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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와 '닮은꼴' 페루 대선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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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와 '닮은꼴' 페루 대선의 의미는?

[월러스틴의 '논평'] 후지모리 딸의 패배는 미국의 좌절

페루의 현대 정치사는 많은 부분에서 한국 현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3선 개헌', '군사혁명정부', '비판적 지지' 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용어들은 페루에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다.

군사 쿠데타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밀어붙였다는 점이나, 유력한 대선 후보의 사망으로 야당이 구심점을 잃은 사례, 진보 성향의 정권인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내용은 신자유주의였다는 페루의 경험은 많은 한국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대선에서 좌파의 승리가 보수 우파 내의 분열로 이뤄졌다는 점, 보수세력 중의 일부가 좌파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하고 나섰다는 점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이다. 지정학적으로 봐도 페루는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과 신흥 강국 브라질 사이에 끼어 있다.

현재 페루는 미국 대(對) 브라질, 미국 대 중국의 힘겨루기의 교차점이 되고 있다고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는 지적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치러진 페루 대선의 국제적 의미는 무엇일까? 월러스틴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편집자>

우말라의 승리, 미국의 패배
(Humala's Triumph in Peru: America's Defeat)

지난달 5일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성향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당선됐다. 이 선거의 확실한 패배자는 미국이다. 로즈 린킨스 페루 주재 미국 대사는 2차 결선투표에서 우말라의 적수 케이코 후지모리 후보에 대한 지지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중남미에서 매우 중요했던 이번 선거에는 과연 무엇이 걸려 있었나?

페루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국토의 넓이, 잉카 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점, 아마존강의 발원지라는 위치, 태평양으로 열린 항구, 그리고 민족주의 세력과 친미 엘리트 간의 투쟁이 벌어졌던 최근의 역사 등이 그 이유다.

1924년 페루의 지성이며 맑스주의자였던(정통 맑시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단이긴 했지만) 빅토르 라울 아야데라토레는 범(汎)아메리카 반제국주의 조직인 '아메리카혁명인민동맹'(APRA)을 창설했다. APRA는 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페루에서 급격히 세를 불렸다.

APRA의 특징은 중남미의 다른 좌파 운동들과는 달리 페루 민중의 대다수인 소작농들에 대한 이해심 있는 태도였다. 페루의 소작농들은 토착어인 [잉카 제국의 언어] 케추아어(語)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고 정치적 참여와 문화적 권리로부터 배제돼 있었다.

1945년 이후 APRA는 급진성을 잃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1979년 사망한] 아야데라토레가 살아 있었다면 1980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을 것이다.

페루에서는 보수세력들이 1968년까지 정권을 독점해 왔다. 그러나 그해 유전 개발권과 관련된 스캔들은 민족주의 성향의 후안 벨라스코 알베라도 장군이 이끄는 군사 쿠데타의 불씨가 됐다. 민족주의 세력은 권력을 장악하고 '군사혁명정부'를 수립했다.

벨라스코 정부는 석유와 다른 여러 경제 영역을 국유화했다. 이들은 교육에 매우 많은 투자를 했다. 게다가 교육을 2가지 언어로 실시했고 이로 인해 케추아어도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 반열에 올랐다. 또 농지 개혁을 실시했으며 수입 대체(import-substitution) 전략에 입각한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수입 대체'란 외국에서 수입하던 재화를 국산화함으로써 산업 발전을 이루려는 전략. 주로 남미 국가들의 산업화 전략이었다.]

벨라스코 정부의 외교정책도 급격하게 좌편향으로 기울었다. 페루는 쿠바와 우호관계를 수립했고,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했다.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몰아내고 [1973년] 피노체트 군사 정부가 들어서자 페루와 칠레의 관계는 긴장됐다. 1975년 즈음에는 페루-칠레 전쟁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그 해에 군부 우파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벨라스코 정부를 무너뜨렸고 7년간의 민족주의 군사정부와 좌파적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은 종막을 맞았다.

APRA 지도자였던 알란 가르시아가 1985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는 즉시 외채에 대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하고 좌파의 전통을 되살렸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좌절을 맞았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새 정부는 우경화했다. 이 시기 페루에서는 몇 차례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안데스 산맥 지역에서 [원주민인] 아이마라족 소작농들을 기반으로 일어난 '센데로 루미노소'[농민혁명을 주장한 마오쩌둥(毛澤東)주의 성향의 무장단체. 스페인어로 '빛나는 길'이라는 뜻]의 봉기였다.

1990년 선거에서 가르시아는 유명한 소설가이며 주목받는 보수 사상가, 과두제주의자이기도 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맞붙는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바르가스 요사는 근본적인(pure)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 정책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도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일본계 이민자의 후손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가르시아, 바르가스 요사와의 3파전에서 승리했다. 후지모리의 득표는 바르가스 요사의 과두제적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반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강력한 독재자 타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센데로 루미노소와 도시 봉기를 진압하는 데 군을 투입했다. 또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망설임없이 의회를 폐쇄하고, 사법 재판에 개입했으며, '3선 개헌'을 해 임기를 연장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부패와 가혹한 통치는 결국 후지모리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그는 일본으로 도주했지만 궐석재판에 부쳐져 장기형을 선고받았다. [후지모리는 2005년 칠레에서 체포돼 2007년 페루로 압송됐고 페루 법원은 25년형을 최종 확정했다. 현재 그는 감옥에 있다] 하지만 후지모리의 뒤를 이은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계속했다.

그리고 2006년 다시 대통령에 도전한 알란 가르시아는 군 장교 출신인 오얀타 우말라와 맞붙었다. 우말라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공개 지지를 받았으나, 차베스의 지지는 오히려 우말라에게 해가 됐다. 또 군 장교 출신으로 인권 의식이 부족하다는 공격도 우말라에게 약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가르시아가 승리했고, 페루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계속 강화됐다. 광물과 에너지 수출 붐으로 페루 경제는 잘 돌아갔으나 국민 대부분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한 예로, 페루 정부는 아마존강 유역 일대의 광산 개발권을 다국적기업에 부여했고 이들이 토지를 수용하면서 현지인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이는 2009년 6월 [현지 주민과 페루군 50명 이상이 사망한]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바로 이 즈음부터 페루는 두 가지 지정학적 세력 다툼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하나는 미국과 브라질 간의 투쟁이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이끄는 브라질은 남미국가연합(UNASUR)이나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Mercosur)과 같은 지역 조직을 만들어 내며 남미의 [미국으로부터의] 자율권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왔다.

미국은 브라질의 프로그램에 대항해 왔다.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페루가 [지난 4월] 새로이 만든 태평양블록(Pacific Alliance)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를 기반으로 한다. 게다가 콜롬비아, 페루, 칠레는 [5월] 3개국 증권 시장을 통합한 '중남미통합시장(MILA)'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페루 군대는 이미 [중남미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사령부(SOUTHCOM)와 밀접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지정학적 투쟁은 중남미의 광물‧에너지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놓고 벌어진 미국과 중국 간의 싸움이다. 또다시 페루가 핵심적인 위치에 놓인 것이다.

▲ 지난달 23일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선 당선자가 수도 리마에서 대통령 당선증을 들어 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그는 이달 5일 선거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 케이코를 접전 끝에 물리쳤다. ⓒAP=연합뉴스

이번 페루 대선에서 우말라가 승리한 요인은 세 가지다. 첫째, 우말라는 공개적으로 브라질식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다. 그는 더 이상 차베스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대신, 룰라와 자주 만나 페루가 메르코수르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둘째, 바르가스 요사가 우말라를 보증한 것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보수적 귀족주의자인데도, [이번 대선에서 우말라와 맞붙은] 케이코 후지모리가 당선된다면 감옥에 갇힌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를 사면하고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면서 이는 페루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페루 보수 세력 내에 심각한 분열을 일으켰다.

셋째, 페루 좌파들의 태도였다. 페루 좌파들은 오랫동안 우말라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왔다. 하지만 페루 좌파의 지도적 지식인인 오스카 우가텍 멕시코자치대학 교수는 남미 언론 <알라이-암라티나>에 "우리 모두는 우말라에게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확실히 아니다"라고 썼다.

우가텍 교수는 이번 선거에 대해 "가장 확실한 것은 페루가 남미로 돌아왔다는 것"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했다. 우말라 당선자가 국민 대다수인 원주민의 권리 회복 문제나 분배 문제에서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UNASUR나 메르코수르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역공세인 '태평양 블록'은 [우말라의 페루가 빠지면서]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7월 1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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