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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제명' 의원들, 싸우다가 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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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셀프 제명' 의원들, 싸우다가 닮아갔다

[기자의 눈] '통합진보당 사태' 종막에 부쳐

지난 5월 2일 조준호 당시 공동대표의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한 '통합진보당 사태'는 사실상 끝났다. 7일부로 통합진보당에서 제명된 비례대표 의원들이나, 탈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강기갑·심상정·노회찬·유시민 등의 정치인들이 이른바 '구 당권파'와 앞으로 무슨 드잡이질을 벌이든 이는 최소한 '통합진보당'의 틀을 벗어난 다툼이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태의 종말을 결정지은 것은 이날 있었던 '제명 의총'이다. 구 당권파는 이를 막기 위해 전날 자파 중앙위원 45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규 개정에 착수, 국회의원 제명 요건을 재적의원 2/3 찬성으로 강화했다. 원내대표 부재시 의총 소집 관련 규정도 고쳤고, 이에 의거해 자파 의원들만이 참석한 의총을 열어 새 원내대표를 뽑았다.

혁신모임 측은 이에 대해 '일부 중앙위원들의 중앙위 추진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고 "당헌·당규에 따라 중앙위 의장은 당 대표이며, 대표의 소집과 공고가 없는 중앙위원회 개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일부 중앙위원들이 임의로 3차 중앙위 개최를 공지하고, 중앙위를 열고자 하는 것은 원천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반박했다. 요약하면 '불법 중앙위 중단하라'가 되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얘기다.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혁신모임 측은 소속 국회의원 7명의 찬성으로 '셀프 제명'을 드디어 성사시켰다. 각 정당이 얻은 표의 수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 의원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면서까지 이들이 의원직을 지키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사자인 정진후, 김제남, 박원석, 서기호 의원이 이날 아침 발표한 성명의 일부 내용이다.

"저희들은 각자 교육, 녹색·탈핵, 시민운동, 사법개혁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의정활동을 수행하고 진보정치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통합진보당을 선택했습니다. (…) 안타깝게도 법 규정상 비례대표들은 탈당하는 순간 의원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제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결코 개인이나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의원직에 집착하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국민이 원하는 진보정치를 펼치기 위함입니다."

심지어 일부 혁신파 비례의원들은 '셀프 제명'이라는 표현에도 불편함을 내비친다. 결코 제소자와 사전에 협의가 있거나 공모한 것은 아니라는 게다. 하지만 7일 의총에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제명하는 안건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이같은 꼬리표를 뗄 방법도 없게 됐다.

이들의 성명 내용과는 달리 "비례대표들은 탈당하는 순간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법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전혀 "안타까운" 게 아니다. 비례대표 의원에게 당을 떠나서 의원 활동을 계속하게 해 주는 적법한 해법은 없다. 제명은 정치적 결단에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당의 기율을 어지럽힌 자에게 내리는 처벌이다. 이들이 아무리 "분명한 소신에 근거해 스스로 제명을 수용"했다 한들 '꼼수'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정당이 얻은 표는 후보로 나선 인물들을 보고 준 것일 수도 있지만 정당의 가치와 이념에 동의해서 준 것일 수도 있다. '현재의 통합진보당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면 당내 정치투쟁을 통해 당 해산을 관철시키든지, 그게 아니면 의원직을 버리고 나가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7일 열린 제명 의총 이후 강기갑 통힙진보당 대표가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다. 강 대표는 대국민 사죄 단식 5일차였다. 강 대표 뒤로 심상정, 강동원, 노회찬 의원의 얼굴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이해는 간다. 지난 중앙위 폭력사태 이후로도 4달 넘게 기다려야 겨우 사과 한 마디가 나오고, '국민의 눈높이'를 아무리 강조하고 다른 경쟁명부 비례후보 전원이 사퇴해도 결단코 이석기·김재연 의원만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구 당권파의 타협 없는 태도를 보면서 이들이 느낀 깊은 절망감은 '셀프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데 대해 스스로 내세우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혁신모임 측 이정미 최고위원에 따르면, 강기갑 대표는 "당내 정치세력들의 합의도출을 위해 최후의 노력"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이석기·김재연 의원 사퇴'에서 상당부분 물러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혁신세력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세비 반납과 국민이 납득하고 이해할 때까지 자숙할 것'이라는 대안을 구당권파 측에 제안, 분당을 막기 위해 대화의 타협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에 따르면, 이같은 요청마저 이석기 의원에 의해 거부됐다고 했다. 이는 구 당권파 역시 이 당을 계속 유지할 마음이 없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며 '분열은 안 된다'고 말하는 구 당권파 측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로 믿지도 못 하는 사이에 같은 당에 계속 있느니, 갈라선 이후 각자의 정치적 전망을 실현하고 결과를 유권자에게 표로 심판하게 하자는 이들의 입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국민을 위해'라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사퇴하지 않는 것 역시 그들 나름대로는 '국민을 위한' 결단이다. 구 당권파 이상규 의원은 '셀프 제명'에 대해 "보수정치에서도 없었던 기상천외한 자작극"이라며 "동료 의원에게는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의원직만은 움켜쥐겠다는 탐욕"이라고 몰아쳤다. 뭐라고 반박할 텐가? 적과 싸우다 적을 닮아 가는 것도 흔한 일이긴 하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이나 정진후·김제남·박원석·서기호 의원이나 모두 '국민을 위한다'는 진정성은 같다면, 남은 잣대는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상식적인가 하는 게 된다. 그런데 각자의 상식이 다르다면, 누구의 상식이 기준이 될 것인가?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인 이상(적어도 헌법상으로는 그렇다) 유권자 대중의 상식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고 그 표현형태가 바로 '법'이다.

즉 사회 안에서 공유되는 상식의 최소한을 정한 것이 바로 법이라면, 지난 5월부터 이날까지 정당법과 국회법 등 각종 법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는 통합진보당 신·구 당권파들의 행보는 '상식의 아이콘'으로 이미지화된 안철수 원장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와 정확히 상반된다. 법 규정상 비례대표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법 규정을 피해, 제명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그게 바로 '꼼수'지 달리 무엇을 '꼼수'라 하겠나.

제명된 비례의원 4명은 위의 성명에서 "오로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국민이 원하는 진보정치를 펼치기 위함"이라며 "이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했다. 예상되는 엄청난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선택한 '고육지책'의 결과를 유권자들은 분명히 지켜볼 것이다. "분당 반대, 당 사수"를 내세우며 통합진보당에 남겠다고 선언한 이들의 앞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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