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25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3년 동안의 유혈을 끝장낸 지 6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60년이면 두 세대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아이를 낳은 일이 두 번 되풀이되는 기간이다. 전 세계 전쟁사에서 두 세대가 지나도록 화해하지 않고 으르렁대는 사례들은 흔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한국이 대표적인 보기로 꼽힐 정도다.
이즈음 한반도 정세는 긴장감 속에 휩싸여 있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고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이다. 금강산관광이 없어진 뒤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지는 개성공단은 폐쇄 위기에 놓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은 극우파들이 망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기상도는 흐리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해법은 무엇인지를 찾아봐야 한다.
5월 24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 특별 세미나'(불교생명윤리협회 주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주관)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세미나 주제는 '동아시아 질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미나는 △법응스님(불교생명윤리협회 공동 대표),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교수(민교협 상임의장)의 인사말 △이종석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장관)의 기조발제에 이어 △이철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평화협정의 필요성과 가능성, 그리고 쟁점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가 '김정은 체제의 대외전략 변화와 동아시아 질서: 평화의 출구전략'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여성의 관점에서 본 전쟁의 참상과 한반도 평화론'을 각기 발제하였다.
회의장 분위기는 올해 정전협정 60년을 맞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됨으로써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참석자들은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에서의 남북간 대결, 북미간 대결이 되풀이되는 갈등의 악순환 고리를 평화협정 체결로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국 당사자들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5시간 동안 이어진 세미나에서 나온 발언의 주요내용을 간추려본다.<편집자>
▲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불교계와 민교협이 함께 '동아시아 질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은 세미나 장소인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 ⓒ불교생명윤리협회 |
■ 법응스님(불교생명윤리협회 공동 대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디딤돌 만들자"
▲ 법응 스님(불교생명윤리협회 공동 대표), "우리 정부는 북한을 국제 연결망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과감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불교의 화엄사상을 현실에 구현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 ⓒ불교생명윤리협회 |
3년 동안의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고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60년 세월의 길목에서 한반도는 지금 극도로 악화된 남북관계와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그리고 핵실험이란 독사과를 앞에 두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세계 전쟁사에서 정전 또는 종전 후 60년이 지나도록 화해와 수교를 하지 못한 경우는 없다. 같은 민족이면서 우리만이 적대적 관계 속에 대치를 이어왔다.
실망스런 한미정상회담
기대했던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진화 가능성과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제반문제에 대해 미국정부에 주도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북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요청했어야 했다. 통상적이고 답보적인 외교적 언사의 교환과 자화자찬 방식의 정책 홍보가 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미 의회연설에서 비무장지대 내 평화공원 설치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루한 분쟁의 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업을 벗어나기 위한 거시적이며 더 큰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이해 관계의 해소 없이 항구적 평화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국제 연결망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과감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불교의 화엄사상을 현실에 구현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 "불살생을 제일계율로 하는 자비와 평화의 종교인 불교가 지금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이 세미나가 평화와 화해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한 디딤돌이 되고, 아울러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하는 전환점 돼야"
▲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한국전쟁은 지난 60년 동안 남북 간, 북미간, 나아가 북일 간의 대결의 형태로 재생산되면서, 동아시아가 평화공동체로 가는 동력을 현저히 약화시켜왔다" ⓒ불교생명윤리협회 |
2차대전에서 파시즘적 전쟁국가에 대항해서 손을 잡았던 미국과 소련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하면서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적대적 대결—물론 그것은 '적대적 공생'이기도 했다—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미소 간의 소모적인 적대적 대결은 단지 두 강대국 간의 대결로 끝나지 않고,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여러 국내적인 정치사회적 대결을 극단화시켜 불필요하게 전쟁과 적대적 갈등을 낳았다.
한국전쟁과 일본 우익
한국전쟁은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보수적 질서를 강화하는 '외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지배와 전쟁 책임을 지고 있는 일본의 파시즘 세력들로 하여금 미국의 비호 아래 전전의 파시즘질서를 '변형'시켜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일본의 우익세력과 보수적 지배질서, 전쟁책임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우익적 역사인식과 태도를 강화하고 퇴행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전쟁은 이후 남북 간의 대결로, 그리고 북미간의 대결로, 나아가 북일 간의 대결의 형태로 재생산되면서, 동아시아가 평화공동체로 가는 동력을 현저히 약화시켜왔고 그것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포스트정전체제'는 동아시아에 '평화의 선순환구조'를 낳는 것이 아니라, '갈등 확산의 악순환구조'를 낳았다. 종전 60주년을 기해, 한국전쟁을 확실하게 종결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정착에 결정적인 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교수(민교협 상임의장), "남과 북은 갑을 관계가 아니다"
▲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교수(민교협 상임의장), "단기간 내에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방안은 남과 북이 경협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즉각 재개함은 물론, 이와 같은 것을 두, 세 곳에 더 만들어야 한다" ⓒ불교생명윤리협회 |
남과 북의 관계를 더 이상 갑과 을의 관례로 설정하는 미망에서 벗어나 남과 북이 공동의 주체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6자회담을 열어 핵문제를 포함하여 남북의 위기를 증대하고 있는 원인들을 분석하고 한반도 평화구축과 공동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여 준전시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남북경협을 더욱 활성화하여야 한다.
남북경협은 경제도 살린다
남한도 지금 경제위기다. 장기적으로는 기술개발을 하여 한국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20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내실을 튼튼히 하고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것이지만, 단기간 내에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방안은 남과 북이 경협을 더욱 활성화하여 상호 공존과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즉각 재개함은 물론, 이와 같은 것을 두, 세 곳에 더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협력이 안보를 강화하고, 남과 북의 민주주의가 더욱 확고히 정착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가 더욱 활성화하는 선순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남북 문제의 정책과 대안은 위기와 갈등을 통해서만 이익을 얻고 권력을 잡으려는 주변 강대국과 남과 북의 기득권층, 군산복합체와 자본, 보수 언론, 대형교회, 어용학자 등의 카르텔과 평화를 갈망하는 시민층의 권력의 역학 관계의 반영이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갈망하는 시민사회의 연대가 필요하다.
남과 북, 미국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의 시민이 연대하여 평화협정을 압박함은 물론, 남과 북의 갈등을 고조하는 구조적 폭력인 국가보안법 등의 제도, 문화적 폭력을 심화하는 종북 프레임의 일소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 이종석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장관), "평화체제 논의, 북핵문제의 후순위 아니다"
▲ 이종석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장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북핵문제의 후순위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우선순위를 매기지 말아야한다" ⓒ불교생명윤리협회 |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반도평화체제 논의를 북핵문제의 후순위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분리시키거나 우선순위를 매기지 말고 동시적으로 선순환 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2009년 여름에 발생한 북중 관계의 변화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북핵문제의 우선해결이라는 틀에 완고하게 묶어놓고서는 한국이 한반도에서 어떤 주동적인 변화도 이루어내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북핵문제의 우선 해결 논리는 한미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경제적 압박수단을 보유하고 있을 때만 그나마 유용성을 논해볼 수 있는 주장이었다.
서방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수단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핵 포기와 맞바꾸는 방식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징벌을 가하기 위해 취해지는 대북압박이나 한반도 평화체제논의의 유보가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핵 해결
이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평화체제를 실현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통해서 북한이 체제 안전에 확신을 갖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북핵 포기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 되었다.
사실 북핵문제가 근본적으로 한반도 냉전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냉전적 유물로서 아직도 해소되고 있지 않은 남북 대결관계 및 북미, 북일 적대관계와 연동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변화해야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하고 북 핵 포기가 이루어져야 북미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일방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북중 관계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명박 정부 5년을 경험하면서 평화문제와 남북관계가 북핵문제에 묶여 있을 경우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얼마나 위험하며 한국경제가 얼마나 막대한 손실을 입는지를 경험하였다. 따라서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고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을 위한 별도의 포럼을 조속히 구성하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없이 자신의 평화와 번영을 성취하기 어렵다. 거꾸로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되어야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를 건설해 나갈 수 있다. 한국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관계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한반도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노력이다.
■ 이철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협정 위해 당사국들이 결단 내려야"
▲ 이철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은 자신의 '평화적 생존'이 보장된다는 확신이 선다면 핵 포기로 정책 전환할 수도 있다. 북한에게 핵포기의 명분과 길을 열어주어야 하다. 그 출발점이 바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다" ⓒ불교생명윤리협회 |
위기는 기회이다. 한반도에 평화 정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과 관련당사국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은 핵무기만을 껴안고 국제적 제재와 고립 속에서 살아갈지를 선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붕괴론'의 미망에 사로잡혀 대북강경책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평화적 생존"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북한과 평화적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협상전략으로 나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문제를 푸는 핵심고리는 평화협정 체결이다.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평화협정과 평화체제의 용어와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 평화체제가 평화협정 보다 포괄적인 개념임은 분명하다. 평화협정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법적 장치라면, 평화체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구조적 장치이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구성요소인 전쟁의 법적인 종결을 포함해 평화체제의 법적 보장 장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평화협정에는 전쟁상태의 공식적인 종결선언과 군사경계선 확정, 평화 및 위기관리기구의 설치, 관련국들간의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등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반면 평화체제는 이런 평화협정을 제도화‧구조화‧항구화하는 과정과 그 장치를 의미한다.
한반도의 경우 종전협정 내지는 강화조약을 의미하는 평화조약 체결만으로 평화 정착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평화 체제는 단순히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해 국제적인 보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①남북관계 발전과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 위한 기반 마련, ②북한의 체제보장을 통한 안보딜레마 해결, ③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 확보, ④관련국가들간의 적대관계 청산과 북미수교‧북일수교를 통한 교차승인의 완성, ⑤군사적 신뢰구축조치와 군축의 추진, ⑥국제적 평화보장체제로서 동북아다자안보협력체제의 구축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제들은 서로 관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일괄적으로 접근하고 해결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이 필요하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이 미국의 대북 핵위협에 따른 자위적 조치라고 강변하면서,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려면 북미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현실적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의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핵을 맞바꾸는 것밖에 없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주는 조건에서만 핵군축협상에만 나오겠다고 하고 있지만, 북한의 '평화적 생존'이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북한 핵폐기 문제를 다룰 협상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생존전략의 핵심은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며, 그 '보증서'는 다름 아닌 평화협정이다.
북핵폐기의 출발점이 평화협상
북한이 강경기조 속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정전협정 백지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다. 한국정부는 개성공단문제와 금강산관광의 재개 등과 같은 남북 현안들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한반도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과 현안들에 대해 진지하게 협상할 의지가 있고, 특히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전제로 한 평화협정 체결 의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현시점에서 북한의 협상전략은 '올인(All in)전략'과 '단기승부전략'으로 보인다. 북한은 자신의 '평화적 생존'이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확신이 선다면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핵 포기로 정책 전환을 할 수도 있다. 북한에 핵을 포기할 수 있는 명분과 길을 열어주어야 하다.
그 출발점이 바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다. 따라서 북미수교와 북한의 체제보장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내용과 북한의 핵폐기를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포괄적으로 담은 평화협정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
■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김정은 체제의 대외전략 변화와 동아시아 질서: 평화의 출구전략"
▲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이명박 정부가 주장했던 '갑을관계론'은 현실적 효용성을 잃었다. 자의적 갑을관계론에 빠져 북이 결국 굴복하고 나올 것이라는 무모한 기다림의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됐다" ⓒ불교생명윤리협회 |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은 기존 북핵문제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전환시켜놓았다. 1차, 2차와 달리 3차 핵실험은 사실상 북한의 대미 핵전략의 근본적 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북한은 수세적 차원의 '자위적' 핵억지력(defensive deterrence)을 넘어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공세적' 핵보유 국가로의(offensive nuclear power) 의도를 숨기지 않게 되었다.
2002년 2차 핵위기 당시만 해도 북한의 입장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자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핵보유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 달라져 있다. 2010년 농축우라늄 능력을 실물로 공개했고 이는 원자로 활동을 통해 어렵사리 플루토늄을 추출하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원심분리기 가동으로 핵물질의 자동적 다량확보가 가능해진 조건이다. 여기에 더하여 2012년 12월 은하 3호 로켓발사는 미국과 한국 정부도 인정할 정도의 성공으로 평가되었다.
핵물질 다량 확보와 장거리 운반수단 확보라는 변화된 조건에 더하여 이번 3차 핵실험이 북한 표현대로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성공한 것이라면 이는 북핵의 위협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북한의 공세적인 대미전략
또한 3차 핵실험은 중국의 적극 만류와 오바마 2가 행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제멋대로식 강경대응의 일환으로 강행한 것이다. 과거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미국을 압박하고 협상장으로 이끌기 위한 위기조성용으로 선택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협상파의 대북정책을 지켜보지도 않고 선제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는 곧 과거의 '협상을 통한 확산'에서 '확산을 통한 협상'으로 전략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매우 공세적인 대미전략으로 바뀐 것이다.
갑을관계론은 통하지 않는다
북한의 대외전략이 변화하고 있고 그 맥락에서 기존의 대남정책도 변화 가능성을 보이고 있음은 그 자체로 우리의 대북정책에도 의미있는 변화를 요구하는 요인이다. 북한이 미국과 한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중국을 적극 활용해서 한미와 중국 사이에서 적극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전통적 갑을관계라는 남북관계를 거부하고 협력과 대결 사이에서 자의적으로 선택하겠다는 대남 정책은 우리로 하여금 대북정책의 실질적 영향력을 감소케 하는 요인이다.
결국 북한의 대미 대남전략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대북정책의 변화를 고민하게 한다. 경제적 지원을 절실하게 원할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이 이제는 정설이 아니게 된 마당에 이명박 정부가 주장했던 '갑을관계론'은 더 이상 현실적 효용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자의적 갑을관계론에 빠져 북이 결국 굴복하고 나올 것이라는 무모한 기다림의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다.
북이 미국이나 한국에 고개 숙이고 나올 가능성이 더욱 줄어든 조건에서 여전히 북한은 위기이고 어렵기 때문에 결국 기다리면 손들고 나올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는 대북정책을 그르치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 남북관계와 전향적 대북정책을 통해 북으로 하여금 한국에 경제지원을 다시 의존하게 만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하는 데 머물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가 먼저 신뢰의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군사력에 기초한 '소극적'(negative) 평화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전환을 통한 '적극적'(positive) 평화가 병행되어야만 안정적인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상황에서도 우리가 지금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준비하고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 "여성의 관점에서 본 전쟁의 참상과 한반도 평화"
▲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 "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환향녀, 일본군 성노예, 양공주, 전쟁미망인이란 고통을 안겼다. 남북긴장 완화를 통해 전쟁을 막는 노력은 또다른 여성의 희생을 막는 노력이기도 하다" ⓒ불교생명윤리협회 |
현대전쟁의 야수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은 특히 여성들에게 큰 희생을 강요한다. 중동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 분쟁지역의 여성들은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다. 2001년 미국의 침공을 받아 10년 넘게 전쟁을 벌여온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여성들의 희생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스라엘의 군사통치 아래 놓인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성들이 3중고(정치적 억압, 경제적 빈곤,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이에 비례해 잦아지는 가정폭력)에 신음하고 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쟁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희생 가운데 하나가 성폭력이다.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는 성폭력이 인종청소를 위한 의도적인 '테러전술'로 쓰였고, 그에 따라 적어도 2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시에라리온 같은 아프리카 여러 내전지역에서도 성폭력이 공포를 퍼뜨리는 전술로 악용됐다. 그래서 전쟁 속의 여성을 말할 때 '피해자'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현대전쟁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총을 들고 싸우거나 정보·군수·병참 등 2선 지원 임무를 맡고 있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감옥, 관타나모 수용소에선 여군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로 나섰다. 팔레스타인을 군사통치하는 이스라엘 여군에서도 '가해자'의 모습이 보인다. 현대전쟁에서 여성을 '피해자' 이미지로만 보기 어렵다.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는 여성 병력의 비율이 높다. 특히 병력 충원에서 어려움을 겪는 소수민족의 경우엔 여성이 자살폭탄 공격에 나서기도 한다. 여성들이 반군의 일원이 되는 이유는 첫째, 전쟁 중 흔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둘째, 전란 속에서 이렇다 할 생계수단이 없는 여성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분쟁지역에서 여성이 총을 지녔다는 것은 타자를 향한 살육보다는 자기보호 개념이 앞선다.
20세기 한반도에서 전쟁과 관련된 여성의 이미지는 '피해자'이다. 앞서 살펴본 '가해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전반기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 놀음에 희생됐고, 20세기 후반엔 6.25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와 후유증으로 고통을 앓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치러낸 고통의 무게를 몇 줄의 글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환향녀, 일본성노예, 양공주, 전쟁미망인
일부 여성들은 성폭력에 희생당하기도 했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한국사회는 희생 여성을 감싸기보다는 배척하기 일쑤였고 그래서 더욱 여성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다. 고려시대의 몽고군과 조선시대의 청나라 군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還鄕女)',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끌려갔던 '성노예' 즉 '종군위안부' 여인들도 그러했다. 그녀들은 멀리 낯선 땅에서 죽을 고생을 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고향 땅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6.25 한국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많은 여성들이 전쟁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군대에 보낸 뒤 그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눈물로 밤을 새워야 했다. 또한 적지 않은 여성들이 좌우 갈등의 광풍 속에 휘말려 들어갔고 '빨갱이' 또는 '반동분자'의 가족으로 내몰려 죽임을 당했다. 그리하여 3년 동안의 한국전쟁은 약 30만 명의 여성을 '전쟁미망인'으로 만들었다. 일부 여성들은 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나머지 외국군에게 몸을 파는 '양공주'가 됐다.
21세기 한반도에서 남북 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줄이는 노력은, 다름 아닌 이 땅의 여성들이 또 다시 전쟁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서 반전평화 부문에서 여성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듯이, "반전 평화!!!"를 외치는 한국 여성 평화운동가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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