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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전문가 "독일이 '급하게' '비싸게' 통일했다는 건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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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전문가 "독일이 '급하게' '비싸게' 통일했다는 건 오해"

베르너 페니히 "관계 정상화와 공존을 위해 쓰는 돈은 미래 위한 투자"

독일의 분단‧통일 문제 전문가인 베르너 페니히 베를린자유대학 명예교수는 과거 독일 통일이 급속하게 이뤄졌다거나 통일비용이 많이 들었다는 한국의 일반적 인식은 단편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니히 교수는 15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주최한 특별강연 '독일 평화통일 20년의 경험'에서 통일비용 논의는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선진적인 서독의 보건‧연금‧복지 제도가 동독에 이식되면서 비용이 많이 든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이는 통일 비용이라기보다는 동독의 사회‧경제가 서독의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든 비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요된 비용 대부분은 동독의 저개발 상태 극복에 꼭 필요했다"고 말했다.

페니히 교수는 "통일(비용)도 비싸지만 분단 또한 돈이 든다"면서 "분단을 유지하는 데 드는 돈은 비생산적이지만 관계 정상화와 공존을 위해 쓰는 돈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은 비용을 감수할 만하다"며 독일 통일을 주도했던 로타르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의 저서 제목이 <내 아이들이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공포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 비밀경찰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의 가치는 얼마나 크겠나. 이는 경제학자들이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분단은 의존적인 국가를 만든다"며 과거 소련의 도움 없이 동독과 북한이 유지될 수 없었고 미국도 남한과 서독을 적극 지원했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지금도 북한은 중국에, 남한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작 중요한 것은 관계 정상화"

페니히 교수는 독일 통일의 실질적 과정이 1990년 4~9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급속하게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배후에는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페니히 교수는 "급속한 통일의 배후에는 단계적 준비가 선행돼 있었다"면서 "사전 관계정상화 시기가 없었다면 평화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서독 관계 정상화를 위한 서독의 초당적 노력도 소개됐다. 빌리 브란트 당시 총리가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 국내 야당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정작 정권 교체가 이뤄졌을 때 포용정책이 계속 유지된 것이 결국 독일 통일을 이루게 한 요소 중 하나였다며, 이같은 정책 연속성은 남북한 간의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도 필수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관계 정상화가 반드시 통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 '사이 좋은 별거' 상태가 된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관계를 예로 들며 "정작 중요한 것은 관계 정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관계는 과거 통일 국가였던 시절보다 오히려 개선됐다"며 "더욱이 양국은 유럽 통합 과정에서 협력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베르너 페니히 베를린자유대학 명예교수가 15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

한국에 타산지석이 될 통일 독일의 문제는?

이날 강연에서는 한국에 '타산지석'이 될 통일 독일의 현실 문제도 언급돼 관심을 끌었다. 그는 2005년까지 약 140만 명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했고 이 중에는 잘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많아 동독 지방이 인구 출혈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통일 후 20년 동안 구 동독 출신자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진출한 사례가 적어 대표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9년 독일군의 경우 200명의 장성 중 단 1명만이 동독 출신이었고 연방 내각에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제외하면 동독 출신 장관은 없다"고 말했다.

통일 과정에서 독일이 겪었던 문제도 지적됐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 국유자산의 사유화 과정을 주도한 '신탁국'(Treuhand)이 많은 기업들을 매각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었고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기업들을 유지하고 현대화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등의 활동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고 그러한 변화 이루에 매각했어도 되는 일이었다"며 신탁국의 관리 대상 자산은 1990년 8400개 기업 400만 명의 임직원에 달했으나 1994년 활동이 종료될 당시 120만 개 정도의 일자리만 남았다고 말했다.

또 암시장에서 1:4 정도 비율로 교환되던 서독과 동독 마르크를 통화 통합 과정에서 1:1로 교환한 결과 동독 지역에서는 사실상 물가가 4배나 오르고 매우 짧은 기간 내에 20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생겨나는 등 경제적으로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으로는 심각한 문제였으나 정치적으로는 필요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같은 경제 분야의 실수로 생겨난 동독 지역의 실업자들에게 지급된 실업급여 때문에 통일 비용이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 비용의 70%는 서독 복지 제도를 동독에 적용하는 것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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