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 대응방안'은 "전세 시장에 집중된 수요를 매매시장으로 돌려서 매매와 전세시장 간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한 박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가격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할 수 있도록 정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조한 박 대통령의 긍정적 언급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방안은 현재 치솟고 있는 전월세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어 보이고, 장기적으로 건강하고 안정적인 부동산 시장을 만드는데도 역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전월세난에 시달리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집을 사라고 파격적인 대출제도를 담은 '8·28 방안'이 발표됐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돈이 있거나 다주택자를 위한 지원책이 더 많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무주택 서민들의 삼중고
최근 주택시장의 특징은 매매시장의 침체와 전세가격 폭등, 그리고 월세 비중의 확대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매매시장의 침체가 계속되면서 매매수요는 줄어들고 전월세수요가 증가하였는데, 이것이 전월세 시장의 수급불균형으로 이어져 전세가격의 상승과 월세 비중의 확대를 가져온 것이다.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서울지역의 주택매매가격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는데, 최고 정점이었던 2010년 3월부터 현재(2013년 7월 기준)까지 –5.24%가 하락하였다. 반면, 전세가격은 2009년부터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 2009년 1월을 기준으로 현재(2013년 7월 기준)까지 32.12%가 상승하였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약 12%)의 3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전세가격 상승은 최근 들어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데, 7월의 수도권 전세가격 상승률은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0.46%로 전달(0.23%)보다 상승폭이 더 가팔라졌다. 특히 서울지역 아파트의 경우 0.64% 의 상승률을 보이며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부동산 114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지난 7월 말까지 서울지역에서 거래된 총 95만 3367건의 주택 중에서 전・월세 비중은 71.1%이었는데, 그 중에서 월세 거래 비중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0년 전체 거래 비중에서 12%가량을 차지하던 월세는 올해 20%로 8%포인트나 늘어난 반면 전세는 같은 기간 51%에서 54%로 3%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고 매매는 37%에서 26%로 11%포인트가 떨어졌다. 주택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주택시장상황은 무주택 서민들을 삼중고에 빠뜨리는 최악의 조합이 되고 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주택시장의 침체로 주택가격이 계속 하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민입장에서 주택가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주택을 구입할 경제력이 부족한 무주택 서민들은 임대시장에서 매달 임대료를 지출해야 하는 월세보다는 자산형성 효과가 있는 전세를 선호하게 되는데, 전세가격이 폭등하고 월세 비중이 확대되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어려움에 동시에 직면하게 됐다.
서민 입장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빚을 내서 보증금을 마련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전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대출이자와 월세 부담이 늘어나면서 가계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서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더 많은 불로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의 매매시장 활성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8.28 대응방안'을 통해 "후반기 주택정책의 주안점을 서민・중산층의 전월세 시장 안정에 두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전월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은 부족하고, 매매시장을 활성화하는 데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매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세제와 금융상의 다양한 혜택을 통해 주택매입자에게 더 많은 불로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이번 방안의 핵심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전세수요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을 매매수요로 돌아서게 하여 전세 수요를 줄이고, 또 다주택자들이 더 많은 주택을 매입하게 하여 민간을 통한 전세 공급을 늘리겠다는 의도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취득세율 인하와 같은 세제정책과 저리의 장기 모기지 공급 확대, 근로자・서민 구입자금 지원 확대, 수익공유형과 손익공유형 모기지, 민간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 등의 금융정책이 이러한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불로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매매시장을 활성화하기 힘들다는 것이 지난 MB정부 5년 동안 이미 증명되었다. 임기동안 전세대책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20번이 넘는 부동산 부양책만을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은 살아나지 않았고 오히려 전월세 문제만 가중되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전월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더 강력한 부양책을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전 정부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은 것이 별로 없는 듯이 보인다. 수익공유형과 손익공유형 모기지론을 제외한 나머지 정책은 전 정부의 정책들을 불로소득을 더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더 많은 불로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매매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 없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서민들의 소득수준에 비해 지금의 주택가격이 여전히 고가라는 사실이다. 둘째는, 인구감소, 고령화, 인구구조변화 등의 사회구조적 요인과 저성장,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의 거시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주택가격의 하방 압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시장참여자들의 대세 하락 전망을 바꾸기에는 이 두 가지 요인의 힘이 너무 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해야만 한다는 시장의 강력한 의지를 수용하고 다만 급격하게 하락하지 않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번 방안으로 일시적인 반짝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세 하락이라는 주택시장의 추세(trend)를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세가격이 오르고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부담되더라도 세입자들이 집을 사지 않고 버틸 가능성이 높다. 전월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반짝 효과가 사라지면서 빚을 내서 주택을 구매한 사람들은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고, 가계부채만 더 가중시킨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주택소유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는 것은 곤란
이번 방안을 살펴보면 부동산 시장 부양을 위해 앞으로 더 내놓을 정책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주택 구매자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문제는 파격적인 혜택이 과도하여 주택 구매자와 비구매자 간에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주택 구입자와 국민주택기금이 주택구입에 따른 수익과 위험을 공유하는 조건으로 주택기금에서 1%대의 저리 자금을 지원하는 '수익공유형'과 '손익공유형' 모기지론이다. 수익공유형은 매각차익만 주택기금과 공유하고, 손익공유형은 매각손익을 모두 공유하는 방식이라는 차이가 있다. 물가상승률에 미달하는 1%라는 사실상의 마이너스 금리를 제공하는 금융상품으로서, 일부 언론에서 '전셋값으로 집 사라'라고 표현할 정도로 매우 파격적인 방안이다.
손익공유형의 경우 주택가격의 40% 이내에서 최대 지원한도가 2억 원이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최대 5억 원의 주택까지 구입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여전히 많은 무주택 서민들은 전월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조성된 국민주택기금을 일부 소수, 그것도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을 주택구입으로 유도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라는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과도한 혜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주택자들의 주택 구입에 따른 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와 '취득세율의 다주택자에 대한 차등 부과 폐지'도 형평성에 어긋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실수요자보다는 돈 있는 사람, 특히 투기 가능성이 높은 다주택자 중심의 정책인데, 이로 인해 줄어든 세액을 보유세 인상을 통해 보전하지 않는 이상 결국 다른 서민들의 세 부담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세의 중요한 세원인 취득세율 인하는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가중시킬 수 있는데, 중앙정부가 세수 결손을 보전해준다고 해도 결국 다주택자를 위해 정부의 재정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전월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할 때
매매시장 활성화는 지금 상황의 답이 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인 전월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우선 MB정부 임기동안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축소한 것이 지금의 전월세 수급불균형의 상당한 원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량은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사업계획승인 기준으로 14만호였으나 MB정부 들어 공급을 연 5만호로 축소하고 더욱이 실제로 착공한 것은 사업계획승인 받은 것의 30% 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번 '8.28 대응방안'에서 연 11만 호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계획을 밝힌 부분은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공급방안을 밝히지 않아 MB 정부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공공임대주택의 일종인 행복주택의 경우 이미 몇몇 지자체의 반발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을 보면 괜한 우려는 아닌 듯하다.
현실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준공공임대, 토지임대형, 협동조합형 같은 대안적 공공임대주택 공급방식이 현실에 쉽게 적용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도 도입해야 한다. 현재의 주택 임대차 시장은 집주인에게 과도하게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에 '힘의 비대칭'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세입자가 최소한 4년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계약갱신 시 집주인이 임대료를 과도하게 올리지 못하도록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가격을 직접 규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따를 수는 있지만, 선진국 사례를 참조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고민한다면 부작용보다는 사회적 효용이 훨씬 클 것이다.
주택매입자들을 위한 금융지원은 전월세 세입자에게로 돌려야 한다. 물론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전월세 금융지원 확대가 전세수요 증가와 전세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고가의 전세세입자를 금융지원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면, 전월세가 매입수요에 비해 절대적 금액이 적고, 서민들의 생활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부작용은 적고 정당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8.28 대응방안'에서도 내년 10월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밝힌 주택바우처 제도도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확실히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설계하여 신속하게 실행해야 한다.
최고의 대책은 부동산 부양책을 쓰지 않는 것
지난 MB정부는 주택정책에 있어서 일관되게 부동산 부양책을 시도하다가 철저히 실패했다. 불로소득을 보장하여 어떻게든 매매활성화를 시켜보려 했지만 시장참여자들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만약 MB정부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우리는 불로소득이라는 폭탄을 키우다가 언젠가는 터져 지금의 전월세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됐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 앞에서 언급한 전월세 대책들보다 더 중요한 대책은 바로 '부동산 부양책'을 쓰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주택시장 상황에서 부동산 부양책은 성공할 수도 없을뿐더러, 다른 좋은 대책들의 효과도 반감시켜 성공하지 못하는 것 이상의 폐해를 끼치게 된다.
지금까지의 부동산 부양책의 실패들이 주는 교훈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실례로 지금 매매수요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으로 분양되는 보금자리주택들은 모두 흥행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건강한 부동산 시장은 불로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이 아닌 매매가격이 적정한 수준으로 떨어지도록 놔둔 후 부동산에서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세제를 도입하여 매매시장과 전월세시장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지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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