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AI)는 9일(현지시간) 펴낸 보고서 '봉기의 해 :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인권 상황'에서 아랍권 위정자들이 민중의 요구를 억압적으로 짓누르거나 또는 단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cosmetic) 소폭의 변화만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AI는 8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정부는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서 "눈가림식 개혁안을 내놓거나, 시위대가 이룬 성과를 무위로 돌리거나,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하려는 시도는 단지 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도 민중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시리아에서는 정부에 의해 구금된 상태에서 사망한 사람만 해도 200명이 넘어선다. 지난 6일 <뉴욕타임스>는 시리아 정부의 고문으로 숨진 희생자 수가 617명에 이른다는 시리아 인권단체의 주장을 인용 보도한 바 있다. 또 예멘에서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놓고도 상황을 질질 끄는 바람에 평범한 국민들만 고통받고 있다고 AI는 지적했다.
바레인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제 전문가들이 작성한 시위 과잉 진압과 관련한 대응 방침을 채택했음에도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라고 AI는 꼬집었다. 지난해 2월 시위 발생 이래 4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동맹국 바레인은 시위를 가장 '성공적으로' 진압한 국가이며 시위대의 요구는 전혀 실행되지 않고 있지만 서방 및 국내 언론들은 별다른 주목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AI는 장기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서도 아직 핵심적인 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집트의 상황에 대해 AI는 "어떤 면에서는 무바라크 정권 치하에서보다 더 참혹한" 인권 침해가 현재 정국을 이끌고 있는 군부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지난해 10~12월 중에만 84명이 군의 강경 진압으로 숨졌고 작년 한 해 동안 군사법원에서 재판받은 사람은 30년의 무바라크 정권 전체 기간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여성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군인들이 행사한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 AI는 '여성들에게 수치심과 두려움을 줘 시위 참가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뉴시스 |
AI는 또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의 상황에서 인권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달랐다면서 국제사회와 지역 기구들의 "일관성 없는" 태도를 비판했다. 서방의 '이중잣대'를 지적한 것이다. 이 단체는 "인권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핑계거리였지만, 시리아에 대해서는 지난해 말에서야 유엔(UN) 안보리가 '강도가 낮은' 비난 성명을 내놨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AI는 "유엔이나 유럽연합(EU)의 기구들은 바레인, 예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제제는 논의조차 한 바 없다"고 꼬집었다. 세 나라는 모두 친(親)서방, 친미 성향 정권이 들어선 국가들이다. AI는 미국과 서방이 여전히 시위대를 진압하는 걸프 지역 국가들의 주요 무기 공급처라는 문제도 짚었다.
그러나 AI는 개혁을 요구하는 아랍 민중들의 운동은 지난해의 대규모 유혈사태와 체포 정국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들지 않고 있다면서 올해에도 민중들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의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국장 필립 루터는 보고서에서 "시위대는 통치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변화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자신들을 탄압했던 것과 별로 다를 것 없는 군과 보안군의 '개혁'에 의해 놀아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정의와 존엄을 향한 투쟁을 계속해 나가리라는 것이 2012년의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AI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발생한 각국의 시위 상황과 이에 대한 정권의 잔혹한 탄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www.amnesty.org)에서 볼 수 있다. (☞보고서 원문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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