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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케>에서 <K팝스타>까지, 어떤 스타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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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케>에서 <K팝스타>까지, 어떤 스타를 원하는가

[김성민의 'J미디어'] 70년대 일본 대중소비문화와 <스타탄생!>의 의미

수많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등장 속에서도 텔레비전이 영리하게 살아남아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사람들을 접근시키는 기술'일 것이다. 물론 그 접근이 무조건적인 쌍방향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참여를 넘어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생활이 교차하는 공간과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오디션'은 생산과 소비 모두에 사람들을 참여시킴으로써 텔레비전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그 기술이 매우 감각적으로 집약된 포맷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키워지는 '스타'들에 투영되는 감각과 감수성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방송사와 대중음악계의 상업적 성취 여부를 넘어 그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읽을 수 있다.

일본 역시 사회문화적 전환이 텔레비전과 오디션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시기가 있었다. 바로 일본 텔레비전의 전환기였던 1970년대가 그때인데, 특히 1971년에 방송을 시작해 열도 전체를 오디션 열풍으로 몰아넣은 <스타탄생!(スター誕生!)>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70년대의 대중문화와 동의어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패전 후 일본 사회가 걸어온 역사적 맥락이 진하게 녹아있었다.

▲ <스타탄생!>의 한 장면 ⓒwww.barks.jp


70년대 일본은 한마디로 '대중소비문화'의 시대였다. 20여년 간의 고도성장을 통해 극심한 빈곤과 패전의 열패감으로 가득했던 '전후(戦後)'를 지운 일본 사회는 70년대 들어 화려한 소비문화로 치장한 '전후의 전후'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할리우드 영화와 '미드'를 보며 꿈꾸던 근대화된 도시 문화는 스크린 밖으로 나와 이제 일상의 풍경이 되었고,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을 바꿔놓은 이른바 '생활혁명' 속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산층 소비자'로 인식했고 또 그렇게 호명되기를 바랐다.

텔레비전은 그런 전환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창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전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컬러텔레비전의 보급 대수(1179만대)는 1972년에 이미 흑백텔레비전(1172만대)를 넘어선다. 중국과의 국교정상화와 미국으로부터의 오키나와(沖縄) 반환이 실시되고 카시오(CASIO)가 전자 계산기 <카시오미니> 100만대를 팔아치운 바로 그 해였다.

총천연색으로 치장한 텔레비전이 일상생활의 가장 중요한 가전이자 미디어로 자리 잡으면서 황금 시간대를 미국산 서부극과 홈드라마에 의존하던 일본의 텔레비전은 점차 다양한 국산 프로그램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생활양식과 취향에 맞춘 버라이어티와 홈드라마 등을 통해 국산 텔레비전 문화의 계보가 새롭게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기존의 대중문화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미군의 어깨 너머로 익힌 아류 문화도 아닌, 패전의 냄새가 짙게 밴 전후 문화도 아닌, 집집마다 컬러텔레비전을 갖추고 새로움에 목말라 하는 '중산층 소비자'들의 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컨텐츠를 원했다.

<스타탄생!>은 바로 그런 시기에 '탄생'한 프로그램이었다. 간판에 내건 '시청자 참여형'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다. 스타를 꿈꾸는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타 방송국에서 유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 놀라운 '사회현상'에 방송계는 물론이고 대형 기획사에 의해 지배되던 연예산업의 질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 핑크레이디(ピンク・レディー), 나카모리 아키라(中森明菜)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스타들이 10여년 간 20%대의 시청률을 유지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되었다. 일본 텔레비전의 역사가 <스타탄생!>의 전과 후로 나뉜다는 혹자의 표현은 조금 과장은 되었을지 몰라도 전혀 틀린 말 또한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오디션을 통해 스타가 된 소년소녀들의 모습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텔레비전은 처음부터 이들에게 뛰어난 가창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시의 한 심사위원을 표현을 빌리면, 필요한 건 '텔레비전의 시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미지'였다. 그러니 그/그녀들을 음악에 맞출 필요도 없었다. 음악이 그/그녀들의 '이미지'에 맞춰 만들어지면 되었다. 그렇게 음악이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변하면서 지금 공유되고 있는 의미에서의 '아이돌'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 <스타탄생!>의 한 장면 ⓒ<아사히신문> 1980년 8월5일자


<스타탄생!> 뿐 아니라 아마치 마리(天地真理. 1971년), 아사오카 메구미(麻丘めぐみ. 1972년), 캔디즈(キャンディ−ズ. 1973년) 등 '원조 아이돌'로 꼽히는 스타들이 모두 70년대 초반에 데뷔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68년'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저항문화들과 대비되는 아이돌 문화의 화려한 등장은 전후 일본 사회의 완전한 '전향'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전, 반자본, 반제국주의가 사라진 자리를 가득 채운 이 풋풋한 소년소녀들의 노래와 몸짓은 '미국 문화의 프로페셔널리즘'과 구별되는 '일본 문화로서의 아마추어리즘'이었고 고도성장으로 성취한 대중소비 문화를 만끽하려는 '중산층 소비자' 스스로의 찬가였다. '오디션'은 바로 그러한 욕망의 분출구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K팝스타>가 막을 내리고 <보이스코리아>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쉬워 할 틈도 없이 <탑밴드>와 <슈퍼스타K>의 새 시즌이 기다리고 있으니 70년대의 일본이 울고 갈 '오디션의 전성기'라 하겠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한국이 70년대 일본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와 정치적 불안이 수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텔레비전은 유래 없는 '암흑기' 속을 헤매고 있다. 무엇보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중산층 소비자'로 부르지 않는다. 화려한 대중소비 문화의 시대는 이제 가고 없다.

그렇다면 저 수많은 오디션을 통해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스스로 꿈꾸고 키워내는 스타들을 통해 무엇을 노래하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여기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2012년 한국의 '스타탄생'이 던지는 의미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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