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걸핏하면 팔레스타인의 인프라를 파괴해왔고, 그래서 가뜩이나 취약한 인터넷 시스템을 더욱 느리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08~09년 가자 침공 때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의 팔텔(Paltel)의 통신라인을 파괴했는데, 그 피해액만 무려 1000만 달러였다.
현재 팔레스타인에는 팔텔의 전화부문 자회사인 자왈(Jawwal), 인터넷 부분 회사인 하다라(Hadara), 그리고 팔텔과는 경쟁관계인 또 다른 전화회사 와타니야(Wataniya)가 있지만, 이들 모두 이스라엘 통신부 장관의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통신 라인의 추가 매설 또는 보수 공사를 할 수 없다.
그동안 이스라엘 본토에서의 통신 서비스는 날로 좋아졌지만,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서비스는 크게 뒤떨어진 수준으로 방치된 상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취재를 오는 외신기자들이 라말라 같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도시보다 서예루살렘을 선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과 전화를 비롯한 통신 서비스 속도의 차이 때문이다.
통신은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팔레스타인을 21세기의 식민지로 점령중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인터넷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파레스타인 서안지구를 점령한 뒤 이스라엘 국영통신회사인 베제크(Bezeq)를 통해 팔레스타인 전역의 통신을 지배한다.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사용되는 모든 전화, 이동전화, 인터넷이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있다. 오가는 모든 메일들을 마음만 먹으면 유리지갑처럼 들여다본다.
팔레스타인 통신시스템은 이스라엘이 통제하기 편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끼리 나누는 전화나 인터넷은 그 연결선이 이스라엘을 거쳐야 한다. 서안지구 남부의 헤브론에서 동예루살렘으로 전화를 걸더라도 이스라엘 영토를 거치야 하는 식이다. 언제라도 불편을 줄 수 있도록 통제와 장악 시스템이 짜여 있는 셈이다. 지난해 여름 이스라엘 군은 가자-이스라엘 접경 나할 오즈 검문소 근처의 땅을 불도저로 파헤쳐, 가자로 통하는 광섬유 전선을 끊어 가자지구 사람들의 통신을 방해하기도 했다.
해킹도 큰 문제다. 유대인 해커들 때문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나 여러 기관들의 인터넷 사용은 방해를 받기 일쑤다. 지난 2월 이스라엘 해커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공식 언론매체인 와파(Wafa)와 마안(Ma'an)을 비롯한 몇몇 미디어들의 웹사이트를 공격해 한동안 운용을 못하도록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통신회사 팔텔은 사과문을 내면서 "외부의 방해를 받아 인터넷 연결이 매우 느려졌다"며 화살을 이스라엘 쪽에 돌렸다.
▲ 텅빈 동예루살렘 거리를 지키는 이스라엘 여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사이버 공간마저 점령중이다. Ⓒ김재명 |
사이담 보좌역 "웹 전쟁 벌어졌다"
가자지구 라말라에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의 통신기술 부문 보좌역인 사브리 사이담(전 통신부장관. 42)을 만났다. 그에게 해킹 얘기를 꺼냈더니 "2012년 들어와 유대인 해커들이 팔레스타인 웹사이트들을 전보다 더 극성스럽게 공격하고 있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전례가 없는 인터넷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해커들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청난 양의 메일 폭탄을 나와 동료들에게 보내서 서버를 다운시킨 적도 있다. 특히 이즈음 들어와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게 웹 전쟁(web war)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통신분야 전문가인 사이담 보좌역은 영국 킹스칼리지에서 전기기술 박사학위를 받은 신세대 테크노크라트이다. 2005~06년 사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통신부장관을 지낸 바 있다. 이어지는 그의 불만 섞인 얘기.
"지난 해 11월에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인터넷이 거의 모두 불통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대표해 내가 나서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했지만, 그 원인이 이스라엘 해커들에 있는지, 아니면 이스라엘 정부의 개입에서 비롯된 전면 불통인지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국제통신연맹(ITU)에도 이 문제를 조사하도록 요청했지만, 시원스런 답변을 듣지 못한 상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해커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를 의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디지털 분야에서도 점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요 인사들의 메일을 이스라엘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본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치정부 관계자들은 중요한 안건을 논의할 경우 전화나 이메일보다는 얼굴을 맞대고 말로 한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대화가 도청 당할 수도 있다.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 통신분야 보좌역 사브리 사이담(전 통신부장관) Ⓒ김재명 |
팔레스타인 해커들도 나섰다
팔레스타인 쪽도 해킹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친팔레스타인 해커들은 이스라엘 웹사이트들을 공격하면서 그곳에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휘날렸다. '이스라엘과 미국에 죽음을!'이란 문구도 남겨놓았다. 한 팔레스타인 해커는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하욤>을 공격하면서, "앞으로 이스라엘 정부 사이트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검색엔진인 구글(google.co.il)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일부 친팔레스타인 해커들은 이스라엘의 엘알 항공사와 텔아비브 주식거래소를 공격 목표로 삼으려 했다.
올해 초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하레츠>의 인터넷판이 해킹을 당해 몇시간 동안 다운돼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하레츠>는 이스라엘의 정치지형에서 전통적으로 좌파 노동당 색깔을 지녔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비판적인 논조를 지녀왔다. 한국으로는 <한겨레>나 <프레시안> 색깔 정도로 이해하면 틀림이 없고, 이스라엘 우파들은 <예루살렘 포스트>를 더 좋아한다.
그런 <하레츠>를 친팔레스타인 해커가 공격한 것은 뜻밖의 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하레츠>를 해킹했던 익명의 친팔레스타인 해커도 트위터를 통해 "죄송하게 됐다. 하레츠가 좋은 신문인지를 잘 모르고 그랬다. 앞으로는 다시 하레츠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것으로 상황은 대충 마무리됐다.
이스라엘이 보내는 대량 문자들
이스라엘 정부는 때때로 팔레스타인 가입자들에게 텍스트 문자나 보이스 메일을 마구 발송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 2008~09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침공했을 때는 "곧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텍스트 메시지나 보이스 메일을 수시로 보내곤 했다. 그런 메일이나 메시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친절한 안내라기보다는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것들이다.
사이담 보좌역은 사이버 공간에서 저질러지는 전투가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지면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유혈투쟁에서 제3의 전투공간으로 떠올랐다고 여긴다.
"특히 2012년 들어와 전통적인 무기들 대신에 전자해킹이 새로운 충돌의 양상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이스라엘의 아마추어 해커들이 공격해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우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기관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처하려고 한다."
"통신주권 되찾겠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지배체계 유지를 강조해왔다. 그들은 "언젠가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가 들어서더라도 전기-디지털 분야에서 팔레스타인이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와 관련, 사이담 보좌역은 통신주권만큼은 반드시 되찾겠다고 강조한다.
"1993년 맺은 오슬로평화협정에 따르면, 우리 팔레스타인은 국제 통신체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돼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뒤에야 독자적인 통신 체계를 설계하고 대규모 투자를 끌여들여 공사를 벌여야 한다. 우리는 그런 날을 준비하고 있다."
▲ 동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중인 유대인들, 이들은 지금 중동평화를 위해 기원할까 Ⓒ김재명 |
제3차 인티파다 일어날까
사이담 보좌역을 만나기 하루 전날 이스라엘 공군은 가자지구를 폭격해 팔레스타인 저항요원과 민간인들이 여러 명 죽고 다쳤다. 작전 시야를 넓힌다며 불도저를 동원한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주거지 파괴도 잇달았다. 그동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반대로 주춤거렸던 서안지구 정착촌 확장공사도 미 대선이 열리는 올 들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사이담 보좌역은 "2012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새로운 유혈충돌이 곧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이란 핵문제나 시리아 민주화 유혈사태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관심이 줄어든 상황을 이용해, 그리고 미국이 대선정국을 맞아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이스라엘은 마구잡이로 총격이나 폭격을 해대고 있다. 서안지구 곳곳에 정착을 늘려가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만약 이스라엘이 정착촌 확장을 멈추지 않고 지금처럼 늘려간다면 곧 제3차 인티파다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민심이 흉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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