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으로 제격이다. 그럴싸하게 설을 푼다면 말이다.
중국 거시 경제 전문가 거우홍양(勾紅洋)은 2009년 미국의 탄소 관세 부과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유럽과 미국의 저탄소 전략을 파헤쳐 '발견'한 선진국의 <저탄소의 음모>(허유영 옮김, 라이온북스 펴냄)를 폭로한다. 스스로 "아직 시도된 적이 없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후 변화와 저탄소를 인식했다고 밝혔지만, 새롭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B급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기후 변화 음모론과 다르지만 기후 변화의 과학적 사실에 대한 부정 내지 회의가 적잖이 존재한다. 이런 기후 변화 회의론은 기후과학자인 로이 스펜서(<기후 커넥션>(이순희 옮김, 비아북 펴냄))에서부터 통계학자인 '회의적 환경주의자' 비욘 롬보크(<쿨 잇>(김기응 옮김, 살림 펴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포진해 있다.
▲ <저탄소의 음모>(거우홍양 지음, 허유영 옮김, 라이온북스 펴냄). ⓒ라이온북스 |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과 개발도상국도 탄소 감축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발도상국의 배출량이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 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의식'만으로는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를 피해 가기 힘들다"는 고백이 그렇다.
거우홍양은 이산화탄소와 기후 변화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이론이 없다는 회의론과 저탄소에 동참해야 하는 현실론의 갈래에서 갈지자 행보를 계속한다. 이런 우스꽝스런 논리에서 선진국을 제치고 저탄소 경제 대국을 꿈꾸는 중국 지식인의 정신분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이 또한 '저탄소의 음모'일까? 거우홍양의 음모론과 나의 음모론(?) 중 어떤 것이 맞는지 텍스트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1장('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서 거우홍양은 미국과 유럽이 탄소 관세 등 '탄소 장벽'을 통해 중국과 개발도상국들의 성장을 억제하고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 정치 경제의 '사다리 걷어차기' 논리와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 주장은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기후 변화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걸까? 십수 년 전부터 시스템 변화를 추구하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운동의 탄소 시장과 탄소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극에 달해 있다. 환경 단체가 "고도의 쇼로 전락"했다는 거우홍양의 비판은 무지이거나 왜곡이다.
2장('빈 수레만 요란했던 코펜하겐 회의')은 이 책의 의도에 가장 부합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전후로 벌어진 '기후 게이트'와 '덴마크 문건' 유출 사건을 소개하고,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역할을 설명한다. 거우홍양에 따르면, 이메일 해킹 사건은 러시아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고, IPCC는 영국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단, 한 가지 주장은 백번 공감하고도 남는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실 기체의 대부분은 과거에 선진국들이 배출한 것이다. 그런 그들이 지구를 실컷 더럽혀 놓고서 문제가 생기니까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들을 끌어들여 함께 해결하자는 것 자체가 억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중국이 제3세계의 대변인으로서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런 주장에 힘이 더 실려야 마땅하겠으나, 저자는 음모론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3장('공공의 적이 된 이산화탄소')은 산업화 이전에도 온난화와 한랭화가 발생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지구 온난화 주장이 이산화탄소에 기후 변화의 누명을 씌운다고 정리한다. 보다 세련된 회의론을 예상했지만, 기대 밖이다. 기후 변화는 지구의 지각 활동. 천문 운동과 같은 자연적 원인과 화석연료 연소와 산림과 토지의 변화에 따른 온실 기체 증가라는 인위적 원인으로 발생한다. 현재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인위적 탓인데, 기상학자인 피어스 포스터는 인간의 영향이 태양의 영향보다 10배의 위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거우홍양이 이와 반대의 수치를 제시했다면, 합리적인 논쟁이 가능했을 것이다.
4장('에너지와 제국의 흥망이 기록된 탄소 지도')은 석탄과 석유의 역사를 통해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전개하는데, 기후 변화가 아닌 자원 고갈을 이유로 들어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과 저탄소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이저 산업계를 비롯해서 많은 회의론자들이 피크 오일에 회의적이거나 훨씬 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했다고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에 300~400년 동안 사용할 석탄이 남아 있다는 저자의 낙관에 기가 막힌다.
5장('탄소 무역, 형평성을 잃어 가는 세계의 저울')과 6장('탄소 무기화를 서두르는 강대국들')은 1장의 연장이다. 강대국들의 탄소 관세와 배출권 거래제 등 탄소 시장의 음흉한 의도를 들춘다. 특히 유럽의 작전 세력은 미국의 오일달러를 대체하기 위해 '탄소유로'를 설계하기 위한 새로운 도덕규범을 수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시장 메커니즘의 탄소 시장이 투기 시장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는 저자의 입장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청정 개발 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 역시 기후변화협약 교토 의정서의 시장 메커니즘에 속하는 데다, 자국이 이익을 볼 경우에는 침묵하다가 이익이 줄어들 때는 핏대를 세우는 게 중국이 아니었던가? 거우홍양은 대다수 빈국과 개발도상국이 CDM에서 제외되고 중국 등 일부 개발도상국만 혜택을 누리는 불평등에 눈을 감는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빈틈은 더 커진다. 교토 의정서의 시장 메커니즘 도입에 주도적인 국가는 유럽이 아니라 미국(앨 고어)이었으며, 미국에서 교토 의정서가 통과되지 못하자 탄소 시장의 헤게모니를 유럽에 넘겨준 것이지, 애초부터 유럽이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최근까지도 미국에서는 탄소 시장 법안이 부결되었는데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시장 형성에 나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겪자 미국도 유럽처럼 저탄소 전략이 자국의 패권에 유리하다는 식으로 입장이 변했다는 주장 역시 지나친 비약이다.
7장('인류의 힘겨운 선택 '저탄소'')과 8장('저탄소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은 결론에 해당하는 만큼 갈지자 행보에 마침표를 찍는다. "청나라 시절에 그랬듯이 유럽과 미국에 의해 사방이 포위된 상태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입장이 이해는 간다(중국어판 부제는 바로 "중국과 구미의 생사를 건 전쟁(中國與歐美的生死之戰)"이다).
선진국 책임론을 강조하는 기후 정의 관점에서도 이른바 '중국 문제'의 정답은 없다. 경제 급성장으로 온실 기체 배출량 1위로 등극했지만 1인당 배출량이 낮은 딜레마 때문이다. 2009년에 중국 당국은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당 온실 기체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45퍼센트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목표를 발표했지만, 경제 성장 속도로 보면 배출 총량은 늘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세계의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초국적 기업의 투자 이윤 역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남반부 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 등이 제기하는 것처럼, 개발도상국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모두 개발도상국의 책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탄소 배출의 공간적 이전의 동학도 살펴야 한다.
누구의 음모론이 맞는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해외 자원 개발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군사 물자를 제공하고 제3세계 석유·가스를 확보하고자 선진국의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 행태를 답습하는 중국에 대한 평가 없이, 그리고 자국 내의 풍부한 석탄 자원의 활용 방법을 찾는 것이 중국 에너지 안보를 위한 확실한 선택이라는 거우홍양의 주장의 이면에도, "지구 온난화와 탄소 경제 뒤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이 숨겨진 건 아닐까?
<저탄소의 음모>는 중화주의가 탄소 경제와 만나면 어떤 주장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 정부는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는 등 선진국이 실행하는 저탄소 정책들을 연착륙시킬 계획이다. 90여 년 전, 루쉰이 간파한 대로 중국에 무엇인가 또 "왔다." 그러나 "그것이 다 왔는지 덜 왔는지, 와서 어떨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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