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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알렉산드리아'를 위해, 문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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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알렉산드리아'를 위해, 문명을 읽다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문명 안으로>·<문명 밖으로>

문명 담론의 지평이 넓혀지다

드디어 문명 담론의 지평이 우리 내부에서 보다 심화되고 확대되는 공식적인 계기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세계가 하나의 구조로 엮어지고 여행과 정보가 보다 활발해지는 조건에서 문명이라는 주제어는 교류와 갈등, 충돌과 학습 등의 여러 각도로 접근되는 개념이 되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이라는 식의 접근은 미국의 패권 체제 유지에 문명 담론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으며 적대적 긴장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적 시야를 가지고 문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 된다.

우리의 경우 그간에는 거의 독자적인 작업을 기반으로 한 정수일의 문명 교류와 관련한 담론을 비롯해서 지역 연구자들이 주도한 각종 다채로운 문명사 연구가 있었다. 이에 더해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문명에 대한 공동 연구와 주요 문명 텍스트가 일차적으로 발간된 것은 그간의 여러 노력이 결합되고 이와 함께 앞으로 새로운 문명 담론의 구축에 실질적인 자료와 논의 공간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페르낭 브로델이 1967년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시대를 다루면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역작을 내놓았을 때, 세계는 근대 문명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해석을 얻게 되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이에 근거해서 1974년 근대 세계 체제를 규명해가는 작업에 시동을 걸면서 전 지구적 문명사의 전개 양상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한층 발전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그의 노력은 이후 유럽 중심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자넷 아부-루고드가 1989년 <유럽 패권 이전의 세계, 1250년~1350년>에서 이슬람 체제를 정리해나가고, 군다르 프랑크가 1998년 <리오리엔트>로 아시아의 세계 체제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문명의 지구적 연관 관계에 대한 이해는 보다 정밀해지고 균형을 잡아나간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자면, 아놀드 토인비의 고전적인 문명 연구를 비롯해서 1962년 윌리엄 맥닐이 <서구의 등장(The Rise of the West)>으로 세계사 전반에 걸친 해설을 집대성하면서 세계 체제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진전되고, 이에 대해 1968년에 타계한 마셜 호지슨이 <세계사를 새롭게 사고하기(Rethinking World History)>와 <이슬람의 모험 : 세계 문명 속에서의 양심적 자각과 역사(The Venture of Islam : Conscience and History in a World Civilization)>로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 대한 일대 교정을 시도하게 된다.

근대 문명의 체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역사학과 사회과학은 시간적으로 고대에도 세계 체제가 존재했고, 지역적으로 이러한 체제가 지구사적으로 연관 관계를 맺으면서 지난 시기에 성장 발전해왔음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세계적 연관 구조가 더 더욱 긴밀해진 근대 문명 체계만으로 인류의 역사적 활동 공간과 시간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온 것이었다.

이러한 논의의 과정은 1982년 에릭 울프의 <유럽과 역사 없는 인민(Europe and the People Without History)>에서 보이듯 이 서구 중심의 문명사 서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변화를 통과해왔다.

문명 텍스트 읽기의 독자 공동체 만들기

▲ <문명 안으로>(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그런데 이러한 문명사 논의가 대체로 서구의 지식 공동체가 펼쳐온 주제라는 점에서, 아시아의 경우는 이에 대한 학습 내지 반론 제기나 저항 등의 맥락 속에서 사고해 오는 특징과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근대의 전환기로 들어서면 후쿠자와 유키치가 서구 문명과 하나의 몸이 되고자 했던 일본의 문명론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의 캉유웨이, 량치차오(양계초) 등도 서구 문명에 대한 아시아적 이해를 세워보려 노력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청에 대한 북벌 정책과 명에 대한 의리론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 1780년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나오기까지 그 인식의 범주는 문명사의 지구적 이해를 획득하지 못했다. <열하일기>조차도 청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식으로 북학(北學)의 가치를 내세운 것이지 문명사에 대한 세계적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역사적 위치와 미래적 가치를 논한 것은 아니었다. 중화주의의 세계관을 넘지 못한 조선 지식인의 업보인 셈이었다.

우리에게 근대가 식민지 체제 속에서 경험되고 말았다는 사실은 문명에 대한 주체적 인식의 계기를 포착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 발전, 민주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의 논의는 나름대로 발전시켜왔지만 문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축적물 또는 세계적 성취의 전면적인 학습은 그다지 진전되지 못한 상황이다. 중앙아시아와 내륙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 여전히 부족하고 서구 문명의 고전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과 사회적 이해는 여전히 뒤쳐진 상태다.

그런 조건에서 문명 담론을 제기하고 이에 관련된 역사적 이해와 텍스트 읽기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인 동시에, 그 맥락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폭을 끊임없이 넓혀나가는 노력을 요구한다. 말하자면 문명 담론의 논의를 위한 텍스트 읽기에 흥미를 갖고 열중하는 독자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일이 이 노력에 핵심적인 프로그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현대 사회에서 고대 정치 철학자인 맹자를 왜 난데없이 읽어야 하는지, 어떤 현재적 의의와 사상적 절박성을 가지고 그 텍스트를 대해야 하는지 정리되지 못하면 책은 만들어 놓고 독자는 존재하지 않는 비극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문명 안으로>와 <문명 밖으로>는 문명 담론 이해에 대한 시기적 관점의 변화와 지역적 편차, 문명 담론의 경험에 대한 여러 시선을 공동으로 정리해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저적이라고 하겠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의 각별한 노력의 소산이기에 더더욱 미래 세대의 지식 공동체 또는 지성계가 우리의 현실과 접목되는 문명 담론을 어떻게 펼쳐내게 될 것인지를 전망하게 한다는 사실도 이 두 저서의 출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문명 안으로>는 문명의 개념이 서구 부르주아 체제 결성과 함께 서구적 자존심과 우월을 확인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발전해온 것을 주목하면서 이와 마주한 한자 문화권이 이를 번역하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겪은 논의를 정리해냈다. <문명 밖으로>는 서구가 중심이 된 문명 체계 내부의 저항과 반격, 또는 그 문명 체계 밖에서 전개된 거부와 대안 문명 체계의 움직임 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렇게 문명의 안과 밖을 동시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문명이해의 편견을 교정하고 우리 안에서 어떤 담론의 풍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인지를 일깨우는 작업이 된다.

문명 담론의 공동 연구는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서 고전, 인문학, 문명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압축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밝힌 이 책은 계몽주의와 부르주아 체제가 성립 발전하면서 보다 인간적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고전의 재해석 과정에서 발생한 한편, 그 내부에 강자를 위한 문명 체계라는 모순이 내재해 있는 것을 밝혀낸다. 바로 이러한 문명과 마주하게 된 한자 문화권의 고뇌는 심각했다. 기존의 중화주의와 적절히 결합시켜나갈 것인지 아니면 그걸 몽땅 버리고 '서양 오랑캐'로부터 배워야 하는지 궁지에 처하게 한 것이었다.

이중의 근대 기획과 우리

▲ <문명 밖으로>(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이러한 한자 문화권 또는 아시아의 딜레마는 이른바 '이중의 근대 기획'이라는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문명의 수용으로 근대를 달성하는 동시에, 그 근대 내부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모순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고투가 존재했던 것이다. 문명의 근대적 수용이 인간 해방과 사회적 진보를 보장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서양 제국주의에 의한 예속의 심화와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된 인간 황폐화로 이어질 것인지의 고민이 현실로 경험된 것은 결국 <문명 밖으로>에서 지적하고 나선 주류 문명에 대한 저항 내지 거부의 현상을 주시하게 한다.

기독교의 이단 논쟁, 견유주의, 인도의 고행, 루소, 프로이트, 이슬람, 중국의 이단적 지식인 등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는 문명의 내부 구조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 체계 내부의 갈등과 저항, 반격과 해체 등이 새로운 문명의 창출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에너지가 되는 것인지도 목격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문명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그걸 현재적 관점에서 읽고 해석해내는 것은 문명 담론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차로 발간된 문명 텍스트 7권은 흥미롭다.

명·청조 교체기의 역사적 격류 속에 휩쓸려가면서 민의 존엄성과 군주의 책임을 통렬하게 물어 오늘날에도 그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이 서릿발 같은 <명이대방록(明夷待訪綠)>이라는 역저를 쓴 황종희의 <맹자(孟子師說)>는 맹자에 대한 이해를 보다 날카롭게 해주고 있다. 군주가 사리사욕을 위해 백성의 때와 권리를 빼앗는 것을 여지없이 비판하고 있는 그의 책에서 우리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윤리적 지침의 기본을 보게 된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적 가치를 지닌 정치 사상적 원칙이다.

18세기 중후반 괴테와 함께 질풍노도의 시대를 연출한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의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책이다. 인류 문명사 전체에 걸친 그의 해석과 이해는 세계사의 기원적 인식이 이미 얼마나 상당한 지경에 올라갔는지를 알게 해주며 역사의 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의미를 고찰하는 작업에 기여한다. 10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의 중류 귀족이자 일부다처제의 현실 속에서 사랑과 고뇌를 겪은 한 여인의 기록인 <가게로 일기>는 이슬과 같이 덧없이 사라질 사랑을 믿다가 가슴에 화살을 맞은 존재의 내면풍경을 아프게 읽게 한다. 이후의 일본 문학이 가지게 되는 섬세함과 내면 지향적 특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와카라는 단문의 글에서 마음의 진실을 표현하는 경지를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문학적 가치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도록 한다.

맹자, 헤르더, 윈스턴리

영국의 내전 과정에서 민중들의 고통을 몸소 겪으면서 특히 토지에 대한 권리를 철저하게 정리하고 규명한 제라드 윈스턴리의 <자유의 법 강령>은 오늘날에 읽어도 땅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모두의 공동의 권리가 되어야 하는지 치열한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서 권력자들의 사적 권리에 속하도록 만든 인클로저를 강도짓이라고 일갈한 그는 창조의 시기에 이미 공동의 자산으로 허락된 땅이 이렇게 되면서 창조주에 대한 모독을 자행하고 있다고 권력자들에게 맹타를 날린다. 정치경제적 격전의 시대가 낳은 혁명적 사유의 성취다.

이밖에 아직 읽어보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쓴 소혜왕후의 <내훈(內訓)>, 몽골 유목민의 서사 <장가르>와 지리적 공간에 대한 남성 권력의 지배를 비판한 질리안 로즈의 <페미니즘과 지리학> 등도 모두 한 시대의 문명이 지향하는 가치 논쟁과 관련해 치열한 읽기가 공동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텍스트라고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질리안 로즈의 <페미니즘과 지리학>이 흥미롭게 여겨지는데, 데이비드 하비가 시도한 공간에 대한 자본의 지배에 대한 규명 작업 못지않게 남성 권력이 실현되는 장으로서의 지리학을 여성의 눈으로는 어떻게 읽어내고 있을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의 '알렉산드리아'를 위해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가 번역 출간한 무수한 고전과 함께 이번에 나온 문명 공동 연구와 문명 텍스트는 하나의 거대한 시민 대학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각 텍스트들의 가치와 그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오늘의 현실과 언제나 왕성하게 만나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논의와 저작이라는 점에서, 이런 노력과 작업은 너무도 소중하다.

우리의 근대가 문명사 전반에 걸친 세계사적 이해와 역동적 해석의 결여가 한 몫 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제 동아시아의 현실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정체, 남과 북의 분단을 기반으로 어떤 격류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 가늠이 잘 가지 않는 현실에서 문명 담론의 사회적 확대와 심화는 우리의 생존 역량을 기르고 미래의 전망을 기획력 있게 도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명의 공동 자산을 모으고 그걸 개개인의 발전과 그 사회의 진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각 시대 나름의 알렉산드리아가 없는 문명은 희망을 갖기 어렵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알렉산드리아를 만들어 문명 담론의 활력 있는 성장에 새롭게 힘을 모아보자. 긴 안목과 깊은 사유가 이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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