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온 국민의 공적 관심사인 세금 문제에, 그것도 장차 우리가 만들고 싶어 하는 보편주의 복지 국가의 재정적 원천으로 매우 중요한 '세금 문제'를 다루는 책에 이런 불경스러운 제목을 달았을까?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정부가 공공 자금인 세금을 얼마나 불공평하게 거둬 가는지, 그렇게 거둔 돈을 얼마나 멋대로 쓰는지, 그 비밀을 누설"하고 있다. 특히, 자본과 자산 등 특권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이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부, 부자 감세를 단행하고 4대강과 토건 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 넣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조세 재정 정책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신랄하게 질타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정상적으로 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탈세를 일삼는 한국 사회의 특권층,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조세 관련 행정 당국, 이와 더불어 무책임하고 불공정하고 실패한 조세 재정 정책을 편 이명박 정부와 여당,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에게는 매우 불경스러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용기 있는 치밀함과 이 책에 박수를 보낸다.
▲ <프리라이더>(선대인 지음, 더팩트 펴냄). ⓒ더팩트 |
가령 부동산 등의 자산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논파하고, 탈세를 막고 세원을 확대하는 등의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조세를 통해 이렇게 마련된 정부 재정이 얼마나 황당하게 낭비되고 있는지, 특히 토건 사업에 돈줄 역할을 하고 있는 낭비적 정부 재정의 실태를 고발함으로써 재정 지출의 건전성 확보와 토건 재정의 복지 재정으로의 지출 구조 조정 등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체제인 대한민국 경제 사회에서 조세 및 재정 지출의 문제와 관련하여 현상적으로 드러나고 주어진 모든 것을 다 다룬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것으로 끝이다. 더 나아가지 않고 있다.
중산층에게까지 걸친 광범위하고 만성적인 민생 불안을 야기하고, 그러면서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을 불가능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체제를 넘어 역동적인 보편주의 복지 국가로 나아가자는 국민의 열망을 조세 재정 체계와 관련하여 증세와 적극적 재정 정책으로 담아내는 데까지는 시야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조세 형평성과 조세 정의 문제의 개선과 현행 조세부담률 수준에서의 세목 간 부담 조정, 즉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와 근로소득에 대한 감세 고려 등의 '현상 유지' 관점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부담률이 세계적으로 낮기 때문에 일반정부(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의 재정과 비시장적 공공 기관의 재정을 합한 것으로 국제 비교의 기준으로 사용됨)의 규모가 2010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약 31% 정도다. 북유럽 국가들 평균은 55%이고, 유럽연합 국가들 평균은 51%, OECD 국가들 평균은 45%이므로 우리나라의 조세 재정 규모는 형편없이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정 규모가 유럽 선진국 수준은 아니라 OECD 평균 수준에라도 도달하려면 14% 포인트가 더해져야 한다. 즉, 우리나라의 2010년 GDP를 약 1100조 원으로 보면, 2010년 일반정부 재정은 약 340조 원이 되고,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약 150조 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보편적 복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지금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주장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를 제도적으로 추진하고 생애 주기에 따른 '적극적 복지'를 위한 사회투자를 강화하려면, 이뿐만이 아니라 '공정한 경제'를 위해 적극적 산업 정책을 펴려면,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을 펴려면 올해 기준으로 최소 연간 100조 원 이상의 재정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복지 국가 전망에 따른 재원 조달이란 측면에서의 '세금'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산 시장에서 발생한 개인들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면 생산 경제 영역의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줄여줄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선진 조세 체계를 구축하려면 세원에 대한 조정이 꼭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향후 부동산 가격이 장기간에 걸쳐 하락할 공산이 커 보유세와 양도세, 임대소득세 세수 또한 앞서 설명한 대로 모두 걷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최소 20조 원 정도의 추가 세수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쌓아가며 10년 정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법인세나 소득세 등 생산 경제의 세금을 경감하거나 최소한 더 올리지 않아도 되는 세수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109쪽)
내가 밑줄 친 부분을 언급하자면, 증세 없이 세원을 조정하는 방식을 통해 연간 20조 원 정도를 추가 확보할 수 있는데, 이것을 하기가 그리 용이하지 않으므로 10년에 걸쳐 이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등 '조세 정의 바로 세우기' 등을 통해서도 복지 국가를 위한 재원을 금방 마련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결은 복지 국가를 위한 '증세를 말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다. 조세 정의는 매우 중요한 우리의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래서 확고하게 추진해야 하겠으나, 짧은 기간 내에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를 빌미로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자가 이 책의 제2권을 출간할 계획을 밝히고 있으므로, 이후의 책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어주길 기대한다.
우리 진보·개혁 진영 내부에서 소득세(법인세와 근로소득세) 중심의 누진적 증세를 반대하는 데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의 이유를 드는데, 대부분은 증세가 올바른 길이지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므로 선거 승리를 위해 증세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산 경제 영역의 세목인 소득세에 대한 증세가 경제에 해로우므로 논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다. 저자의 이야기를 하나 더 들어보자.
"지금의 잘못된 세수 구조의 틀을 유지하면서 생산 경제 영역에 부과되는 세금 부담을 늘린다면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질 개연성이 높은데, 생산 경제에 대한 세금 부담까지 계속 늘려간다고 생각해보라. 가뜩이나 위축되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110쪽)
저자가 앞에서 말했듯이, 잘못된 세수 구조를 고치는 데는 10년 넘게 걸릴 것인데, 저자의 주장대로, 현 상태에서 소득세 중심의 증세를 추진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재앙이 된다면, 범야권이 복지 국가의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알고 있는 복지 국가의 논리와는 많이 다른 것이다. 미국식 주류경제학이 제시하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경제 사회 체제를 넘어서려는 보편적 복지 국가에서는 잘못된 세수 구조를 고치려는 지속적 노력과 함께 소득세 중심의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
즉, 직접세의 세율을 누진적으로 높여야 하는데, 발생한 모든 소득은 궁극적으로는 개인에게로 귀착되기 마련이므로 소득세에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소득세의 비중이 4.4%에 불과한데, OECD 국가들의 평균 비중은 9.4%다. GDP 대비 5% 포인트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소득세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일 경우, 2010년 우리나라의 GDP를 약 1100조 원으로 보면, 소득세에서만 약 55조 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
추가로 늘린 세수의 대부분은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에 사용할 것이므로 누진적 직접세인 소득세에 일정세율을 누진적으로 부가하는 방식의 '사회복지 목적세'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또, 보편적 복지 국가라는 한 배를 타고 정정당당하게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소득이든 간에 '소득이 있는' 누구나 세금을 내야한다. 그러므로 각종 공제 제도는 폐기하고 세수 기반을 넓히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우리가 당장 북유럽 복지 국가 수준으로 소득세의 비중을 높이자는 것도 아니고, 겨우 OECD 국가들 평균 수준에 도달하자는 것인데, 이것이 경제를 망친다면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가 경제 성장도 더 잘 한다는 사실을 각국의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고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목격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1월 10일 2011년 신년 기자 회견을 통해 '사람 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 국가'를 제시했다. 손 대표는 "복지는 인격의 동등함,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을 둔 가장 격이 높은 사회 제도"이며 "시대적 요구"로써 "민주당은 무상 급식에 이어 무상 의료, 무상 보육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정동영 의원은 일찌감치 '역동적 복지 국가'를 제안하였고, 천정배 의원도 <정의로운 복지 국가>라는 저서를 발표했고, 박근혜 의원은 '한국형 복지 국가' 구상을 내놓았다. 바야흐로 한국 정계에 복지 국가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듯하다. 복지 국가가 시대정신이라는 정치적 정황 증거이므로 이 모두를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복지 국가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국민적 신뢰를 받으려면 반드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구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봤을 때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민주당의 손 대표가 2015년까지는 세금을 올리지 않고,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고 기존의 예산을 잘 운용해서 복지 예산을 마련하겠다는 식의 발표를 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공산이 크다. 이는 손 대표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 심지어는 진보정당에도 이런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진보신당의 조승수 대표가 신년 기자 회견에서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그는 "진보신당은 복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사회복지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정책 방안은 진짜 복지냐 가짜 복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체제의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우리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다면 조세 재정에서 현상적 치밀함만으로는 안 된다. 복지 국가를 향한 시민사회와 국민의 열망을 믿고 용기 있게 "깨어있는 시민들"과의 담화에 나서야 한다. 누진적, 사회 연대적 증세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것이 '밥 먹여주는 진보' 담론을 통해, "깨어있는 시민들"의 역동적 복지 국가 혁명을 통해 우리나라 정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이것만이 2012년의 정치적 승리를 보장함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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