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정보 접근이 높아지면서 그런 공작이 앞으로도 쉽게 관철될 지는 미지수이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직후 치러진 6.2 지방선거에서 정부여당의 안보불안 심리 자극이 약효를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어떨까, 사뭇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여전히 대립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암함-연평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정부의 대북 5.24 조치가 지속되고 있다. 거기에 지난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대한 남측의 '소극적' 반응에 북이 적대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결국에는 남북 군 당국에서는 쌍방 최고지도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과 그들의 사진을 표적지로 이용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북이 4.11 선거 직후인 12~16일 로켓 발사를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나섰고, 이에 대해 남한은 핵안보정상회의를 십분 활용해 적극적인 대북 압박을 했다. 이 즈음되면 그 어느 때보다도 반북 보수세력이 북한 및 안보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여당 대표 정치인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겨냥해 "야당은 한미동맹 해체와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정당과 손잡고" 있다면서 이들이 "철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대해 야당측은 "박근혜 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정책선거엔 관심 없고 철 지난 색깔론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있다" "야권연대를 겨냥한 종북 색깔론은 새누리당이 선거 때마다 들고 나오는 구태의연한 방법"이라고 맞서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렀다고 자평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도 대북 압박에 나서며, 간접적으로 여당의 선거전략에 도움을 주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잇단 대통령 및 대남 비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열린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 이후 정부는 대북 강경기조로 선회했다. 국방부 장관의 "강경 응징", "10배 대응사격"에 이어 통일부 장관의 "실패한 사회주의 독재국가", 대통령의 "철저 응징"은 각각 맥락 있는 발언이지만,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안보심리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북한의 핵 야욕을 견제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실제 이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해 회의 참석 국가들의 여러 수반들로부터 북의 로켓발사 시험 계획을 규탄하는 입장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임기 중에 제가 (남북관계에서) 어떤 성과를 낸다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라고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의향은 크지 않음을 내비쳤다.
김정은 체제로 변화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이 불안하다는 판단을 더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에도 이명박 정부는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무엇보다 현 정권은 현상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연연하기보다는 "원칙 있는 남북관계"를 수립한 정권으로 남고자 하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여기서 원칙 있는 남북관계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현 정부ㆍ여당은 "상생공영의 남북관계"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대북정책에서도 "실용주의"를 천명하며 출발하였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실패로 판명된 선(先) 북핵 포기를 재연한 '비핵ㆍ개방ㆍ3000'을 주장하고, 6.15 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의 이행에 소극적으로 나서며 북의 불신을 샀다. 금강산 관광에 나선 남측 민간인의 사망에 따른 관광 중단사태와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남북 대립을 이어갔다. 그 사이 북의 2차 핵실험이 있었고, 한미간 대북 제재가 강도 높게 전개되었다. 북한정권의 불안정 전망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북은 최고지도자가 교체되면서 그간의 대남 불신과 대내적 필요에 의해 남한과의 대결국면을 해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이유로 이명박 정부와 여당측도 대북 불신과 대내적 필요에 의해 남북관계를 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대내적 필요로 말한다면 일원적 정치체제인 북한보다 다원주의 체제 하에서 남측이 더 커 보인다. 정부의 "원칙 있는 남북관계"와 여당의 반북안보심리를 자극할 필요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원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한 설명을 들은 적은 없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MB정부 고위인사들과 통일 관련 정부 문서를 볼 때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 하나가 북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협상자세이고, 다른 하나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확산하는 의미의 통일정책의 전개이다. 여기서 어떻게 남북간 "상생공영"이 가능한지, 그리고 "원칙" 수호를 위해 정치적 갈등과 군사적 긴장은 감내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우리에게 남북관계는 상대를 윽박지르는 데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통일을 준비하는 대화의 공간이자 긴장을 관리하는 완충지대이고, 평화를 조성해나갈 협력 공간이지 않는가. 그런데 원칙을 내세워 한반도 전체 구성원의 생명과 생존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는 게 가당한 일인가?
분단 대치 상황에서 그간 우리사회에는 하나의 큰 통념이 있어왔다. 수구세력은 부패하고 인권탄압은 일삼지만 안보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MB정부는 그것이 잘못된 통념일 뿐임을 증명해주었다. 짧은 선거 유세기간 동안 과열 양상을 보일 것이 명확하지만, 유권자의 이성은 그에 휘둘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 하나의 잣대가 안보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정치선동을 경계하는 자세이다. 더구나 그런 행태를 자행하는 정치세력이 안보에 무능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자들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긴장 고조 행위를 감시하고, 올바른 대외전략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평화에 투표하자' 시리즈를 공동 기획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필자로 나서는 이 연재에서는 선거 전 불거지는 현안에 대한 대응은 물론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외교ㆍ안보 쟁점에서 가져야 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긴장 높아지면 대포는 저절로도 터지더라…"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2. 존재의 이유를 부정한 '국군'이 더 위험하다 (이대훈 성공회대 겸임교수) 3. 이어도-제주 해군기지-탈북자, 북풍 '풀세트'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4. 제주 해군기지, 'DJ 노선' 버리고 'MB 노선'으로 가는 것 (이시우 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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