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정판사 사건 공판정 주변의 시위 때 연행된 50인에 대한 군정 재판이 8월 5일 열렸다. 치안 교란, 사법 재판 진행 방해, 공무 집행 방해, 경관 공무 집행 방해, 무허가 집회 참가 등 맥아더 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이므로 일반 법정 아닌 군정 재판에 회부한다는 것이었다.
군정 재판은 심속하고 엄혹했다. 불과 보름 후인 8월 20일에 판결이 나왔는데, 최고 5년 징역 5명, 최고 4년 징역 14명, 최고 3년 징역 21명 등 대다수가 3년 이상 징역을 언도받았다. "베니안 알렉산그로니"라는 수석판사 이름이 기사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군정 재판'이란 것이 미군의 군사 법정을 확장해서 사용한 것 같다. 돌팔매 이외의 무기가 동원되지 않은 시위를 이렇게 엄하게 다룬 데서 정판사 사건에 대한 미군정의 단호한 의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미군정에 대한 조선인의 민심이 좋지 않았을 것은 여러 모로 짐작이 가는 일인데,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여론 조사가 이 무렵에 있었다. 한국여론협회에서 8월 11일 서울 시내 3개 처(종로, 본정 입구, 노량진)에서 통행인 4782인에게 좌익 합당과 미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동아일보> 1946년 8월 13일자)
한국여론협회는 7월 3일 창립된 기구인데, 간부 중에 장덕수, 조소앙, 김준연 등의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서울신문> 1946년 7월 14일) 우익 성향의 단체였던 것 같다. 좌우 합작 원칙과 공판정 소동에 관한 최근의 여론 조사도 (<동아일보> 8월 6일자) 우익 선전 활동의 인상을 주는 조사 방법이었다.
8월 11일의 조사에서도 좌익 합당 설문의 선택지로 (1) "퇴세를 만회하기 위한 모략", (2) "부득이한 사정", (3) "당연한 노선"의 세 가지를 내놓은 것을 보면 역시 우익 선전 활동의 냄새가 난다. 좌익을 비방하는 (1), (2)항에 80퍼센트의 의견이 몰렸고, 좌익을 옹호하는 (3)항은 8퍼센트의 응답에 그쳤다.
그런데 두 번째 설문 "군정에 대하여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에 대해 4686인, 응답자의 98퍼센트가 기권을 했다는 것이다! 96인만이 "위생 시설"을 꼽았다. 반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에 대한 반응은 훨씬 활발했다. 53퍼센트가 "식량 정책"을, 31퍼센트가 "산업 운영과 주택 관리"를 꼽았다. 기권은 16퍼센트에 불과했다.
미군정의 잘한 점에 대해 응답자의 98퍼센트가 할 말 없는 상황에 조선인의 "미군정 존속에 대한 열망"을 주장하는 맥아더의 발언이 전해졌다.
[동경 3일 UP발 조선] 남조선 군정 활동에 관한 맥아더 장군의 5월 정기 보고는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로 인하여 미군정 존속에 대한 조선의 희망이 높아가고 있다고 대략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로 인하여 남조선 단독 임시 정부 수립이 일반적으로 공연히 논의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이러한 견해의 토의는 점차 해소되고 드디어 미군정 존속에 대한 열망으로 대치되었다.
미소공동위원회의 돌연 휴회는 각 정당 간의 제휴를 이전보다 일층 더 긴밀화하였으며 일반 여론은 조선인 자기들의 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발언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미국이 옹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태도와 함께 일편에는 독립이 점점 요원하여진 데 대하여 실망의 기운이 떠돌고 있다.
신탁 통치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정당의 대표는 막부 결정에 반대하는 것이므로 조선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할 수 없다는 소련의 주장에 대하여 미국은 이와 같은 해석은 의사 발표의 자유를 저지하는 것이라고 반대하였던 것이다.
남조선 민중은 미소 회담의 결렬에 실망을 느끼고 있으나 동시에 조선 독립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대하여는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 (<동아일보> 1946년 8월 4일자)
조선인들이 미군정 존속을 열망한다는 사실을 맥아더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조선의 미군정 당국자들에게 의심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8월 6일 기자 회견에서 러치 군정장관은 맥아더의 보고가 어떠한 것을 기준재료로 하였으며 장관도 그 보고와 같이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참 난감했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조선인이나 미국인은 필요 이상의 군정 시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막사과 결정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이상의 군정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맥아더 장군의 5월 보고는 어떤 기준 재료를 가지고 하였는지 통신이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자세히 알 수 없다. 맥아더 사령부에서는 조선에 대개 대표자를 파견하고 있으며 조선 내 사정에 대하여는 매월 보고를 미국에 보내고 있다." (<서울신문> 1946년 8월 7일자)
그런데 같은 기자 회견에서 이런 문답도 있었다.
(문) 현재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 구내에 많은 미군 간이병사를 건설할 계획이 있다는데 사실인가?
(답) 장교와 하사관 가족을 위한 약 50세대의 병사를 지을 계획을 하고 있다.
(문) 근정전 경희루 향원정 등을 포함한 경복궁 안에는 현재 국립박물관의 구내로서 이 구역 안에는 귀중한 탑과 등롱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병사가 되어 다수한 사람이 무상 출입하면 영구히 보전해야 할 국보의 원형이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다른 적당한 장소를 선택할 의사는 없는가?
(답) 그 문제는 충분히 고려했다. 이는 문교부교화국과도 연락하여 보존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는 주택난이 심하므로 다른 곳에서 주택을 구하게 되면 조선인이 곤란해 질 것이다. 즉 주택난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일보>, <서울신문> 1946년 8월 8일자)
'주택난 완화'를 위해 경복궁 안에다가 미군 숙소를 지어? 이런 엽기적 발상법을 가진 사람이 군정장관이었다. 미군 장병들 중에 러치보다 머리 좋은 사람도 양식 있는 사람도 물론 없지는 않았겠지만, 러치 같은 인간들이 꽤 있었을 것 아닌가. "군정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묻는 질문에 98퍼센트가 할 말 없다고 하는 상황이 이해가 간다.
러치 군정장관보다 머리 좋고 양식 있는 사람으로 얼른 떠오르는 인물이 레너드 버치 중위다. 좌우 합작 회담 준비 과정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맡으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은 버치의 기고문이 <동아일보> 8월 6~7일자에 두 차례 나눠 실렸다. 그 한 대목을 소개한다. ("자료 대한민국사"에는 8월 7일자로만 표시되어 있고 내용에도 오탈자가 매우 많다. 인용 부분은 8월 6일자 게재분의 일부다.)
조선 사람은 미국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보된 기술을 조선이 습득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 기술은 미국 문화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은 미국이 자유의 나라라는 사실이다.
이 자유는 확고한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반은 시민의 모든 자유 가운데 표시될 것이고 이 자유는 미국인이 고도의 정치적 타협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에 주는 선물은 이 탁월한 자유라 할 것이며 조선 사람이 미국 친구들에게서 배울 가장 가치 있는 과업이라 할 것이다.
이 정치적 타협술을 달성하기 위하여 미국은 일세기에 가까운 진화와 처참한 내란을 겪은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최근 10년 동안 밀접한 접촉 밑에서 성장해 왔다. 그리하여 지금은 상호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되고 과거의 상호 간의 희생을 의의 있게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이 그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멀고 험한 형극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배움으로 더불어 조선에 혜택이 있게 하라. 우리 미국 사람이 모든 신고를 통하여 얻은바 진리를 명기할 지어다. 그 진리란 정부의 기능은 그 국민에 봉사하는 것이며 국가는 국민을 광영스럽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국민이 국가를 광영스럽게 하기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국가의 최고의 기능은 모든 인위적 제한에서 개인을 자유롭게 하여 그들에 내재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을 열망케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여론 조사 얘기를 꺼낸 김에 이 무렵 군정청 여론국에서 행한 여론 조사 얘기까지 해둔다. 8월 13일자 <동아일보> 제3면은 "여론 특집"으로 꾸며졌는데, 군정청 여론국에서 8453명을 대상으로 30개 항목의 설문으로 행한 조사 결과가 소개되어 있다. 이 기사에는 7개 항목의 조사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정치 형태로 독재가 좋냐 대의 정치가 좋냐, 헌법이 있으면 좋겠냐 없으면 좋겠냐 등 하나마나한 질문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눈에 확 띄는 항목 하나가 있다. "귀하의 찬성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가) 자본주의 1189인(14%)
(나) 사회주의 6037인(70%)
(다) 공산주의 574인(7%)
(라) 모릅니다 653인(8%)
'사회주의'를 고른 대다수 응답자들이 갖고 있던 '사회주의'의 개념이 그리 명확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우 정당인 한민당조차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토지 소유의 근본적 개혁을 겉으로나마 표방하지 않을 수 없던 당시의 여론 분위기는 여기서도 확인된다. 식민지 시대의 사회 경제적 모순의 극복 필요성을 인식하되 극단적 변혁을 꺼리는 마음이 '사회주의'의 선택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참, 조선인이 미군정 존속을 갈망한다는 맥아더 발언에 대한 해명이 8월 15일 군정청 공보부장 이철원의 담화문으로 나왔다. 믿고 싶은 해명이다.
"미국 신문 지상에 8월 3일부로 게재된 보도에 의하면 미소공동위의 무기 휴회 이후로 남조선 인민들은 남조선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분간 미군정을 계속하는 것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보도되어 있다." (<동아일보> 1946년 8월 15일자)
인용한 신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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