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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읽으려나? 안쓰럽다, 안쓰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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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읽으려나? 안쓰럽다, 안쓰러워!

[프레시안 books] <독서의 탄생>·<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거의 모든 책이 반갑다. 시간 때우기 용인 대중 소설부터 역사·경제·과학 분야의 제법 묵직한 책들까지 두루 좋다. 해서 어지간한 책이면 '언젠가 읽겠지'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에 챙겨두는 편이다.

그런 와중에도 지은이 혹은 출판사가 딱하게 여겨지는 책들이 있다. '누가 읽으라고' '얼마나 팔려고' 싶은 책들이다. '책에 관한 책'이 그 중 하나다. 아, 물론 책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이나 고전 명저 해제집은 제외다. 흥미를 위해서 혹은 짧은 시간에 실용적 목적을 위해 찾는 이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책 혹은 독서의 역사를 다뤘거나 독서술을 다룬 책들이 필자가 안쓰럽게 여기는 대상이다.

어느 책에선가 미국의 진정한 독서인이 2만 명 선이라는 사실을 읽은 적이 있다. 교양을 위해 자기 돈을 들여 다양한 책을 읽는 이가 그렇다는 이야기였는데 인구 비율로 치면 우리나라엔 5000명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이들 정도는 되어야 관심이 있을 '책을 위한 책'은 척박한 우리 독서 시장에선 그야말로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출판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딱한 생각이 들 수밖에.

최근 선보인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톰 라비 지음, 돌베개 펴냄)과 <독서의 탄생>(마거릿 윌리스 지음, 황소자리 펴냄)이 바로 그런 딱한 책이다. 중독은커녕 한 달에 한 권 읽는 독자도 찾기 힘든 마당에, 책보다는 컴퓨터나 TV와 친숙한 풍토에 누가 손에 들까 싶어서다.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진귀한 이야깃거리를 찾는 소수의 책벌레들을 위한 책이라 할까.

▲ <독서의 탄생>(마거릿 윌리스 지음, 이상원 옮김, 황소자리 펴냄). ⓒ황소자리
<독서의 탄생>부터 보자. 우선 책 제목에 홀리지 말자. 영국의 출판인 출신이 썼는데 옮긴이가 책머리에 고백했듯이 "지난 500년간 영국인들의 독서"가 핵심 내용이다.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펴냄)나 <읽는다는 것의 역사>(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읽기의 역사>(지영사 펴냄)처럼 역사 전반을 다룬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물론 이 책들도 서양 저자가 썼기에 인류 문명사의 독서 행위 전반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독서의 탄생>은 훨씬 범위가 좁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도서관 이야기가 한 장(章)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영국 이야기다.

16세기 귀족 부인 베스 헤드윅에서 시작해 20세기 정치인 데니스 힐리까지 저명한 독서인을 중심으로 영국의 출판계·도서관·장서가·독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적지 않다.

'일반 독자(Common Reader)'란 개념은 작가이자 비평가인 새뮤얼 존슨이 18세기에 처음 사용했단다. 그만큼 이전까지 책은 귀족과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경제적 제약을 받는 노동자층은 문자 해독 능력도 떨어졌고, 비싼 책값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기에 책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이와 관련해 사회 태도도 특히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노동자 계층에게 독서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던 명재상 글래드스턴이나 소설가 찰스 디킨스 같은 인물조차 가난한 사람이 글을 읽고 생각하게 되면 비참한 처지를 인식하여 "복종이라는 위대한 법칙"에 도전하게 된다고 경계했다. 18세기 후반 존 트러슬러란 목사는 프랑스 혁명은 인쇄술의 발달 때문이라며 "노동하는 이들은 못 배울수록, 그리하여 미천하게 살수록 더 잘 복종하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책 그리고 독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미국이 건국 직후 국립도서관 건립을 추진했으며 토머스 제퍼슨은 4개의 도서관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또 제퍼슨은 자기 장서 6487권을 의회도서관에 기증하면서 일괄 구입을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이단적 철학'을 퍼뜨릴 수 있고 나쁜 책, 옛날 책, 가치 없는 책이 뒤섞였다는 정적들의 반대로 의회에서 구입 안에 대한 표결에 붙여져 10표 차이로 의결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찌 보면 한가하게 들리지만 건국 초기에 이런 구상과 논의를 했다는 자체에서 미국의 힘의 뿌리를 느끼게 된다.

책은 이밖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기원, 사회 개선의 불꽃을 지핀 레프트북 클럽,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펭귄북스 탄생의 뒷이야기 등 애서가들을 위한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톰 라비 지음, 현태준 그림, 김영선 옮김, 돌베개 펴냄). ⓒ돌베개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은 독특하다. 앞에 든 책이 놀라울 정도로 자료를 뒤져낸 정통 인문서라면 이 책은 '책 중독자'를 자처하는 이가 쓴 에세이집이다. 더러 장서가나 책 수집광을 둘러싼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풍자에 가깝다.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열린책들)나 <젠틀 매드니스>(뜨인돌)에서처럼 책에 관한 에피소드를 기대하지 말란 뜻이다.

책 도취증 환자를 위해 '모호한 표현 찾기 표'란 게 나온다. 난수표처럼 3행 10열로 된 표에서 적절한 표현을 고르면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상대방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 표에서 739를 고르면 "부르주아의 메타 언어적인 허튼소리"가 되는데 어떤 책에 이 같은 평을 하면 누가 감히 대거리를 하겠는가.

그런 조언이 또 있다. 서가에 있는 책의 대략 10%에 책갈피가 꽂혀 있어야 한단다. 그 이하면 풋내기 같아 보이고 그 이상이면 호사가로 보인다나. 단 책갈피가 꽂힌 책은 너무 초보적이면 안 되고 정기적으로 책갈피 위치를 바꿔줘야 한단다. 단 사전 등 참고 도서에는 똑같은 쪽에 오래도록 책갈피가 꽂혀 있더라도 무방하단다.

토르콰토 타소란 이탈리아 작가는 고양이 눈 광채에 의지해 책을 읽었다든가 19세기 영국의 책 중독자 리처드 히버는 20만 권에서 50만 권의 책을 모아 8채의 집에 두었다든가 어떤 책 중독자의 사후 장서를 파는 데 5년이 걸렸으며 책 공급이 늘어나는 바람에 런던의 책값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들도 실렸다.

"목적을 가지고 책을 펴고 이익을 얻고 책을 덮으라"란 말이 있다. 글쎄, 책을 읽는 행위가 반드시 실용적일 필요는 없으니 꼭 따를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을 때 혹은 고를 때 '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유용한 충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두 책 모두 아주 한정된 독자를 위한 책이다. 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자 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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