자 위험한 사상가입니다. 정형화되기를 거부하며 방사능을 뿜는 사상가입니다. 그가 이런 타입의 사상가가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그가 곤란하고 때로 오염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격동하는 시대상황의 한복판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려는 자는 시대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사상사적 가치를 지니는 사고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다케우치가 그러했습니다. 한 개체는 부자유하고 개체가 자기 의지를 실현하려는 시도는 사회의 힘에 의해 굴절되지만, 부자유하기 때문에 역사 속 선택은 진정한 의미를 지닙니다. 저는 역사의 뒤에 온 자로서 그 고투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섣부른 심판으로도 변호로도 기울지 않고 가능성의 폭에서 다케우치의 사고를 읽어내려 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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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년). ⓒ프레시안
이병한 님이 보내주신 글은 논점이 여러 가지여서 제 능력으로는 한꺼번에 대화의 소재로 삼기가 어렵습니다. 살펴보면, 전시기에 다케우치는 대동아 전쟁 그리고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동양의 근대란 무엇인가, 루쉰적 저항이 동양의 근대에서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다케우치의 근대 인식이 지니는 한계는 무엇인가, 중국에 관한 다케우치의 인식은 여전히 유효한가 등의 논점을 꺼내셨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듯 우리 대화에서 제 한 가지 역할은 논점을 정리해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자들도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인물이 생경할 테니, 다소 느린 호흡으로 논점으로 정해 구체적인 대화에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텍스트를 제 나름으로 정리하고 물음을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병한 님의 지난 글을 보면 '근대란 무엇인가'가 주된 텍스트로 활용되었다고 읽혔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근대란 무엇인가'는 다케우치의 '패배를 매개로 한 동양관'을 이해할 때 핵심적인 텍스트일 것입니다. 앞서 인용구에서 언급된 오카쿠라 덴신이 "동양으로 침입하는 데 한통속이 된 유럽 앞에서 동양도 하나"라고 주장했듯이, 다케우치 역시 동양을 지리적 실체로 이해하지 않고 저항을 매개로 하는 하나의 운동체로 파악했습니다. 물론 이런 발상은 오카쿠라보다는 루쉰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다케우치는 루쉰을 두고 선각자가 되지 못한 '역사적 중간물'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시대에 반보 뒤처진 루쉰의 후진성은 중국 근대화의 후진성과 겹쳐지기에 진실했고, 그리하여 루쉰은 중국 근대 문학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선각자가 한 명 한 명 도태될 때마다 '역사적 중간물'은 조금씩 존재의 무게를 더해갑니다. 그리고 일찍이 없었던 저항을 방식을 일궈냅니다. 다케우치는 루쉰의 저항을 동양의 운동 원리로 접목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내용이 '근대란 무엇인가'에 담겨 있습니다.

본격적인 독해에 앞서 잠시 '근대란 무엇인가'가 작성되던 시기 사상계의 상황만을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근대란 무엇인가'는 1948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사상계에서는 강화 논쟁과 더불어 패전국 일본은 승전국 미국으로부터 어떻게 독립해야 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비등했으며, 전전의 국수주의와 일본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위 서양산 지식을 끌어들여오자는 '근대주의'가 횡행했습니다.

바로 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다케우치는 동양의 근대와 저항을 사고했습니다. 다른 과거의 사상가를 독해할 때도 그러하겠지만, 다케우치 요시미는 특히 시대와 밀착한 사상가였기 때문에 문면을 역사적 상황에서 떼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동시에 개체의 사상적 선택을 개체를 둘러싼 환경과 시대 상황으로 섣불리 환원해서도 안 되겠죠. 이런 이중의 의식을 품고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과거 사상가의 사상적 결단과 행보 속에서 오늘날의 긴장어린 사상 과제를 발굴해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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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서양과 동양은 담론적 구성물입니다. 그러나 두 담론적 구성물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서양은 경계 지어진 영토상의 명칭이지만 자기 한정을 거부하고 바깥으로 뻗어나갑니다. 서양은 자신이 하나의 특수로서 다른 항(동양)과 대립하지만, 다른 항이 자신을 특수로서 인식할 때 보편적 준거점으로 작동합니다. 동양은 서양과의 차이를 통해 자기 인식을 획득합니다. 따라서 서양은 서양 대 동양이라는 대립 관계의 한쪽 항이자 그 대립 자체가 발생하는 장소입니다. 서양의 '근대' 과정과 동양은 '근대화' 과정은 그 동학을 통해 진행됩니다.

'서양 대 동양'의 구도에서 서양과 동양은 등질한 공간적 평면 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구도는 시간적인 함축을 갖습니다. 서양의 근대와 동양의 근대화는 헤겔의 역사철학이 그러하듯 공간상의 차이를 시간상의 낙차로 전위시키는 조작 속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서양의 근대성은 근대에 선행하는 자기 안의 전근대와 대립하는 동시에 지정학적으로는 비근대, 즉 비서양과 대비됩니다. 그리하여 지정학적 조건은 역사적 단계로 번역되며, 그러한 역사주의적 도식은 다중적인 근대성을 근대화=서구화로 환원했습니다.

그렇다면, 동양의 위치에서 근대의 극복이란 서양이 확장해 나갔던 시공간 구조에 관한 근본적 물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근대 비판은 근대의 외부가 존재한다거나 동양의 고유성을 찾아나서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반근대 내지 토착주의라는 노스텔지아에 빠질 공산이 큽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항은 서양의 근대 논리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에서 근대 극복이란 '서양 대 동양'이라는 관계 바깥이 아닌 그 비대칭적 관계에 철저히 내재화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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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이유에서 다케우치 요시미의 '근대란 무엇인가'는 동양의 저항을 사고하고자 할 때 거듭 돌아와야 할 텍스트입니다. '근대란 무엇인가'는 동양이 서양에게 패배했으며, 동양의 근대화는 서양에 의한 식민화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대란 무엇인가'의 첫째 절은 '근대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정작 근대의 의미는 밝히지 않습니다. 루쉰이 근대 문학의 건설자라는 진술만이 나옵니다. "루쉰은 전근대적인 면모를 많이 지녔지만, 그럼에도 전근대를 품는 모습으로 역시 근대라고 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두 가지 함의는 읽어낼 수 있습니다. 다케우치는 전근대와 근대를 연대기적 순서로 나누지 않았으며, 동양의 근대를 루쉰적 근대로 읽어냈습니다. 즉, 동양은 저항을 통해서만 자신의 근대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절은 '동양의 근대'와 '서양과 동양'입니다. 여기서 다케우치는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명시합니다. 서양과 동양은 용어의 대등함과 달리 등질 평면 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양 대 동양'의 대(對)는 힘의 비대칭성이라는 위계 관계를 품고 있습니다. 그 위계 관계에 근거하여 서양은 동양을 자기세계로 내부화했고 차라리 동양을 생산했습니다.

"동양의 근대는 유럽이 강제한 결과라는 점, 혹은 그 결과에서 도출되었다는 점은 일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반면 서양의 "근대란 유럽이 봉건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생산의 면에서는 자유로운 자본의 발생, 인간의 면에서는 독립되고 평등한 개체로서 인격의 성립) 그 봉건적인 것에서 구별된 자기를 자기로 삼아 역사에서 바라본 자기인식이다." 풀이하자면 동양의 근대는 강제된 산물이나 서양의 근대는 유럽의 자기 인식으로 출현했습니다. 그 비대칭성으로 말미암아 서양에게 근대란 자기 실현이지만 동양의 근대는 서양화입니다.

그러나 동양의 근대화는 서양에 대한 저항을 동반했습니다. "저항을 통해 동양은 자신을 근대화했다. 저항의 역사는 근대화의 역사고 저항을 거치지 않는 근대화의 길은 없었다." 하지만 동양이 저항한다고 서양이라는 세계 인식의 좌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양에 대한 유럽의 침입은 동양에서 저항을 낳고 그 저항은 자연스레 유럽으로 반사되었지만, 그조차도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대상화시킬 수 있다는 철저한 합리주의의 신념을 흔들어 놓지 못했다. 저항은 계산속에 있었고, 저항을 거쳐 동양은 점차 유럽화할 운명이라고 예견되었다. 동양의 저항은 세계사를 보다 완전하게 만드는 요소에 불과했다."

동양은 서양화되는 동시에 서양에 저항하지만 그 저항은 서양의 근대를 보다 완전하게 만드는 데 불과합니다. 바로 헤겔의 역사철학이 주장한 바입니다. 또한 서양 중심주의에 대한 섣부른 탄핵이 무위로 그치고 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양은 저항의 결과 패배할 뿐이다. 힘의 비대칭성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다케우치는 서양에게는 보이지 않는 저항, 이차적 저항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근대 극복과 탈식민의 계기를 모색하고자 '근대란 무엇인가'로 돌아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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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는 저항의 결과다. 저항에 의거하지 않는 패배란 없다. 따라서 저항의 지속은 패배감의 지속이다. 유럽은 한 걸음씩 전진하고 동양은 한 걸음씩 후퇴했다. 후퇴는 저항을 수반한 후퇴였다. 이 전진과 후퇴가 유럽에게는 세계사의 진보로 이성의 승리로 인식된다는 사실, 그것이 지속되는 패배감 속에서 저항을 매개로 하여 동양에 작용했던 때 패배는 결정적이 되었다. 결국 패배는 패배감에서 자각되었다.

패배가 패배감에서 자각되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있었다. 저항의 지속이 그 조건이다. 저항이 없는 곳에서 패배는 일어나지 않으며, 저항은 있되 지속이 없다면 패배감은 자각되지 않는다. 패배는 한 번 뿐이다. 패배라는 한 번뿐인 사실과 자신이 패배한 상태라는 자각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패배는 패배라는 사실을 잊는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어 이차적으로 자신에게 따라서 다시 결정적으로 패배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그 경우 패배감은 당연히 자각되지 않는다. 패배감에 대한 자각은 자신에게 패배한다는 이차적인 패배를 거부하는 이차적인 저항을 통해 일어난다. 여기서 저항은 이중이 된다. 패배에 대한 저항임과 아울러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 혹은 패배를 망각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다
.

앞서 말했듯이 동양의 근대는 서양에게는 자기 인식입니다. 동양은 서양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양은 서양을 자기 바깥의 상대로 인식하지만, 서양에게 동양은 자기 인식의 일부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동양 대 서양'이라는 구도는 동양 측에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동양의 세계(표상)는 늘 서양의 세계보다 작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를 대상화될 수 없을 때, 혹은 자신이 상대에게 속해 있는데도 상대에게 저항해야 할 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이제 인용구로 돌아간다면, '일차적 저항'은 동양의 의식상의 '동양 대 서양'에서 발생하는 저항입니다. 그것은 지체를 만회하기 위해 근대화를 꾀하는 저항이며, 서양에 반사되는 저항이며, 서양에게 승인을 요청하는 저항이며, 서양에게 보이는 저항입니다. 그러나 '이차적 저항'은 자신이 패배하고 있음을 망각하지 않는 것, 철저하게 패배자, 약자, 노예의 입장을 견지하고 그 한계 조건에서 시도하는 저항입니다. 자신의 한계 조건에서 벗어나려는 저항이 아니라 한계 조건을 자기 안으로 내재화하는 저항인 것입니다. 따라서 동양의 '이차적 저항'은 서양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차적 저항'은 헤겔 변증법의 반(反)이라는 항이 되지도 않습니다. 부정이 부정된 항에 대립하여 주체가 정립된다는 의미라면, 이차적 저항은 부정이 아닙니다. 이차적 저항은 상대와 더불어 자신도 와해시키고자 합니다. 서양과 서양을 통해 반사된 자기 이미지 사이의 표상 관계를 착란에 빠뜨리고,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비판하여 얻어지는 자기 동일성마저 거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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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차적 저항의 구체적인 방안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무기력감을 우리에게 단서로 내어줍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저항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저항의 의미를 파고들지 못한다. 나는 철학적 사색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 것은 저항도 뭣도 아니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단지 거기에서 무언가를 느낄 뿐, 그것을 뽑아내서 논리적으로 조립하지 못한다. (…) 그리고 그때 루쉰과 만났다. 내가 느끼고 있는 그 공포에 루쉰이 몸을 던져 견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루쉰의 저항에서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었다. 내가 저항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저항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루쉰에게 있는 그러한 것이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을 전근대적 면모를 지닌 채로 근대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다시 루쉰을 탈근대적으로 읽어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탈근대는 근대 이후에 오는 연대기적 시간이 아닙니다. 서양의 근대는 동양을 전근대로 대상화해 출발하였고, 동양의 근대는 서양에 패배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패배와 저항으로 출현한 동양의 근대 시간에 탈근대는 늘 감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 탈근대를 언명하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반세기가 지났지만 다케우치 요시미의 '근대란 무엇인가'를 전편으로 삼아 후편을 이어 쓰는 것이 제 과제임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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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병한 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지난 글에서 이병한 님은 다케우치 요시미 근대 인식의 결정적 착오를 짚어주셨습니다. 다케우치의 근대 인식은 20세기라는 시대적 제약 속에 메인 발상이며, 유럽의 근대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동양의 '저항의 근대' 역시 역사적 실제라기보다 직관 내지 신념에 가까우며, 서양 대 동양의 대립 구도 속에서 역내 국가의 상호 관계는 간과되었고, 일본 대 중국이라는 대비 구도가 중국 인식에 착시 현상을 초래해 중국의 중화주의를 외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제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텍스트를 정리해두었으니, 다시 한 번 토론에 나서면 어떨까요. 저는 과거 사상가를 평가하는 일 자체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병한 님도 그렇겠지만 평가 이후가 중요합니다. 혹은 그 평가의 용법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다시금 이병한 님께 다케우치 요시미의 근대 인식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여쭤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물음을 우리의 대화 주제인 '동아시아를 묻다'로 끌어와 재구성하면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동양을 어떻게 동아시아로 번역해낼 수 있을 것인가. 전후 동양의 근대와 저항에 관한 인식을 탈냉전 시대 동아시아의 근대와 저항으로 번역해내려면 다케우치의 근대 인식은 어떤 전환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인가. 다케우치의 근대 인식 가운데서 무엇을 비판하고 또 계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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