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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몰락과 유시민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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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몰락과 유시민의 재발견

[대선읽기] '진정성' 보인 유시민, 뭘 더 보여줄까?

정치인에게는 부침(浮沈)이 있게 마련이라지만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처럼 롤러코스터를 탄 인물도 드물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유 전 대표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수위에 꼽혔다. 그러나 그의 주가는 한때 바닥을 쳤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며 재평가론이 나오지만, 8일 발표된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는 1.6%의 지지도에 그쳤다.

과거 유시민이라는 이름에는 거의 자동적으로 '친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4.11 총선을 전후해 '친노'라는 말이 민주당 내 일부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정치적 고유명사가 되면서 이제는 좀 덜해졌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고인을 상징하는 노란 넥타이를 맨 채 눈시울을 붉히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100분 토론> 진행자였던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유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됐고, 이후에도 스스로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했다. 그러나 '친노'가 제1야당 내의 주류가 되고 국회의원을 대거 배출했지만 '원조·골수 친노'인 그의 처지는 옹색하기만 했다. 총선 직후까지 얘기다.

날개 없는 추락

2007년 17대 대선 직후부터 여당의 '대세'는 박근혜였다. 야권에선 딱히 박근혜에 맞설 유력한 주자가 없는 가운데, 고만고만한 지지율 중 가장 앞서 있던 것이 '유시민 전 장관'이었다. 국회의원도 아닌 그는 한때 1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다.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야권단일후보로 나서 낙선했음에도 그랬다. 2010년 8월 조사에서는 비록 40%포인트 가까운 차이이긴 했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10년 10월 한 여론조사에서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유 전 장관을 처음 앞질렀을 때, 손학규는 15.4%, 유시민은 14.5%였다.

그러나 그 때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나 문재인 의원 등이 '링' 위로 오르지 않았을 때였다. 한때 '누가 야권의 No.1 대선주자냐'를 놓고 손학규와 다투던 유시민은 추락했다. 2011년 4.27 재보선에서의 패배가 뼈아팠다. 직접 후보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유시민과 당의 명운이 걸렸던 경남 김해을 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는 여당의 김태호 후보에 졌다.

재보선 직후인 5월, 본격적으로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진입'과 동시에 유시민을 제치고 손학규 대표 다음으로 야권 2위에 올랐다. 유시민은 그해 8월에는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에도 뒤졌다. 야권 4위, 전체 7위로 밀려났다. 대선 후보로서의 유시민은 끝났다는 평마저 나왔다.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

그러나 유시민은 2011년 하반기부터 '진보대통합'이라는 기조 속에서 구 민주노동당과의 접촉을 강화하더니 올해 1월 통합진보당 창당의 한 주체로 공동대표 자리를 맡았다. 민노당계에 이은 제2의 주주로서, 통합진보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친노'의 카테고리를 뛰쳐나간 정치적 모험이었다.

그런 그의 행보에 대해 의심이 없지 않았다. 민주당 주자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니 진보진영으로 건너와 '닭 머리' 노릇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불신마저 나왔다. '진보' 대통합이라고 하는데 과연 유시민이 진보적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조승수 전 의원 같은 이는 통합 이전인 지난해 6월 유시민에 대해 "진보정치의 기본적 밑바닥 정서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ㄱ, ㄴ'부터 다시 배워와야 한다"고 쏘아붙이도 했다.

유권자들의 평가가 반전된 것 역시 아니었다. 대선 지지율은 2~3% 사이를 오갔다. 박근혜-안철수-문재인에 이어 소위 언론에서 '다음으로 뒤를 잇는' 주자들 가운데서도 중간 정도에 거론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한 번도 손학규 전 대표에 앞선 적이 없었다.

당 내 입지가 확고한 것도 아니었다. 지난 2월 보여준 '당무 거부' 파업 사태가 상징적이다. 총선 후보 공천을 놓고 구 민노당계와의 당내 투쟁에서 밀린 유 대표가 '폭발했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구 민노당계의 계산보다 유 대표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 계기이기도 했다. 이후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예고하듯.

▲자난 5월 1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회의 도중 폭력사태가 빚어지자, 유시민 당시 공동대표와 진행요원들이 심상정 의장을 감싸 보호하고 있다. ⓒ뉴시스

유시민의 재발견

당무에 복귀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3월, 매번 결과적으로 정치적 실리를 놓친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던 그가 총선 비례대표 후보 12번이라는 순위를 받아들인 것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당시 통합진보당 지지율에 비춰볼 때 당선 안정권은 6~7번, 당선 가능권은 10번 정도였다. 거의 처음으로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이었다.

진보정당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온 정파 패권주의에 맞서 당무 거부까지 불사하며 상식과 혁신을 주장한 모습도 그에 대한 평가를 조금씩 개선시켰다. 총선 전 통합진보당 비당권파의 한 인사는 '당권파와 맞서는데 참여계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어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사태와 중앙위 폭력사태라는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며 유시민에 대한 평가는 역전됐다. 특히 결정적이었던 장면은 5월 12일 중앙위 폭력사태의 한가운데서 당권파 당원들의 폭력으로부터 심상정 의장을 몸으로 감싸 지키는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었다.

비례대표 12번을 받아들이는 모습, 자파 후보들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을 위해 보인 인내, 비례대표 경선 부정으로 인해 전략공천 명부인 그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열렸을 때도 후보직을 사퇴한 깨끗한 모습과 함께,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의미는 적지 않다.

정치인 유시민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진정성'이었다. 실제로 진정성이 없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중의 눈에 비친 그는 그랬다. 열린우리당 분당에 앞장섰고, 개혁국민당-열린우리당-민주당-국민참여당 등 당적을 수 차례 바꿨다. 6.2 지방선거에서는 김진표와 심상정을 주저앉히고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4.27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에 맞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배짱 승부를 펼쳐 자당의 단일후보 자리를 따냈다.

이는 놀라운 정치적 성취지만, 그 반작용으로 영악하고 약삭빠르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인터넷 '악플러'들이 그에게 붙인 치욕스러운 별명 '촉새', '정당 브레이커', '분열주의자' 등은 사실 진정성의 결여라는 한 가지 약점을 가리킨다. 그런 그가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며 보여준 진정성은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이다.

인내심도 생겼다. 언제든 '옳은 말'을 하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던 그였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평론가적인 모습이었다. 열린우리당 시절 김영춘 의원은 그에게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 것도 재주'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 와서 그가 가장 많이 보여준 것은 '참는 모습'이었다. 때로는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였다. 물론 '애국가 논쟁' 같은 경우 본성이 나왔다는 말도 있었지만.

최근에 자신의 주가가 다시 높아지는 데 대해서도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7일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한 그는 "당의 미래도 어렵고 나의 미래도 어렵다"며 당의 위기 극복이 우선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이처럼 유시민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 됐지만 대선 가도는 그에게 여전히 불투명하다. 진정성의 발로인지 현실적 계산인지, 그는 스스로 대선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이정희 전 공동대표에게 "'(유시민 대선출마) 안 한다고 하세요. 약속받았다고' 그렇게 말했다"며 "내가 나서서 (출마)한다고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출마 여부를 떠나, 당이 맞은 최악의 위기 와중에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지지자들과 일부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유시민이 앞으로 보여줄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설사 대선에 나오지 않을지라도, 정치인 유시민의 앞날에 모이는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이다. 이대로만 한다면.

* [대선읽기]는 2012년을 맞아 대선이 끝나는 12월19일까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연재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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