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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의 '괴물'은 베트남 전쟁이 예견한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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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의 '괴물'은 베트남 전쟁이 예견한 희생양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의 닮은 꼴

흔히 21세기의 초강대국으로 미국을 꼽는 데는 세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첫째는 강력한 군사력, 둘째는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경제금융의 힘, 셋째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권력이다. 초강대국 미국을 받쳐주는 세 개의 기둥 가운데 특히 군사력에서 미국은 남다른 힘을 지녔다.

구체적으로는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그리고 유럽의 28개 나토 회원국 모두에다 한국의 국방비까지 합쳐도 미국의 국방비에는 못 미침. 2012 회계연도 미 국방비는 일반국방예산 5530억 달러와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비용 1178억 달러로 합쳐 6710억 달러), △1만개에 가까운 핵무기(해체 예정이라는 핵무기를 뺄 경우도 최소 5000개 이상), △6개 지역사령부(태평양, 북부, 남부, 중부, 유럽, 아프리카 사령부)와 4개 기능군사령부(전략, 수송, 특수작전, 합동전력 사령부)로 전세계를 아우르는 군사강국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위한 '더러운 전쟁'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9.11 테러를 비롯해 미국의 평화는 도전에 부딪쳤다. 미국이 현명했다면 왜 테러행위가 미국을 겨냥하는지, 미국의 중동정책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헤아려야 했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챙기고, 미국의 석유이권을 보장해주는 독재자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거두어들여야 했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그렇지 못했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란 구실 아래 '전쟁에 관한 국제법'을 어기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국제법에 따르면, 합법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다른 나라로부터 침공을 받았을 경우 조국방어 전쟁을 펼치거나, 다른 하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침략국가에 맞서 집단안보를 지키기 위해 공동결의안을 통해 국제사회가 침략국가를 응징하는 경우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이라크로부터 침공을 받지도 않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없었다. 미국은 첫째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이란에 이어 세계 4위의 매장량을 지닌 이라크의 석유이권을 챙기고, 둘째로는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이스라엘의 국가안보를 챙겨주기 위한 '더러운 전쟁'을 벌였다. 이라크침공에 나섰던 미군 병사들은 싫든 좋든 그 '더러운 전쟁'에 휘말린 셈이 된다.

▲ 벤자민 컬턴 반스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폭력에 중독된 병사들

지난 2011년 말 미군 전투병력은 이라크에서 모두 철수했다. 전쟁을 벌인지 8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 이뤄진 철군이었다. 그동안 이라크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말과 글로 나타내기 어렵다. 미국 브라운대학교 부설 왓슨 국제관계연구소가 펴낸 <전쟁의 비용>(Costs of War)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12만5000명에 이르고, 200만명 이상이 난민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인권침해도 큰 논란이 됐다. 이라크 바드다드 서쪽에 자리잡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인권침해는 패권국가 미국이 지닌 폭력적 얼굴을 드러내 큰 논란을 불렀던 사건이었다. 문제는 이라크에서의 일상적인 폭력에 중독된 일부 미군 병사들은 본국에 돌아와서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2012년 새해 들어 일어난 두 개의 살인사건이 한 보기다.

벤자민 컬턴 반스(24)는 2007~2008년에 걸쳐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돌아온 참전용사다. 그는 미 시애틀에서 2012년1월1일 이제 막 새해를 맞아 신년파티를 하던 사람들에게 총을 마구 쏘아 4명을 다치게 하고 국립공원 순찰대원 1명을 죽였다. 그 뒤 눈 덮인 산 속으로 도망쳤다가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됐다. 반스의 아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반스는 군복을 벗은 뒤 민간인으로서의 새 삶을 꾸려가는 데 어려움을 보였다. 집에 무기고를 차려 놓고 총기를 매만지며 시간을 보냈고 자살 충동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시애틀 총기난사사건 보름 뒤인 1월16일엔 또 다른 이라크전쟁 참전자 이츠코아틀 오캄포(23)가 연쇄살인 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붙잡혔다. 그에겐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거리의 노숙인 4명을 잇달아 죽였다는 혐의가 따랐다. 고교를 마친 뒤인 2006년 미 해병대에 입대해 2008년부터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던 오캄포(23)는 멕시코 이민자 출신이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오캄포가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 딴 사람이 됐다"고 증언했다. 예전과는 달리 훨씬 얼굴이 어둡고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셨다. 손 떨림과 두통 등의 증상도 보였다. 같은 동네 친구가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도 오캄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세상이 곧 끝날 것"이란 말을 하곤 했다.

"나를 이라크에서 내보내 줘요"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위의 두 사건을 진단한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 일컬어지는 정신적 후유증을 꼽기 마련이다. 이라크전쟁은 미군이 겪어온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전방과 후방을 가르는 전선이 없다. 적은 앞에서든 뒤에서든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고, 도로에 매설된 급조폭발물(IED)도 미군의 목숨을 노린다. 거리에 버려진 이상한 물건이 폭탄일 수도 있다.

이런 긴장감이 "석유 이권과 이스라엘 안보를 위한 더러운 전쟁에 나도 모르게 휘말렸다"는 회의감과 맞물려 병사들로 하여금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짓눌려 뇌상을 입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바그다드 미 육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맡았던 리키 맬론 대령은 그곳에서 환자들로부터 늘 듣는 말이란 이러했다. "나를 이라크에서 내보내 줘요.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완전히 딴사람이 돼 돌아왔다"

전선에서 돌아온 참전군인들의 범죄(살인, 폭력)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 수렁에 허우적대던 1960년대는 이즈음처럼 지원이 아닌 징집제였다. 미국의 전쟁 개입이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베트남에서 많은 미군병사들은 폭력에 익숙해졌고,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술과 마약을 가까이 했다. 베트남 참전군인들 가운데 30% 가량은 미국으로 돌아온 뒤 PTSD 증상으로 고통을 겪었고, 일부사람들은 이혼, 술과 마약중독 속에 자살 또는 폭력에 빠져들었다.

PTSD 증세를 앓은 병사는 군복을 벗더라도 시민사회로 돌아가 적응하기가 어렵다. 사회적 부적응과 좌절감은 살인이란 삐뚤어진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에 이른다. 미국으로 돌아와 살인을 저지른 전 해병대 부사관의 아내는 "그를 전선으로 보냈는데, 완전히 딴사람이 돼서 돌아왔다"고 한탄했다.

베트남전쟁과 닮은꼴

문제는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폭력현상이다. 베트남전쟁에 미국이 개입했던 10년 동안(1963~1973년) 미국의 살인범죄가 급속히 늘어났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남성에 의한 살인율이 101%, 여성에 의한 살인율이 59% 늘어났다. 1980년 미 사회학자 다이엔 아처와 로즈메리 가트너는 미국의 살인범죄가 늘어난 것이 무엇 때문인가를 연구했다. 이들은 살인범죄 증가가 흔히 생각하듯이 "베트남전쟁에서 폭력에 익숙해진 병사들이 미국 사회로 복귀한 뒤 적응을 못해 저지르는 범죄 때문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사회학자는 연구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냈다. 베트남 참전세대가 아닌 45세 이상의 세대에서도 살인범죄율이 다른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결론은 "미국이 베트남전쟁 개입 동안에 전반적으로 미국사회가 폭력화됐다"는 것이었다. 폭력을 합법화하는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일반사회도 폭력을 정당화하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그런 폭력적 경향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지난 10년 가까이 미국은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 등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왔다. 앞으로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참전했던 경력을 지닌 예비역뿐만 아니라 일반 미국시민들도 더욱 폭력화되고 범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의 폭력화 현상을 떠올리면 이런 우려가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다.

'더러운 전쟁' 희생양은 누구인가

미 군사(軍史) 전문가인 리처드 가브리엘(다니엘 웹스터 대학 교수)은 이렇게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전쟁을 치르면서 돈이 얼마나 들었고, 사상자가 몇 명 생겼나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병사 개개인이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가에 대해선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간'을 기준으로 전쟁비용을 계산한다면, 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흔이 아마도 가장 비싼 비용이라는 것이 가브리엘 교수의 주장이다. 적의 포화에 팔다리가 부러진 부상병보다 눈에 안 보이는 정신적 부상병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석유이권과 이스라엘 안보를 챙기려고 미국이 저지른 이라크 침공의 희생자는 누구일까.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돌아와 군복을 벗은 뒤로도 PTSD로 괴로움을 겪는 미국 젊은이들, 전쟁윤리 의식이 무딘 미군병사의 총질과 군홧발에 희생됐던 이라크 민초들, 이들 모두가 미국의 '더러운 전쟁' 희생양들이 아닐까 싶다.

* 참여연대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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