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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주변에 사람이 없어요!"

[해방일기] 1946년 11월 30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1946년 11월 30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엊그제(11월 28일) 정판사 사건 판결이 나왔습니다. 검찰의 구형대로 이관술, 박낙종, 송언필, 김창선의 네 사람에게 무기징역, 그 밖의 6인에게 15년 또는 10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범죄 사실에 대해서도 의혹이 많지만, 검찰과 법원이 주장하는 사실 그대로라 하더라도 양형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안재홍 : 지폐 위조는 경제 사범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이므로 엄하게 다스려야 하는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동안 적발된 위폐 사건이 한둘이 아닌데, 다른 사건과 비교해도 이번 선고는 엄청나게 가혹한 것입니다. 당국이 발표해 온 범죄 사실을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판결 내용을 보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월 말의 제1차 공판에서 소란 죄로 적발된 40명에게 3~5년 징역형을 때릴 때부터 예상된 일이기는 합니다.

김기협 : 위폐 사건이 빈발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해방 직후 수십억 원의 돈을 찍으면서 불량 지폐가 많이 나온 데 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 수십억 원 찍은 것 자체도 위조지폐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 돈이 조선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는데, 총독부가 무슨 권리로 그 시점에서 그 돈을 찍었습니까?

박흥식이 그 시점에서 수천만 원의 돈을 일본인들에게 받은 사실이 드러났는데, 그 사람 하나뿐이었겠습니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밀착되어 있던 일부 사람들이 떼돈을 움켜쥐고 온갖 나쁜 짓에 쓰고 있는 한편에서 인민은 인플레에 시달려 왔습니다. 통화 개혁을 해서라도 '친일 화폐'를 척결하는 것이 친일파 척결보다 더 시급한 일 아니었습니까?

안재홍 : 화폐 남발 소문이 당시 돌기는 했는데, 미군이 잘 처리할 줄 알았죠. 실제로 미군정에서 총독부, 조선은행과 식산은행의 간부들을 붙잡아놓고 여러 달 동안 그 문제를 조사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결국 다 풀어주고 그 문제도 덮어버렸죠. 사실 수십억 원의 무단 발권을 놔두고 몇 만 원 짜리 위폐 사건에 목을 매는 꼴이 우습기는 합니다.

김기협 : 정판사 사건의 사실 관계에 관해 숱한 의혹이 있거니와, 검찰이 주장하는 범행시간에 박낙종이 지방 출장 중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아닙니까? 굳이 옭아 넣으려면 적어도 범행 내용은 다시 짜 맞춰야 할 것으로 보았는데, 출장 사실을 그냥 묵살해 버리는 데는 정말 놀랐습니다. 다른 점은 차치하고, 그 사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안재홍 :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양원일 판사가 조재천 검사와 함께 지난 월말부터 9일간 충주, 나주, 익산 등지를 다니고 돌아와 지난 12일의 결심 공판에서 박낙종의 출장이 사실무근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것은 정말 언어도단이지요. 판사는 판사석에 앉아서 제출되는 증거를 보고 판결하는 역할입니다. 본인이 증거를 찾아다니는 역할이 아니죠. 아주 특별한 경우 '사실'을 확인하러 현장을 방문할 수는 있지만, '사실무근'을 확인하러 다닌다니. 게다가 박 씨의 출장 사실이 제일 분명히 확인된 김천에는 가보지도 않고.

이 사건은 최초의 발표부터(1946년 5월 15일) 경찰 아닌 군정청 공보국에서 나왔고, 미군정의 의지에 따라 진행되어 온 것으로 모두들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군정의 '의지'부터 잘못 세워진 것으로 보이고, 게다가 조선인의 사법 기구가 그 의지에 말려든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김기협 : 나중에 벌어질 일을 이 자리에서 언급할 것이 아니지만, 이관술과 박낙종 등은 1950년 6월 전쟁이 터질 때 감옥에 있다가 학살당했습니다. 선고는 무기징역이었지만 실제로는 사형 판결인 셈이었죠. 그런데 묘한 일은 양원일 판사가 이에 앞서 1949년 3월에 죽은 것입니다. 술에 취해 불심검문에 저항하다가 대한민국 국군 병사의 총에 맞아 죽었답니다.

안재홍 : 아무 논평 않겠습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김기협 : 정판사 사건이 처음 발표된 지 반 년 동안 조선 사회의 분위기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반 년 전을 돌아보며 소감을 말씀해 주시죠.

안재홍 : 반 년. 겨우 반 년 전인데 아주 먼 느낌이 드네요. 지난 5월에 온 국민이 미소공위의 무기 정회를 안타까워하고 있었죠. 이승만 박사가 남한 단독 정부 얘기를 꺼냈을 때, 그분을 존경하던 사람들마저 실망을 토로했습니다. 미소공위 재개를 위한 좌우 합작 추진에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 년이 지난 이제 민심이 아주 어긋나 버렸습니다. 전국적 소요 사태가 일각의 선동만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 인민은 이제 미군정도 신뢰하지 않고 정치인들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인민위원회가 이끄는 이북의 개혁을 사람들이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조미공위에서 김규식 박사를 중심으로 한 달 동안 노력했습니다. 경찰 문제에 초점을 맞췄죠. 경찰 문제가 모든 문제는 아니지만 첫 번째 문제입니다. 민심 이반에도 경찰 문제가 계기가 되었고요. 미군정 인사들도 생각 있는 이들은 이 문제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조차 손을 못 대는군요.

김기협 : 반 년 동안 선생님은 좌우 합작에 힘을 쏟아 오셨습니다. 그 성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재홍 : 합작위가 어떻게든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은 미군정의 뒷받침 덕분인데, 미군정이 좌우 합작에서 바란 제일 큰 목표는 입법 의회 설립입니다. 제대로 된 입법 의원을 만드는 것은 합작위원들도 바라는 것이므로 협력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미군정은 제대로 된 입법 의원을 만들기보다 빨리 만드는 데만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합작위에서 7원칙과 함께 입법 의원 설립을 위한 7조건을 내놓은 것은 제대로 된 입법 의원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미군정은 7조건 중 하나도 실행해 주지 않고 여건에 아랑곳없이 선거를 강행했습니다.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가 될 수 없었지요.

입법 의원이 문을 열면 미군정은 합작위에 아쉬운 것이 없게 됩니다. 더 이상 합작위를 뒷받침해 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죠. 경찰력과 자금력을 배경으로 입법 의원을 장악한 우익과 투쟁적인 신전술로 나오는 좌익 사이의 폭력적이고 비생산적인 항쟁을 억제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김기협 : 입법 의원 선거는 이 박사 세력과 한국민주당이 휩쓸었지요. 그러나 하지 사령관이 관선의원 임명을 합작위 추천에 따른다고 했지 않습니까? 민선이 45인인데 관선 45인을 합작위에서 잘 추천한다면 입법 위원 구성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요?

안재홍 : 산술만으로는 균형이 가능할 것 같죠. 그러나 현실로는 불가능합니다. 합작위가 어떤 사람을 추천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한 좌익은 입법 의원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홍명희 선생 같은 중도적 인물도 엉터리 선거로 뽑힌 엉터리 의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않겠답니다. 나도 이번에는 정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민주의원에도 끼고 싶지 않은 것을 비상국민회의에서의 역할 때문에 부득이 들어간 것이 아직도 후회됩니다.

결국 합작위에서 추천해 넣을 수 있는 이들은 정치 노선이 온건할 뿐 아니라 성격도 온건한 사람들입니다. 나도 주견이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나만큼 주견이 있는 사람도 끼어들기 힘들어요. 같은 숫자가 함께 앉는다 해도 이 박사 세력과 한민당의 사나운 사람들 감당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저쪽에는 자금력과 조직력까지 있지 않습니까.

김기협 : 이승만 박사가 일간 미국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그분 귀국할 때 선생님도 그분의 영도력에 기대를 많이 걸었었죠. 그런데 지난 6월 남한 단독 정부 얘기를 꺼낸 이래 미소공위에 부정적인 태도를 슬쩍슬쩍 보이다가 근래에는 3상 회담까지 부정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외교에 나선다 하니 미소공위를 방해하러 나서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좌익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 생각에는 어떠신가요?

안재홍 : 그분의 뜻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더 분명히 알지 않고는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기협 : 이 박사와 함께 선생님이 크게 기대를 건 분이 김구 선생이죠. 그런데 그분도 미소공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죠. 선생님이 국민당을 이끌고 한독당에 들어간 이래 노선 차이가 잘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에게도 실망을 많이 느끼지 않는가요?

안재홍 : 개인적으로는 전혀 실망을 느끼지 않습니다. 마음이 크고 넓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접할수록 깊이 느낍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맡아 오신 역할에는 아쉬움이 있지요. 며칠 전에(11월 18일) 좌우 합작 지지 담화를 내주신 것을 보고 우리 합작위원들은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더 일찍 그런 입장을 밝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해주셨더라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또한 느낍니다.

그분을 모시는 이들 중에 더러 문제가 있습니다. 18일의 담화 끝에서도 어느 신문사 고문 운운하는 말에 대한 반박 말씀이 있었죠. 측근 중 신문사 사장 맡은 이가 고문 맡아달라고 청하면서 응낙도 얻기 전에 외부에 발설한 것이 노여우셨던 것입니다. 저와 옛 국민당 동지들이 그분을 함께 모시려고 한독당과 합당한 것인데, 그분 측근 중에는 저희가 그분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행태도 보입니다. 그분을 진심으로 받들기보다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이익을 노리는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좌우 합작에 대해 지원도 해주지 않고 가로막지도 않으면서 관망해 오셨습니다. 그러다가 소요 사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며 새로운 생각을 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역할에는 기대를 많이 겁니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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