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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 참사,노동조합의 책임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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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후쿠시마 핵 참사,노동조합의 책임은 없나?"

[초록發光] 노동조합과 핵발전소

나는 지난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노총 제2회 아태 지역 총회에 민주노총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이 지역 총회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향후 5년 동안 국제노총 아태 지역의 행동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향후 5년 동안의 행동 프로그램에서는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을 포함하는 노동 기본권과 조직화 사업,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입법 개혁과 사회적 프로그램의 건설을 포함하는 노동 정책, 평화와 군축 등이 주요 우선순위 과제로 제시되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두 달이 지난 시점이어서 핵 발전에 대한 국제노총 아태 지역의 입장이 나로서는 아주 궁금했다. 이는 민주노총 대표단 전체의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향후 5년 동안의 행동 프로그램 초안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언급은 "핵연료 사이클의 효과적인 국제적 통제를 통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촉진"이라는 하나의 문구밖에 없었다.

현재 국제노총 아태 지역 사무총장이 일본 출신이라는 점에서(그는 이번 지역 총회에서 재선되었다), 이것은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더구나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 노총의 조합원과 그 가족이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5년 동안의 행동 프로그램에 대한 이틀 동안의 토론 과정에서 일본 노총 측 참가자들로부터는 핵 발전의 중단이나 단계적 폐지 등에 관한 어떠한 발언도 들을 수 없었다.

민주노총 대표단은 핵 발전의 중단과 사회적·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세계에서 건설 중이거나 향후 수 십 년 동안 건설 예정인 핵발전소의 대부분이 아태 지역에 집중되었다. 일본, 한국, 중국, 인도는 아태지역 핵발전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동아시아 지역은 지구상에서 핵발전소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 되고 있으며,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핵 참사에 노출되어 있다.

우라늄 채광과 핵발전소의 건설·운영·유지, 핵폐기물의 처리 등을 포함하는 전체적 과정에서 보면, 핵 발전은 내재적으로 비민주적이고 안전하지 않으며 불안정하고 경제적·사회적·정치적·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행동 프로그램에 언급되어 있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란 아태 지역 핵 발전의 암울한 현실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회피하려는 완곡어법일 뿐이다.

이번 지역 총회는 아태 지역의 핵발전소에 대한 노동조합 논의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으로서 우리는 핵 발전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표명해야 하고, 다른 사회운동과 함께 그러한 반대를 밑으로부터 조직해야 하며, 사회적·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 이번 지역 총회가 아태 지역에서 이러한 중대한 집단적 노력의 첫걸음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향후 5년 동안의 행동 프로그램에 명확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일본 후쿠시마의 핵 참사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민주노총 대표단의 이러한 발언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채택된 최종 행동 프로그램에는 핵에너지 이용의 단계적 폐지, 지속 가능한 경제 사회 발전을 위한 녹색 에너지 투자 확대 등이 포함되었다.

ⓒ프레시안(손문상)

이번 국제노총 아태 지역 총회를 통하여 내가 느꼈던 것은 노동조합도 현재의 화석연료 기반의 사회 경제 시스템의 일부로서 현재 시스템의 유지에 적지 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엄청난 핵 참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에 따른 조합원과 그 가족, 지역 주민, 국가 공동체의 상당한 피해와 희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 발전의 중단이나 단계적 폐지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 표명이 없거나 조심스럽다는 것은 이것을 방증한다.

사실 노동조합은 기존 생산 체제 내에서 '분배' 문제에 대한 교섭과 투쟁에 익숙해있다. 임금, 고용, 노동 조건 등에 대한 교섭과 단체 협약의 대부분은 분배 문제에 관한 것이다. 기존 생산 체제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이나 모순 등에 대한 노동조합의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노동조합 활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일은 드물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위기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은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화석연료 기반의 현재 사회 경제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국제노총은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 관련 국제 협상이나 정상 회의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도 몇 년 전부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환경·사회단체와 함께 참여해 왔다. 2010년 11월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 16)를 앞두고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선진국의 기후 부채 해결, 정의로운 전환 수용, 역사적 책임에 걸 맞는 한국 정부의 온실 기체 감축 목표 제시,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기후 변화 정책의 수립과 집행 등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지난 5월 25일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환경단체, 시민·사회단체, 진보 정당 등과 함께 '기후정의연대'를 출범시켰고 같은 날 '기후 변화, 정의로운 대안을 찾아서' 토론회를 개최하여 기후 정의 운동, 핵 발전 정책, 에너지 정책과 노동조합의 과제 등을 다루었다.

아직 미약한 움직이지만, 노동조합이 기후 변화와 관련하여 핵 발전을 포함한 한국의 에너지 정책, 중장기적 사회 경제 시스템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반가운 일이다. 역대 정권의 거듭된 노동조합 탄압과 노동 기본권 파괴로 노동조합의 존립 기반이 위협받는 어려운 현실에서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해야만 하는 일이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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