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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팬들이 광화문에 모였더니…

[프레시안 books] 클레이 셔키의 <많아지면 달라진다>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쓴 이념서 중 <철학 에세이>(조성오 지음, 동녘 펴냄)란 책이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쉽게 풀이한 이 책을 필자는 1990년에야 읽었는데 그 중 '양질전화(量質轉化)'란 개념이 기억에 남는다. 정확하진 않지만 어떤 물질 또는 현상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아예 그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제법 어렵게 표현했지만 양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는 생각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선인들은 술을 일러 백약지장 백독지왕(百藥之長 百毒之王)이라 했다. 적당히 마시면 스트레스도 풀고 몸에도 좋지만 많이 마시면 건강을 해치고 패가망신하는 독이 된다는 뜻이었다.

뉴욕대학교 언론대학원 교수 클레이 셔키는 이 개념을 21세기 사회 전망에 차용했다. 평범한 대중의 사소한 행동이 모이면, 모을 수 있다면 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독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量)이다"란 독물학자의 말이나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의 말을 빌려 자신의 분석틀을 요약한다.

셔키는 2008년 번역 출간된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송연석 옮김, 갤리온 펴냄)에서 인터넷의 보편화에 따른 새로운 대중의 등장을 조명해 화제를 모았던 디지털 전문가. 전작에서 그는 '조직 없는 조직력'이란 개념을 소개했는데 이는 올 봄 이집트 등 중동에서 번졌던 '재스민 혁명'이나 한창 진행 중인 '뉴욕의 가을'을 내다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2010년 신작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디지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움직임을 전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안'을 담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 이는 전 세계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모아 이용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자원을 뜻하는데 셔키는 자신의 저술에서 이것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수단, 동기, 기회로 나눠 이야기한다.

▲ <많아지면 달라진다>(클레이 셔키 지음, 이충호 옮김, 갤리온 펴냄). ⓒ갤리온
그에 따르면 20세기에 등장한 가장 혁신적 미디어는 TV였다. TV는 단순한 미디어가 아니었다. 정보와 오락을 시각적 이미지에 담아 전달하는 이 매체는 모든 시민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오늘날 선진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일, 잠, TV 시청일 정도다. 그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일 년 동안 2000억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는 데 쓴다.

하지만 TV를 비롯한 기존 미디어는 수동적이었다. 이른바 전문가들이 고르고, 생산한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매체였다. 그런데 컴퓨터, 정확히는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인터넷의 등장으로 상황이 변했다. 소비와 '생산'이 모두 가능한 '시민'이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TV를 한 대 들여 놓으면 단순히 시청자만 한 명 늘어난다. 하지만 컴퓨터는 다르다. 컴퓨터가 한 대 팔린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하고, 서로 뜻을 공유하는 '미디어'가 하나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이것이 모이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셔키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 인구는 20억 명 이상이며 휴대 전화는 30억 명을 넘어섰다. 단순히 숫자만 는 게 아니다. 이는 '시민' 대부분이 상호 연결된 사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이들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노동 시간의 감소로 연간 1조 시간의 여가 시간을 갖게 됐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적 자원 '인지 잉여'로 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면서 건설적 활동에 사용한다면 그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예를 들면 이 중 1퍼센트만 투자한다면 1900만 건의 지식을, 270개 언어로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100개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2001년 개설된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글을 올리고 편집할 수 있는 지식 공유 사이트인데 IBM연구소의 마틴 외렌버그의 계산에 따르면 사람들이 투입된 총 시간은 대략 1억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 변화를 위한 수단과 가능성이라면 동기는 어떨까. 이 대목에서도 셔키는 낙관한다. 인터넷 덕분에 정보의 생산과 공유에 드는 비용이 예전에 비해 턱없이 낮아지고 쉽게 사람을 모을 수 있게 된 이유도 있지만 인간은 이익만 따져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셔키는 인간이 이기심만이 아니라 자율성과 유능성, 멤버십과 관대함 때문에도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을 쏟아 붓는다고 본다.

셔키는 2008년 서울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 벌어진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십대 소녀들 이야기를 한다.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팬인 이 소녀들은 "동방신기가 보내서" 온 게 아니라 "동방신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했다. 팬 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그 접근성(누구나 읽을 수 있다)과 영속성(오래 남는다) 덕에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협상에 일방적으로 합의해줬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그 결과 '침묵하는 소비자'에서 '시끄러운 생산자'로 변했다.

뿐만 아니다. 유명 소설들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패러디 작품인 '팬 픽션'을 싣는 인터넷 사이트 FanFiction.net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 팬 픽션이 50만 가지가 넘는다. 이 중 수백 편의 이야기는 분량이 원작에 버금간다. 금전적 보상을 겨냥했다면 이런 일들은 절대 벌어지지 않았을 거란 셔키의 설명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면서도 셔키의 이 같은 분석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바로 생각과 표현 그리고 행동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 생산적 활동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의식했는지 셔키는 자율성과 유능성 등 내재적 동기를 만족시키려는 개인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출범한 세계적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가 결국은 사기를 막기 위해 평판 시스템을 도입한 것처럼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구성원을 관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만병통치약 같은 규칙이 없기에 이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큰 도전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셔키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작아진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우선 '혁명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이는 새로운 도구가 제공하는 기회가 클수록 이전의 사회 형태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컴퓨터가, 그리고 인터넷이 그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아니라 공공 영역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생활 방식에 변혁을 일으키고 있는 21세기에서 이는 더욱 타당하게 보인다.

때문에 인지 잉여를 성공적으로 이용할 확률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셔키의 조언은 원론적이어서 '제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새로운 기회 만들기', '초기의 성장 관리하기', '적응하기' 세 범주로 나눠 설명했다. 이 중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우선 '청중의 신화'에 대한 반론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동소이하며 독자나 시청자 등 큰 집단은 비교적 균일한 소비자들의 집합체라는 생각은 잘못이란다. 사람은 제각각 다르며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많이 달라진다는 게 지은이의 충고다. 그러기에 소셜 서비스를 만들거나 운영하는 사람은 참여가 동등해야 한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참여 정도를 서로 다르게 제공해야 한다며 참여 단위를 아주 작게 만들고 아마추어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것이 <위키피디아>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지적한다.

다른 하나는 문화는 명령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며 "명료성은 폭력"이라 주장하는 대목이다. 가치는 시간이 지나야만 축적이 되므로 서비스의 규칙은 혹은 목표는 뒤따라와야지 앞서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책은 탁월한 시각과 명징한 분석을 담았지만 진행형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이기도 하고, 항로는 제시하지만 구체적 항법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셔키가 "어떤 것이라도 시도하고, 모든 것을 시도하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한 것은 책을 읽는 자세까지 담은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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