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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북미 회담을 보는 다른 시선

[기자의 눈] 북한과 미국의 '밀당' 뒤 숨은 이야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북한이 친해지길 원했다. 그 마음을 아는 미국은 한국에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테니 우리가 원하는 걸 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한미 양자 외교 현안들이 미국의 바람대로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북한이 친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그 마음을 아는 미국은 '북한과 거리를 둘 테니 우리가 원하는 걸 들어 달라'고 한다. 그 결과 한미 외교 현안들이 미국의 바람대로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이 말을 안 들으면 '북미관계 급물살' 같은 기사가 나오게 하면 해결된다."

남-북-미 3각 관계의 숨은 작동 원리. 오랫동안 대미 외교의 최일선에 있었던 한 인사가 소개한 새로운 외교 해석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남-북-미 관계를 재구성하면 책이 한 권 나온다"라고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미국이 북한과 '밀당'하는 진짜 목적은 한국 컨트롤을 위해서란 것이다. 간교함에 혀를 내두를 일이지만, 외교 현실이란 그런 것이라고 했다. (故 서동만 교수도 "미국의 초점은 애당초 북핵이 아니었다"라는 글에서 노무현-부시 시절을 이와 유사하게 분석한 적이 있다)

▲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연합뉴스


지난 23~34일 베이징에서 3차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회담 직후 미국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과의 핵심 쟁점에서 "다소 진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있었고, 6자회담 재개의 전망이 밝아졌다고 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데이비스는 다음날 한국에 와서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6자회담 수석대표)을 만났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남북관계 개선 없이 북미관계 개선 없다." 두 사람의 입에서 총 4차례나 나왔다. 전날 베이징에서는 없었던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화 의지는 없다. 북한도 이명박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 없이 북미관계 개선 없다는 말은 곧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는 북미관계 개선이 없다는 뜻이다. 이로써 데이비스 대표의 "다소 진전"은 무의미한 말이 돼버렸다. '6자회담 재개 전망'을 운운하던 언론들의 기류는 24시간 만에 바뀐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先) 남북관계 후(後) 북미관계'란 공식은 이명박 정부에서 한동안 자주 회자됐다. 북한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미국의 발목을 잡기 위해 만들어낸 그럴싸한 '원칙'이었다. 왜 남북관계 진전이 꼭 앞서야 하는지 썩 납득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입 다물고 들어줬다. 이명박 정부가 이것저것 퍼주면서 잘해줬기 때문이다. 그 남북관계 선행론이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예의 '남-북-미 3각 관계의 숨은 원리'가 다시 작동한다.

따지고 보면 올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북미관계를 진전시켜야 할 특별한 동기는 없다. 큰 변화를 꾀하는 것은 오히려 리스크가 크다. 북한의 속성상 받지 않고 줄 리 만무하니 북한에 식량 같은 걸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야당 공화당은 그렇게 해서 나온 성과보다 식량을 준 것만 물고 늘어지며 오바마를 공격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나쁜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그게 더 먹힌다. 그러니 오바마로서는 북한이 '사고'만 치지 않게 대화나 가끔 하면서 관리하려 할 뿐 북미대화를 적극 진전시킬 이유가 없다.

그렇게 볼 때 데이비스 대표의 '다소 진전' 발언엔 다른 저의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를 조급하게 해서 한미 외교 현안 중 지지부진한 것들을 빨리 진척시키겠다는 저의 말이다.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를 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을 묶어두기 위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진전" 발언 후 모종의 '작업'이 가해졌을 수 있다. 이란 제재에 더 적극 동참한다거나, 수십조 무기 도입 사업에서 미국산 무기를 사는 등의 대미 퍼주기가 우선 떠오른다.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필연적으로 미국 군함의 기항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꼭 필요하다.

정권 말기에는 국내적으로도 힘이 빠지지만 대미 외교에서도 힘이 빠지게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의 바람대로 미국을 움직이려면 정권 초중반 때보다 더 퍼줘야 한다. 한편으로 미국은 한국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주머니가 얇아진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잘해주는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최대한 많이 퍼가야 하는 것이다. 이 두 요인이 동시에 작용할 경우 국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것들이 이뤄질 수 있다. 여기서 북미관계는 미국에게 아주 유용한 레버리지다. 언론과 시민사회가 정권 말기 한미관계를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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