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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맛 알아버린 대학을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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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맛 알아버린 대학을 개탄한다"

[월러스틴의 '논평'] "대학 사유화의 처참한 결과는?"

위기에 처한 고등교육
(Higher Education Under Attack)


과거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세계에는 극소수의 대학들만이 존재했다. 전체 대학생 수도 매우 적었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상류 계급 출신이었다.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큰 위상을 지녔고 커다란 특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1945년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수가 많이 늘었고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이는 단지 유명 대학들이 이미 있던 국가들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1945년 이전에는 대학이 거의 또는 아예 없던 많은 나라들에서도 대학 교육은 시작됐다. 고등교육은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고등교육 확대의 압력은 위와 아래 모두에서 가해졌다. 위로부터는 정부가 대학 졸업생들을 필요로 했다. 세계 경제의 급격한 확장에서 비롯된 복잡한 기술 영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아래로부터는 세계의 많은 중산층과 하위 계층까지도 고등 교육에 접근할 권리를 주장했다.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미래를 밝게 하기 위해서였다.

양적으로 주목할 만했던 대학의 확대는, 근대 이후의 세계체제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1945년 이후 세계경제의 급격한 확장에 의해 가능했다. 대학에는 돈이 넘쳐났고 그들은 이 돈을 쓰며 즐거워했다.

물론 이는 대학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놓았다. 개별 대학들은 규모가 훨씬 커졌고 소수 인원일 때 가능했던 높은 수준의 친밀도는 사라졌다. 대학생들의 계급 구성도 변했고, 그로 인해 교수진도 변했다. 많은 국가에서, 대학의 확대는 단지 대학생·교수·교직원에 대한 상류층의 독점이 줄어든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전체적으로 또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거부됐던 '소수' 집단과 여성이 더 폭넓은 접근권을 가지게 됨을 의미했다.

1970년대 이후부터 이런 장밋빛 전망은 난관에 부딪혔다.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대부분 국가로부터 오던, 대학이 받는 돈의 양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대학교육 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대학의 확대를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은 더 거세졌다. 그때부터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두 개의 곡선이 생겨났다. 즉 돈은 적어지고 비용은 늘어났다.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UC 데이비스)에서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동조한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해산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저항하지 않는 시위대에게 최루 가스를 분사해 논란을 빚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화면캡쳐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상황은 더 나빠졌다. 대학들은 어떻게 대처했나? 주요 방식 중 하나는 "사유화"라는 것이었다. 1945년, 아니 1970년대 이전에도 많은 대학들은 국립 기관이었다. 대부분 종교 기관으로부터 유래된, 국립이 아닌 대학이 다수였던 미국은 명백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미국 사립대들 역시 비영리 구조로 운영됐다.

사유화란 이런 것들을 의미했다. 첫째, 영리 목적으로 설립된 고등교육 기관들이 생겨났다. 둘째, 공공기관은 후원 기업들로부터 돈을 얻으려 했고 그 결과 기업이 대학 내부의 행정에 개입하게 됐다. 셋째, 대학은 자기 소속 연구자들이 발견·발명한 성과에 대해 특허를 내려 했고 이에 따라 경제, 즉 '사업'에 행위자로서 발을 들여놓게 됐다.

돈이 없는, 적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좀더 사업적인 기관들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먼저 전통적으로 학자들로 채워졌던 대학의 최고 관리직과 교수진들은 이제 재계 등 대학 외부에 배경을 둔 이들에 의해 점령됐다. 그들은 돈을 끌어 왔지만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기준도 이들이 정했다.

다음으로 대학 전체와 대학 내의 학부는 투자받은 돈으로 얼마나 성과를 내는가 하는 기준에서 평가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특정 학문을 전공하고 싶어하는지, 또는 대학·학부의 연구 결과가 얼마나 존경받는지 등에 의해 측정됐다. 지적인 삶은 시장적 기준에 의해 판단됐다. 학생 모집마저도 여러 대안들 중 어떤 모집 방법이 더 많은 돈을 끌어왔나에 의해 측정되고 있다.

이마저도 불충분했는지, 대학은 극우파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反)지성적이며, 대학을 세속적이고 반종교적인 기관으로 생각한다. 지배 집단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의미에서 비판적 기관으로서의 대학은, 언제나 국가와 지배 엘리트들의 억압과 저항에 직면해 오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상대적으로 운영에 돈이 적게 들어 재정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옛날의 대학이지,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대학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현재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전지구적 혼란의 또다른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단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은 우리 세계체제의 현실을 분석하는 주요 기지 중 하나라는 점에서 (물론 유일한 기지는 아니다) 간과할 수 없다. 그 분석이란 혼란스러운 전환에서부터 새롭고 더 나은 세계 질서로의 성공적 이행을 가능케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대학 내부에서 일고 있는 분란은 세계경제에서 일어난 것만큼이나 해결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더 소수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월 1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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