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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이명박 정부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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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이명박 정부로부터 배운다

[이근 칼럼] 안철수 돌풍, 극우와 낡은 진보의 합작품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한동안 절필했던 필자에게 펜을 다시 들려주었다. 아직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았지만 이제 이명박 정부를 한 번 평가해야 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가 없다면 안철수 교수의 출마설에 대한 의미를 알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필자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개인적으로 인생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도 많은 교훈을 얻었지만, 그 동안 희미하게만 아른거리던 몇 가지 생각들을 확인하는 기회도 얻었다. 답답함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감사해야 할 듯하다.

필자의 전공이 국제정치학인 관계로, 국제정치 문제부터 시작해 본다. 국제정치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를 통해 확인한 가장 의미 있는 명제는 "남북관계가 활발할 때 대한민국의 외교도 활발하다'라는 주장이다. 거꾸로 표현한다면 "북한과 관련한 일들이 활발히 돌아가지 않으면 대한민국 외교는 특별한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외교가 한반도 문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비판은 오래된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그 사실을 아주 명확히 보여주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교해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지난 3년 반은 적극적 대북정책과 외교가 시야에서 사라진 시기였다. 일상적인 외교는 다자외교, 통상외교, 지역 및 기능적인 분야 등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돌아갔지만 홍보형 외교를 넘어 무언가 돌파구를 여는 적극적 외교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반인들에게 지금 외교통상부 장관이 누구고 차관이 누구며, 외교안보 수석이 누구인지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을 대지 못할 것이다. 또 남북관계는 천암함, 연평도 등 사건만 있었지 대북정책이 사라졌다. 한국의 외교부와 통일부는 몇 개의 돌출적 사건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조용한 부처가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가 가르쳐 준 두 번째 교훈은 권위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도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드는 의문은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권위주의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이는 민주주의일까 아니면 권위주의일까?"라는 질문이다. 제도적으로만 보면 민주주의이지만, 집권 세력의 정치 행위와 정치 문화로 볼 때는 권위주의일 것이다. 즉, 선거로 정권이 바뀌겠지만, 그 때까지는 권위주의 정부일 것이다.

필자는 권위주의에서 "권위"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정치학적으로 "권위"라는 용어의 정의는 명령을 내렸을 때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그냥 따라할 때 생겨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권위를 가장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곳은 군대다. 상관이 명령하면 바로 실시하는 관계가 권위의 관계다. 권위주의적인 회사의 조직도 위에서 "까라면 까야"하는 곳이다.

민주주의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집권 세력과 그 지지 세력이 일방적인 권위를 강조할 때 정치 문화는 권위주의적으로 바뀐다. '정부가 하자고 하는데 왜 자꾸 불평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항의를 하는가?'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지 말라. 꼬우면 니들도 권력을 잡으면 될 것 아닌가?' 등의 정치 행태가 바로 권위주의적인 통치 행태이다. 그들에게 반정부 세력, 비판 세력, 데모 및 시위 세력 등은 모두 "영창"에 가야 하는 세력들이다. 이러한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창조성이 발휘되기 어렵다. 저항의 영역에서 풍자와 비판의 창조성이 나올 수는 있지만 새로운 창조의 동력을 만들지는 못한다.

사실 권위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자동적으로 동일시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적인 합의와 토론, 설득의 문화 속에서 보수적인 가치를 가지고 경쟁하고 실천하는 세력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 세력이다. 즉, 보수적 가치로 판단해야지 권위주의적인 행태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런데 소위 대한민국에서 "자칭" 보수 세력이라는 사람들이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를 옹호하고, 집착하다 보니 "대한민국 보수 = 권위주의 세력"이라는 아주 비정상적인 등식이 성립되었다.

▲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함께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특강준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정부가 가르쳐 준 세 번째 교훈은 "자칭" 한국의 보수 세력이 스스로 권위주의 세력임을 보여주고 또 당당히 외치면서 극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현 야권의 상당수는 과거 집권기간 중 세계화에 흡수되면서 기득권화되어 버렸고, 동시에 창조성과 새로움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현 야권의 반정부적인 투쟁과 저항은 지금의 야권만 한 것이 아니라 현 집권 세력도 불과 몇 년 전까지 해왔다. 투쟁과 저항만이 "자칭" 한국 보수 세력의 대척점, 대안은 아니다. 이들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커다란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극우와 낡은 진보세력이 남겨 놓은 공간이다. 이 공간은 민주화와 민주주의 기간에 태어나서 자라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지성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이 점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소위 창조성과 새로움, 그리고 합리성을 강조하는 거대한 젊은 무당파 세력들이 아닐까. 이들은 정치제도의 중요성도 인정하지만 권위주의 문화를 겪으면서 정치 문화의 중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상당히 문화적인 세대이다.

안철수 교수의 정치적 등장은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교수의 멘토라고 하는 김제동과 김여진도, 그리고 윤여준과 박경철도 모두 이 커다란 빈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어쩌면 이들은 과거 유럽의 부르주아지가 당시 민주화를 추동했던 혁명적 진보세력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한국 현대사회의 "테크놀로주아지"가 아닐까?

문제는 이들이 명실상부한 정치 세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대중문화만으로 이들을 조직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안철수 교수라는 정치적으로 경험과 업적이 일천한 인물이 그것을 해 낼 수 있을까? 향후 몇 년간의 정치 일정은 이를 검증해 나가는 일정이 될 듯하다.

* 필자의 블로그 '멈추지 않는 정치'(http://blog.daum.net/pearroo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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