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사 오랄까 봐
슬슬 피해 다녔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불그스레한 아버지의 눈빛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눈물이 나올락 말락 한다.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김은영 지음, 창비 펴냄)
재작년, 독서 치료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알코올 중독 가족이 나오는 시를 만났다. 초등학생을 위한 동시였다. 웬만해선 책이나 영화를 보고 울지 않는데 그 자리에서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가슴이 콱 메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의 분위기, 냄새, 그리고 아빠의 얼굴…….
내게 물었다. 이젠 어느 정도 무뎌진 줄 알았는데. 아무리 책을 읽어도 치유되지 않았나? 아직도 내 안에 상처가 남아 있나? 이후 영영 가족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 우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올해 초, 나는 한 책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안나의 <천국에서 한 걸음>(박윤정 옮김, 미래인 펴냄)은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영주의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미국으로 가면 부자가 될 거라는 아메리칸 드림과 달리 허드렛일밖에 할 수 없는 영주의 부모님은 나날이 삶이 피폐해진다.
▲ <천국에서 한 걸음>(안나 지음, 박윤정 옮김, 미래인 펴냄). ⓒ미래인 |
작가 안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간 재미 교포다. 자전적 경험이 많이 반영됐을 법한데 작가와의 인터뷰를 보면 일부 기억만 따왔을 뿐 실제 아버지와 영주 아버지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또 자신은 영주와 달리 훨씬 솔직하고 용감했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은 잘 느끼고 묘사할 수 있었을 터이나 그 밖의 것은 뭐란 말인가? TV에 나올 만한 폭력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리 잘 알 수 있지? 영주와 아빠의 관계가 나의 어린 시절과 너무 닮아서였을까. 책을 읽으며 몇 번씩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아빠가 길바닥에 버려진 술병 속 같은 냄새를 풍기며 집에 오면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다. 할머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엄마와 나랑 함께 숨는다. 아빠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무 말이 없으면 아빠가 잠이 들 때까지 숨는 편이 낫다. 안 그러면 이래저래 탈이 생긴다. (…) 살림살이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너무 크고 격렬해서 나는 이불 밑으로 숨는다. 손으로 귀를 막아도 그 소리는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 소리가 내 가슴에 올라타고 심장을 쉴 새 없이 두들겨, 결국 내 눈은 바닷물을 쏟고 만다."
어렸을 때 곧잘 집 뒤에 숨었다. 엄마가 신호를 보내면 동생과 나는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창문 밑에 쪼그려 앉아 아빠가 잠들길 기다렸다. 아빠가 코를 골지 않으면 우리 세 식구는 여인숙을 전전했다.
어쩔 땐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왔다. 행여 아빠가 술에 취해 먼저 집에 들어오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동생을 안고 교회에서 배운 대로 엄마가 빨리 오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쿵. 쿵. 쿵. 쿵. 점점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아빠가 술에 취하지 않은 걸 확인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품에 안겼다.
"어쩌다 주말 아침에 아빠가 우주 괴물 블롭이 될 때가 있다. 빗자루 머리를 한 채로 일어나서는 만화 영화를 보고 있는 준호와 나를 덮친다. 뒤에서 다가와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불시에 우리를 덥석 안아 올린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고,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지만 자물쇠처럼 억센 아빠의 팔에 꼼짝도 할 수 없다. (…)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마치 1년 내내 해가 비치는데도 크리스마스에 눈을 바라며 하늘만 올려다보듯이. 왜냐하면 아빠가 우리를 팔에 꽉 끌어안아 숨도 쉴 수 없을 때, 그때야말로 우리가 두 팔 가득 아빠를 안을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다. 초등학교 2학년 수학경시대회에선가 한 문제만 틀리고 상장을 받아왔을 때 아빠는 "우리 딸 장하다"를 연발하며 나를 슈퍼마켓으로 데리고 갔다. 200원, 300원짜리 불량 식품도 호사였던 내게 아빠는 500원짜리 과자와 초콜릿을 사줬다. 단골 이발소에 들러서 실컷 자랑을 했다.
또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비행기도 자주 태워줬다. 아빠의 두 발 위에 배를 얹고 올라타면 다리를 쳐들어 "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 미국? 유럽?" 했고 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두려워 하면서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빠는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이 됐다. 다신 안 볼 사람처럼 치명적인 말을 뱉었다. 식기가 박살났다. 고함이 쏟아졌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선 너무 우울했다. 평소 가족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영주가 공부에 몰두하고 살아나갔듯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때 소설을 많이 보며 부모란 존재에 대해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문학동네 펴냄), 이문구의 <관촌수필>(문학과지성사 펴냄) 등을 보며 부모도 해를 줄 수 있으며 못난 사람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어느 책에서 육체 노동은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술에 의존하게 한다는 구절을 읽었다. 그래서 아빠가 그런 건가? 많은 작가들이 부모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반복해 쓰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겨우 이해한 것 같다. 그렇더라도 내가 아빠를 용서하고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손에 들려 있는 수화기를 바라보는데, 수화기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무릎을 감싸 안고 앞뒤로, 앞뒤로, 몸을 흔든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만이 할 수 있지. 물건 부서지는 소리와 엄마가 깊게 울부짖는 소리가 끊일 줄 모르고 울려 퍼진다. 나는 주먹으로 허벅지를 내리치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냐. 하나님을 기다릴 시간도 없고. 나밖에 없잖아. 멈춰야 해. 멈춰야 한다고. 더 이상은 안 돼."
친구 가족을 부러워하며 차마 말하지 못했던 비밀, 그 곪아버린 상처가 터진 날, 영주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아빠를 신고한다. 그런 때가 있다. 참고 참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는 날, 몇 대 맞더라도 꼭 말해야겠는 날. 내게도 그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악을 썼다.
그러나 나는 영주가 아니었다. 삶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아빠를 보면서 위로하는 손 하나 내밀지 못했고 신산한 인생을 살아온 엄마의 손금을 어루만지지 못했다. 냉정하게 외면했다. 꿋꿋이 공부하지도 않았고 가족을 탓했다. 나에게 솔직하고 용감하지 못했다. 미워하다 화해하고 다시 분노하고 갈등하며 이제껏 살았다. 애증의 삶이었다.
영주의 아빠는 가족을 버리고 떠났지만 지금 내 아빠는 곁에 있다. 일 갔다 오면 꼭 내 방문을 열어보는데 무뚝뚝한 딸은 인사 말고는 말을 할 줄 모른다. 대화하고 싶은데 멋쩍어하는 거 알면서도 딸은 살갑지 못하다. TV 보고, 먹고, 자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아빠, 술과 자동차밖엔 낙이 없는 아빠를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아빠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 내가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완전히 신세가 뒤바뀌었네" 하면서 주름진 손으로 안마해준다. 교회도 안 다니면서 꼬박꼬박 차로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나를 전철역까지 바래다준다. 언젠가 아빠는 죽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많이 울 것 같다.
영주는 내가 처음으로 아빠에 대한 글을 쓰게 했다. 아빠를 다시 바라보고 정리하게 했다. 상처 많았어도 차분하고 침착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다. 영주처럼 강하거나 똑똑하지 못해도 거실에서 잠든 아빠 어깨에 손을 뻗어 토닥일 수 있지 않느냐며 재촉하고 있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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