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산업 자체가 사양길로 접어든 가운데 현재는 HP와 레노버에 밀려 3위로 위상이 하락한 델은 1년 사이에 주가가 30% 넘게 폭락했다.
이렇게 주식이 폭락한 상황에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델(48)은 지난 5일 델의 모든 주식을 자신이 주도하는 사모펀드에 매각해 상장폐지하고 "더 이상 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혁신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 창업자는 상장으로 돈을 끌어들이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사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다시 상장을 폐지하고 사유화해도 되는 것일까. 세계 3위 PC업체 델이 창업자에 의해 '차입매수' 방식으로 매각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AP=연합 |
일부 주주 "이사진이 회사를 헐값 매각 결정" 소송
문제는 마이클 델은 현재 15% 정도의 지분을 가진 1대 주주일 뿐인데, 주식 매입 자금 대부분을 회사 자산을 담보로 빌린 '차입매수' 방식으로 회사 지분을 모두 사들이겠다고 나섰다는 점이다.
7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유명 투자자인 그린브리어 파트너스의 프레더릭 로위 등 델의 일부 주주들은 "이번 매각 건에서 1대 주주일 뿐인 마이클 델은 이해상충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유한회사로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분명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일부 주주들은 이미 "델을 포함한 현재의 이사진이 회사를 마이클 델이 주도한 사모펀드에 싼 값에 매각하도록 허용해 주주들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면서 이사진을 델라웨어 법원에 고소했다.
인수가로 제시한 244억 달러(26조 6000억원) 중 150억 달러가 회사 자산을 담보로 은행 4곳에서 빌리는 자금이며, 16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가 델은 7억 달러를 현금으로 낼 뿐이다. 나머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0억 달러 등의 재무적 투자자로 동원됐다.
HP "델이 장기간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다" 혹평
개인PC에서 기업 서버에 주력하겠다는 창업자 델의 사업 비전에 대해서도 업계의 시각은 싸늘하다. HP는 이례적으로 경쟁사인 델의 매각건에 대해 성명을 내고 "회사가 장기간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고, 고객들에게도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IT전문가들도 대체로 "소프트웨어업체가 기업서버 시장에 뛰어든다면 모를까, 저가PC를 위주로 하던 하드웨어업체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중요한 기업서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창업자 마이클 델이 자기 이름을 딴 회사를 '차입매수' 방식으로 비상장사로 만드는 이번 선택이 그 자신에게는 손해볼 것이 없는 거래라는 점을 지적한다.
마이클 델, '제2의 창업' 외치지만...
계획대로 주주총회와 당국의 승인을 받아 유한회사가 된다면, 마이클 델은 일단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버리고, 보다 높은 이윤이 기대되는 소프트웨어와 모바일, 데이터 처리 서비스 등에 주력하는 '제2의 창업'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작업이 성과를 더두면 IT기업으로 재상장을 시켜 자신과 투자자들의 재산을 불릴 수 있다. 만일 실패한다고 하면, 일단 마이클 델에게 최고경영자 지위를 부여했던 투자자들이 각자의 투자차익을 거두기 위해 자산 매각에 나선다는 것이다.
일부 주주들의 반발이 있지만, 기존 주주들로서도 PC업체로서의 전망이 어두워 그나마 현재 시가보다 조금 더 얹어주는 가격으로 사주겠다는 창업자의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한때 세계 1위의 PC메이커 델은 이렇게 주주들의 각자 잇속 차리는 계산 속에 제물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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