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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 홀린 한반도…"지금 우리는 모두 '개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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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 홀린 한반도…"지금 우리는 모두 '개자식'이다!"

[인터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펴낸 마틴 셔윈 교수

한반도가 핵에 홀렸다.

지난 1월 믿을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서 발표되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발표한 이 결과를 보면,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93%에 달했다. 원자력 발전소 수출을 성사시켰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호들갑을 떤 뒤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핵'에 대한 이런 열광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이러는 동안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광화문에서 총질을 하는 장면을 찍어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서울 도심을 초토화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바로 북한에서 몰래 들여온 핵무기다. 이런 드라마의 설정이 낯설지 않을 만큼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핵전쟁의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이렇게 핵에 홀린,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주목해야할 책이 나왔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본문만 1000쪽에 가까운 이 책은 원자폭탄을 최초로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년)의 삶을 다룬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미국으로 물리학의 중심을 옮겨온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원자폭탄 개발의 전 과정을 지휘한 당사자다. 그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나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찬사를 받지만, 결국 자신이 세상에 내놓은 핵무기에 대한 열렬한 반대자로 변신한다.

냉전의 시대에 소련과 핵 경쟁을 진행 중이던 미국에서 이런 오펜하이머는 희생양이 되었다.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그는 반역자로 몰렸으며, 1954년 치욕의 청문회 이후로 역사 속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이 청문회를 둘러싼 상황은 과학과 정치의 관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 책은 이 전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한 세기 전 과학자의 삶을 살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라면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무릎을 칠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과학자의 삶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틀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의 삶 속에서 지금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많은 것이 이미 '결정'되었다.

만약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그 때 그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은 크게 달랐으리라. 이런 아쉬움은 다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앞으로의 세상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저자 중 한 명인 미국 터프츠 대학교 교수 마틴 셔윈과 이메일로 의견을 나눴다. 대학에서 영문학, 미국사를 가르치는 그는 <파괴된 세계 : 히로시마와 그 유산들(A World Destroyed : Hiroshima and its Legacies)>(1975년, 1987년, 2003년)의 저자로 미국 핵 개발 역사의 권위자다.


▲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인류의 역사는 이날을 기점으로 또 한 번 바뀌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가 있었다. ⓒwikipedia.org

21세기에 오펜하이머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프레시안 : 25년 동안 오펜하이머의 삶에 집중했다. 그의 삶에 관한 이런 방대한 평전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셔윈 : 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원자폭탄이 개발되고 그것이 히로시마에 투하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 <파괴된 세계 : 히로시마와 그 유산들>을 1975년에 펴냈다. 25년간 계속해서 판을 거듭해서 나오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나는 오펜하이머의 글을 여러 차례 읽고 또 인용했다.

오펜하이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삶이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 있는 주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과학 정책, 대공황,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 원자폭탄 프로젝트, 핵확산 반대 운동,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 매카시즘과 마녀 사냥, 미국 정부의 비밀 정책의 이중성, 오펜하이머의 믿을 수 없이 복잡하고 흥미로운 인격 등….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오펜하이머의 삶 전체를 다룬 평전이 없었다. 기존의 책들은 오펜하이머 개인과 정치의 관계를 누락한 채 전쟁과 그것의 폐단에만 초점을 맞췄다. 더구나 그가 자기 안의 악마와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완전히 빠뜨렸다. 나는 그를 삶 전체와 많은 일화를 통해서 이해하고 싶었다.

프레시안 : 21세기에 오펜하이머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셔윈 : 이런 훌륭한 질문에 어떻게 간단히 답해야 할까?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펜하이머의 승리와 좌절이 미국의 대외 또 국내 정책의 원형이라는 사실이다. 오펜하이머가 산파 역할을 한 원자폭탄은 전 세계에 걸친 핵무기 경쟁 및 핵 확산을 가져왔다.

미국 국내 정치에 초점을 맞춰보면, 내가 '신공화당'으로 규정한 이들이 주도하는 '깅그리치 국회'가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우파이면서, 정치적으로는 신파시즘에 가까운 요소를 갖는 무책임한 정치 세력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1953~54년 오펜하이머의 명성을 파괴하고자 조직되었던 음모와 다를 게 없다.

프레시안 :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외에도 2000년대 들어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연구가 크게 늘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기밀 해제된 문서 때문인가?

셔윈 :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펜하이머의 삶은 우리 시대가 꼭 다뤄야할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밀 해제된 문서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비롯한 오펜하이머 연구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연구가 늘어난 다른 이유를 하나 더 언급하자면, 바로 이 책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를 연구하는) 동료들은 내가 이 평전을 끝낼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1979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2005년까지 출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5년을 넘게 오펜하이머에 매달린 것이다. 그런 더딘 작업이 (오펜하이머에 관심을 둔) 동료를 자극하는 신호를 보냈을 수도 있다.

원자폭탄 만들기, 오펜하이머의 선택은 옳았나?

프레시안 : 오펜하이머가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역사의 한 변수가 되었다. 원자폭탄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순식간에 자신을 절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들 얘기하지만, 만약 1920~30년대의 물리학자들이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숙고했다면, 그래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 좀 더 신중했다면, 오펜하이머의 삶은 물론 이후의 세계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셔윈 :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런 실제로 있었던 일과 반대되는 상황을 가정해보는 일은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어떤 결정도, 혹은 인류의 결정에 따라서 일어난 어떤 사건도 필연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셔윈의 첫 번째 역사 법칙'으로 부르고 싶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1939년 과학자들이 핵분열을 발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이야말로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만들었다.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는 독일의 과학자가 원자폭탄을 설계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그 당시 그들은 핵무기와 관련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떠올리기보다는 전쟁의 종언에 집착했다.

원자폭탄 만들기, 즉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의 사용에 반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오펜하이머는 그들에 속해 있지 않았다.

프레시안 : 당신이 언급했듯이, 오펜하이머와 과학자들이 원자폭탄 개발에 나서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움직임이었다. 물론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이미 독일에서 원자폭탄이 개발될 가능성은 낮았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오펜하이머와 동료들이 그런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원자폭탄 만들기에 동참하게 된 데는,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확인해보려는 호기심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이지도어 라비와 같은 과학자가 오펜하이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참여에 계속 주저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다.

셔윈 : 라비는 자문에 응하기만 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거절한 특이한 경우다. 로버트 윌슨은 평화주의자였지만, 독일이 원자폭탄을 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원칙을 포기했다. (물론 전쟁 막바지에 그는 원자폭탄 사용에 반대했다.) 물론 과학자들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호기심이 강력한 동기가 되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프레시안 : 앞의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은 독일이 항복하고 나서 전쟁을 빨리 마무리 짓고자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의 사용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하다시피, 그 때 이미 일본은 항복하기 직전이었다. 이 책은 역시 정보의 차단을 중요한 이유로 언급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원자폭탄 사용을 승인한 사실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자기들이 개발한 원자폭탄이 과연 제대로 기능하는지 보고자 그것의 사용을 추인한 것은 아닐까?

셔윈 : 원자폭탄을 직접 일본에 투하하는 것을 놓고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원자폭탄이 전쟁을 종결짓는데 영향을 주리라 믿고 폭탄의 사용을 지지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이는 개인적인 야망을 위해서 폭탄의 사용에 동의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어땠을까?

트루먼은 원자폭탄 사용을 소련에 대한 효과적인 경고로 보았고, 또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여겼다.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은 (전부 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원자폭탄이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이 책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물론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지기를 원했다.

히로시마, 오펜하이머의 양심을 깨우다

프레시안 : 오펜하이머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나서부터 그것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그런데 책에서는 이런 변화의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 같다. 그의 동료인 로버트 윌슨은 원자폭탄 실험을 보고 나서 큰 심리적 동요를 느낀다. 그러나 오펜하이머가 그런 심리적 동요를 보였던 것 같지는 않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특별히 언급할 만한 일이 있는가?

셔윈 : 원자폭탄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목격된 죽음과 파괴는 오펜하이머의 양심을 갑자기 움직이게 하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원자폭탄 만들기가 전쟁을 끝내는 것처럼 중요한 영향을 주기를 원했다. 그런 생각은 일본을 상대로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것을 추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원자폭탄의 가공할 파괴력을 보고 나서는 오펜하이머와 동료는, 한스 베테가 수없이 되‡l듯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뭘 한 거지? 우리가 뭘 한 거야?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돼!" 히로시마는 (또 나가사키는)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전환적인 사건이었다.

1945년 9월,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 직에서 사임했다. 그는 10월에 대통령 트루먼에게 미국이 직면한 위험을 호소하면서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46년 1월, 원자력 에너지의 통제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참여했는데,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핵무기의 전면적인 철폐였다.

▲ 폭격 이후의 히로시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발생한 사망자 약 22만5000명 의 95% 이상이 민간인이었고, 대부분 여성이거나 어린이였다. 생존자의 절반 이상이 몇 달 내에 방사능 중독으로 사망했다. ⓒ사이언스북스

그 때부터 '비밀 과학'이 시작되었다

프레시안 :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둘러싼 모든 과학 활동이 비밀에 붙여지는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과학 활동은 오펜하이머가 거부해온 바로 그런 모습대로 가고 있다. 정부, 기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많은 과학자에게 비밀 서약은 필수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의 원조가 바로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인데….

셔윈 : 정확히 지적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과학 활동에서 비밀 서약이 필수인 최근의 흐름을 낳았다. 당신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프레시안 : 그나마 오펜하이머는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통제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과학자는 자신이 하는 연구가 어떤 프로젝트의 일부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과학자에게 윤리를 기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회의적이 된다.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는 자신의 과학 활동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로버트 윌슨을 제외하고는 윤리의 문제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자신의 과학 활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런 과학자들에게 과연 윤리의 문제에 민감하기를 기대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셔윈 : 로버트 윌슨은 윤리 문제를 깊이 숙고하면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한 최고의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오펜하이머의 평전이지 맨해튼 프로젝트의 역사가 아님을 기억하라. 원자폭탄 만들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과학자는 원자폭탄 사용에 반대했다.

윌슨뿐만 아니라 레오 질라르드, 유진 라비노비티, 제임스 프랑크와 같은 이들이 그런 과학자다. 원자폭탄 사용에 반대했고 또 전후 반핵 운동에 헌신했던 이런 과학자의 활동을 기록한 완벽한 책은 앨리스 킴볼 스미스가 쓴 <위험과 희망(A Peril and A Hope : The Scientists' Movement in America, 1945~47)>이다. 이 책은 수십 년 전인 1965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이 주제에 대한 최고의 연구다.

매카시즘의 광풍은 반복되는가?

프레시안 : 오펜하이머의 삶은 두 가지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면서 한 편으로는 '광풍의 희생양'이다. 특히 당신은 책 전체에 걸쳐서 '광풍의 희생양'으로서의 오펜하이머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당신이 이런 변호를 통해서 의도했던 것은 무엇인가? 혹시 상원의원 풀브라이트가 했던 이런 추모를 염두에 둔 것인가?

"이 특별한 천재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합시다!"

셔윈 : 미국인은 미국은 사람이 아니라 법이 통치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1953~4년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와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오펜하이머를 침묵시키고, 미국의 핵 정책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을 파괴하고자 미국의 법을 위반했다. 이 책은 오펜하이머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극히 정의와 반대되는 일을 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프레시안 : 이 책은 매카시즘과 그것을 용인한 당대의 미국 사회에 비판적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은 그때와 다른가? 미국 안팎의 많은 지식인은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이 보이는 모습에서 매카시즘의 모습을 연상한다.

셔윈 : 미국인에게 매카시즘 시기는 어둡고 위험한 시대로 간주된다. 그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미국인의 양심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한 역사적 시각이 지배적인 한, 매카시즘의 광풍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좋은 예이다. 당신의 지적처럼 부시 행정부와 매카시즘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 한국어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표지에는 "대통령이 읽는 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있다. 실제로 이 책이 퓰리처상을 받고 나서 전 미국 대통령 부시가 읽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셔윈 :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미국 판에는 102장의 사진이 있다. 부시가 (책을 읽었다면) 그 사진들이나 넘겨봤겠지…. 사진에 붙어 있는 설명은 읽었을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만약 부시가 당신에게 미국의 핵 정책 혹은 대외 정책에 대해서 자문을 요청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었나?

셔윈 : 5분 만에 대통령 집무실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전 대통령 부시가 핵무기에 대해서 제안한 거의 모든 것은 잘못됐고 위험했다.

사회주의에 끌린 오펜하이머…그 이유는?

프레시안 :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에 끌렸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20세기 초반의 많은 미국 혹은 서구의 지식인이 사회주의에 끌린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셔윈 : 1930년대의 대공황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가장 최악의 모습으로 드러냈다. 이론적으로는, 반복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훨씬 정의롭고, 훨씬 이성적이며, 훨씬 더 효과적인 체제를 제안하는 것처럼 보였다. 덧붙여서, 당시 미국에서 공산당은 진보 조직의 최전선에 있었다.

미국 공산당은 인종 차별, 빈곤 문제, 노동운동, 보건의료, 사회복지 등 결국은 미국 시스템의 일부분이 된 거의 모든 선진적인 사회법의 제정을 위해서 맨 앞에서 싸웠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사회 정의에 관심이 있었던 오펜하이머와 같은 지식인이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에 끌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프레시안 : 오펜하이머 이후 세대의 미국의 과학자 공동체는 대체로 어떤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여전히 넓은 의미에서 왼쪽의 정치 성향-예를 들면 민주당-에 가까운가?

셔윈 : 나는 과학자 공동체가 어떤 정치적 태도를 가지는지 연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 지적하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보이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당시의 과학자 공동체 전체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1930~40년대 중요한 물리학자의 대다수가 (진보적인) 자유주의자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학자는 물리학자만큼은 아니었으며, 다수의 엔지니어는 정반대로 보수적이었다. 전후 냉전이 나타나면서 과학자 사회는 미국 사회처럼 정치적으로 진보, 보수 양편으로 분리되었다. 특히 냉전을 거치면서 미국 과학자 공동체의 일부가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은 1939년 9월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독일이 새로운 종류의 대단히 강력한 폭탄이 만들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편지에 서명했다. ⓒ사이언스북스

"그는 내가 만났던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프레시안 : 이 책에서 오펜하이머는 과학 외에도 온갖 것에 관심을 둔 이른바 '두 문화'의 벽을 넘나드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묘사된다. 오펜하이머 세대 이후에 그런 지식인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당신은 오펜하이머와 같은 모습이 지향해야할 지식인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셔윈 : 오펜하이머는 흉내를 내기 어려운 사람이다. 오펜하이머는 특별한 존재였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한스 베테는 오펜하이머를 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내가 만났던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프레시안 : 그런 지식인이 오늘날에도 가능할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셔윈 : 오펜하이머와 비슷한 지적 능력을 갖춘 지식인은 오늘날에도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우리는 오펜하이머를 등장하게 했던 환경을 잘 알고 있다. 그런 환경 혹은 그것과 비슷한 환경은 거의 반복될 수 없다.

프레시안 :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폭넓은 교양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을 넘어선 사회, 국가, 문명의 문제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참여하는 지식인'이었다. 원자폭탄 만들기에 나선 것도 이런 지식인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과학자에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의 과학자는 자기 연구 외에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자를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인으로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이런 변화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셔윈 : 글쎄…. 나는 지식인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했듯이 오펜하이머는 그의 시대에서조차 유일무이한 인물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

▲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 훌륭한 평전이 나왔음에도, 오펜하이머의 삶을 둘러싼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탈고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셔윈 : 서둘러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또 다른 책을 내놓으라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프레시안 : 오펜하이머의 삶에 대한 다른 평전이 나온다면, 특별히 더 주목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가?

셔윈 : 누구든 그런 도전을 하라. 그러나 반드시 내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했던 것과는 다르면서도 더 흥미로운 질문을 물어야 할 것이다. 당신도 지적했듯이 아직도 오펜하이머의 삶에는 대답해야할 수많은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이 책이 좋은 평가를 받은 이후에 새로운 후속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셔윈 :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과 그것이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제목은 "아마겟돈을 건 도박(Gambling With Armageddon)"이다.

한반도와 핵폭탄…희망은 있다

프레시안 : 원자폭탄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 본토의 원자폭탄 공격은 일본의 항복과 한국의 해방을 불렀다. 그러나 그렇게 강대국에 의한 해방은 곧바로 분단으로 이어졌다. 결국, 전후 65년이 된 지금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핵전쟁의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 책이 한국의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기대하나?

셔윈 : 지난 65년 동안 전 인류의 절멸을 가져올 핵전쟁의 발발이라는 오펜하이머의 음울한 예측이 실현될 뻔한 사건이 몇 차례 있었다. 가장 위험했던 사건은 1962년 10월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그 전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뻔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한반도가 그곳이다. 한국의 독자는 알겠지만, 한국전쟁 중에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어 진공해 오자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핵무기의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대통령 트루먼에게 요청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와 핵무기는 핵시대의 초창기부터 악연으로 엮여 있었다.

이런 악연은 1970년대에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당시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정희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갖추기 위한 비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포부와는 관계없이 그가 암살당하면서 끝났다.

지금은 또 다른 악연이 진행 중이다. 고립된 국가인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개발은 과학, 문화, 상업의 주류에서 고립되어 있고, 심지어 자국민을 먹여 살리는 데조차 실패한 국가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오펜하이머가 줄기차게 강조했듯이 핵무기의 전 세계적 확산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를 포함한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당부를 한다면….

셔윈 : 오펜하이머가 1946년에 주장했듯이 핵무기의 철폐는 문명의 생존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선결 과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되었으나, 핵 대결이 여전히 공포스러운 현실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오펜하이머가 전쟁을 방지하려는 노력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늦게 진행되고 있는 이런 현실을 본다면 개탄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너무 늦은 것은 아니다. 오펜하이머가 1946년에 제안했던 전 세계적인 핵무기 통제 계획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펜하이머의 삶과 그의 절실한 고민은 누구보다도 한국의 독자에게 중요한 가치를 가질 것이다. 오는 11월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 때 한국의 독자를 직접 만나서 더 많은 의견을 나누고 싶다.

이런 셔윈의 당부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삶터를 잿더미로 만들 뿐만 아니라 세계를 결딴낼 수 있는 핵에 홀려 비판적 성찰을 방기하는 우리의 모습은,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실험에 성공하고서 오펜하이머의 동료 케네스 베인브리지가 내뱉었던 말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개자식이야!(Now we're all sons-of-bi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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