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북측에 먼저 제의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책적 준비가 돼있다면 협의되는 대로 북한 사정을 살펴서 우리가 제안해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류 장관은 "인도적 문제를 놓고 기싸움하듯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여건이 갖춰졌다고 판단한 쪽에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가며 제안하는 것이지 누가 먼저냐는 중요치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대해 "형편이 허락하는 한 단시일 내에 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청문회나 국감을 통해) 말씀드렸고, 조만간 신임 대한적십자사 총재(유중근)를 만나 협의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회담, 南이 먼저 제안해도 나쁠 것 없다"
류 장관은 금강산 문제 해결에서도 '선 제의'를 할 수 있다면서 "남북관계의 여러 사항을 판단해서 그런 분위기가 된다면 우리가 먼저 제안해도 나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재산권 몰수‧동결과 현대아산의 독점권 보장 침해 행위 등의 '주체'가 북한이기 때문에 남측이 먼저 제안해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그는 금강산 문제와 관련해 "과거 일로 계속 시비하자는 것이 아니다. 납득되게 정리하면 된다"면서 "신변 안전을 보장하고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개를 위한 기업 간(현대와 북측 아태)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있다"며 "어느 정도 실무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당국 간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받아냈다고 알려진 '구두 약속'에 대해서는 "재산에 관한 것은 기업 간에 하지만, 국민 신변안전은 당국 간 보장해야 실효성이 있다"면서 "민간과 어떻게 신변안전을 보장하나. 당국으로부터 당국에게 보장을 해줘야 한다"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21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통일정책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간담회에는 천해성 대변인(류 장관 뒤편)을 비롯 통일부 당국자들도 함께 자리했다. ⓒ연합뉴스 |
한반도에 대화 기류 조성될까?
류 장관은 남북관계에 대해 "객관적 지표들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점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그렇게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류 장관의 이날 언급이 주목을 받는 것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최근 북한과 미국은 잇달아 접촉을 갖고 있다. 17~20일에는 남북한과 미국 3자 간에 민간 수준의 대화가 열렸다. 소위 '트랙 투'로 불리는 이 대화는 미국 조지아대에서 열렸으며 3자는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북측에서는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부위원장과 맹경일 아태 실장, 유엔(UN) 주재 북한대표부의 박철, 최일 참사관 등 남북관계를 담당해온 인물들이 참석했으며 남측에서는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과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 백낙청 서울대 교수 등이, 미국에서는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와 프랭크 자누지 상원 외교위 동아태 담당 정책국장, 잭 프리처드 한국경제연구소(KEI) 소장 등이 참석했다.
3국 민간 대표단은 6개 항으로 된 공동보도문에서 "3국은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고 다양한 사회정치적 체제와 서로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는 데 동의했다(1항)"며 "경제, 문화, 기술과 같은 영역에서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6항)"고 강조했다. 3자는 과거 서해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고(incident)"들을 볼 때 유사 상황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며 현재의 정전조약을 영구적‧포괄적‧지속적 평화체제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북한과 미국은 또 지난 18일부터 태국 방콕에서 진행된 북미간 회담을 통해 한국전쟁 기간 중 사망한 미군의 유해발굴 사업을 지난 2005년 중단된 이후 6년만에 재개하기로 했다고 미 국무부가 21일 밝혔다. 이어 오는 24~25일에는 북한 핵문제를 논의할 북미 간의 회담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다. 북한 측 대표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며 미국 측에서는 스티븐 보즈워스 현직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글렌 데이비스 차기 대표가 모두 참석한다.
"천안함 관련 남북합의,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이같이 대화 기류 조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상황이어서 '류우익 통일부'의 '유연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류 장관은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 온 '유연한 접근'의 의미에 대해 "일단은 비정치군사적인 부문에서 교류협력의 물꼬를 열어감으로써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5.24 조치로 중단됐던 개성 만월대 유적발굴과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문화의 동질성을 지키고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생각해서 접촉을 승인할 예정으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고위급 군사회담이나 장관급 회담 등 정치적 해법을 추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열린 태도를 보였다. 다만 그는 "환경이 마련되고 (대화) 채널이 구축되면 고위급 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지금 거기까지 가는 것은 성급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남북 간의 의견 일치를 볼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고 마주앉지도 않아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은 천안함 사건의 '범인'으로 북한을 지목했지만 북한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남측의 날조극'이라며 자신들의 소행이 아님을 강력히 주장해 왔다.
"다만 서두르지는 않을 것…5.24 조치는 못풀어"
다만 류 장관은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열거나 이산가족‧금강산 등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종일관 '여유'를 언급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다소 경직될 수도 있고 다소 생각이 달라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며 "국민께 주무장관으로 부탁드릴 것은 때로는 좀 참고 인내하고 희망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좀더 여유를 갖고 지켜보자"며 "내가 아는 대통령의 입장은 여유가 있다. 굳이 정상회담을 해야겠다고 집착하지 않고 안 하겠다고 배제하지도 않고 있다. (이는) 통일부가 가진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또 5.24 조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5.24 조치가 나오게 된 원인은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고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결자해지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원인을 제공한 측에서 거기에 대해서 책임 있는 조치를 하고 그런 일이 다시는 없겠다 약속을 해야 푸는 것이 맞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유연성 있는 접근'의 한계에 대해서 "5.24 규제의 핵심적 사안이 아닌 부분에 있어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있어서 예외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거나 "5.24 조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통일 의지를 내보이고 대화를 열어가는 노력을 한다는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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