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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승리? 지진과 싸워서 이겼냐고 물어라!

[프레시안 books] 김재명의 <오늘의 세계 분쟁>

우리 인류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한 전쟁 연구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황허 유역 등에서 문명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340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겨우 268년이다.

지난 20세기도 100년 내내 전쟁으로 얼룩졌다. <파리 대왕>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 소설가 윌리엄 골딩이 "20세기는 폭력의 세기"라고 한탄했듯이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쟁, 발칸내전 등 유혈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70억 인구가 살아가는 21세기 오늘의 세계도 평화와 거리가 멀다. 한 해 동안에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은 전쟁들이 해마다 15건쯤 벌어지고 있다. 전쟁이 낳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민간인 희생자가 군인 사망자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한 전쟁 연구를 보면, 1900~95년 사이의 전사자는 1억970만 명이며, 이 가운데 민간인이 6200만 명으로 전투원보다 더 많이 죽었다. 민간인 희생자의 상당수는 무차별 포격과 공습에 따른 것이다.

"2000년 이후 30개의 전쟁이 벌어졌다"

▲ <오늘의 세계 분쟁 : 국제 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전선 리포트>(김재명 지음,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국제 분쟁 전문 기자인 김재명(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정치학 박사)의 <오늘의 세계 분쟁>(미지북스 펴냄)은 중동, 발칸반도, 서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 지역 등 전 세계 15개 분쟁 지역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쓴 전쟁과 평화론이다. 저자가 직접 보고 겪고 느꼈던 분쟁 지역의 참상을 직접 찍은 140장의 사진과 함께 전쟁의 속살을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다.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는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 전쟁을 모르고 살던 보통사람들도 어느 날 내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2000~09년 한 해에 1000명 이상 희생자를 낸 유혈 분쟁을 지역별로 모두 더하면 30곳이나 된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과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사이의 전쟁을 빼면 모두 내전이다. 지금 전 세계 언론의 눈길이 쏠린 리비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내전 양상으로 번지는 중이다.

유혈 투쟁 한복판에 놓인 사람들

지구상에서 왜 유혈 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지를 분석한 이 책은 저자가 2005년에 출간했던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지형 펴냄)를 전면적으로 수정 보완한 책이다. 팔레스타인, 이란, 레바논 등 지난 6년간 거듭 취재한 분쟁 지역들에 대한 분석을 더하고 그 동안의 국제 정세의 변화를 담아내 200쪽 가까이 책의 두께를 늘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분쟁 지역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뿐 아니라 전쟁 피해자, 난민, 정치 지도자, 병사, 국제 기구 요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유혈 투쟁의 한복판에 놓인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냈다.

특히 한국인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과의 직접 인터뷰 내용이 눈길을 끈다. 팔레스타인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고 셰이크 아메드 야신, 다이아몬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도끼로 손목을 치는 잔혹한 내전의 땅 시에라리온 반군 지도자 포데이 산코, 체 게바라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5개국 여행길에 올랐던 고 알베르토 그라나도 등을 만나 그들의 귀한 말들을 전하고 있다.

"전쟁의 원인은 전쟁 숫자만큼 다양하다"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전쟁의 원인을 짚어보면서, 특히 1990년대 초 동서 냉전이 막을 내린 뒤 봇물처럼 터진 내전을 통해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의 참극이 왜 일어났는지를 살펴본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리버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에 관한 설명들은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 수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했다. 저자는 정치학자들의 전쟁 연구 성과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면서, 역사 이래 우리 인류가 벌여온 전쟁들, 특히 1990년대 이후 벌어진 전쟁들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한다.

제2부는 저자가 15년 동안 취재해 온 지구촌 분쟁 지역 가운데 15개 지역을 골라 새로 쓴 글이다. 중동 지역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이란,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동남아시아의 동티모르와 캄보디아, 유럽의 화약고라 일컬어지는 보스니아와 코소보,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남북아메리카의 볼리비아, 쿠바 관타나모, 미국 등이 저자가 다룬 지역들이다. 미국이 분쟁 지역에 포함된 것은 9·11 테러를 겪은 뒤 지금껏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병사들이 전투 중인 교전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3부에서는 9·11 테러 뒤 주요 시사용어로 떠오른 '테러와의 전쟁'을 다루면서, 미국이 벌여온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성격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자살 폭탄 테러가 지닌 복합적인 성격과 자폭 테러범들이 누구이며 왜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모는지를 살펴본다.

끝으로 저자는 국지적인 내전과 자원을 둘러싼 이권 전쟁들, 강대국들의 군비 증강과 핵무기 보유 실태를 살펴보면서, 21세기 지구촌에 평화가 찾아오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타 지역 분쟁은 한반도의 거울

지금껏 많은 국가와 집단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를 죽이고 피를 흘려왔다. 미국의 정치학자 케네스 왈츠는 전쟁이 우리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뜻에서 "전쟁에서 누가 이겼느냐고 묻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지진에서 누가 이겼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 책은 현대 전쟁과 테러가 왜 끊임없이 일어나는가, 누가 그 전쟁으로 이득을 챙기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전쟁학 교과서'이다.

우리 한국도 세계적으로 관심이 쏠리는 분쟁 지역이다. 저자는 "다른 지역의 국제 분쟁은 곧 한반도 분단 극복을 위해 관심 있게 비춰볼 거울"이라 말한다. 그 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평화를 가져왔는지(또는 지금도 혼란 속에 있는지), 무엇이 전쟁과 평화를 갈랐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 큰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국제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지구를 가리켜 '전쟁 행성'이라고 불렀다. 21세기 문턱을 넘어선 지도 벌써 10년, 오늘의 세계는 분쟁과 폭력으로 어수선하다. 따라서 저자는 "한반도를 포함한 21세기 세계의 기상도는 여전히 흐림"이라고 진단하면서, 지구촌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의 비둘기가 날아들길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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