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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빈 라덴의 입' 두려워 사살했나?"

세 차례 인터뷰한 기자 "파키스탄이 배신한 건 빈 라덴"

2일 사망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종종 빠지는 부분이 있다. 빈 라덴이 1980년대 미국과 밀월관계였다는 사실이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건 누락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78년 아프간으로 갔다. 냉전 시절이던 당시 미국은 소련의 중동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빈 라덴 같은 사람들을 지원했다. 그가 불러 모은 '자유의 전사'들에게 무기를 공급한 것은 미 중앙정보국(CIA)이었다. 빈 라덴이 알카에다를 만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세월이 흘러 빈 라덴은 1991년 걸프 전쟁을 기점으로 반미의 전사가 됐다. 그러나 알카에다가 손에 쥔 무기의 일부는 여전히 미국산이었다. 미국이 준 총을 미국을 향해 겨눈 것이다. 한 때의 동지를 적으로 돌려놓는 미국의 역사가 '빈 라덴'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과거 미국은 나치와 싸우기 위해 소비에트와 손잡았지만 소비에트가 나중에 적이 됐다. 이란의 호메이니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손잡았지만 그 역시도 적이 됐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그는 3일자 칼럼(☞원문보기)에서 미군이 빈 라덴을 사살해 버린 것은 혹시 그가 CIA와의 과거를 입에 올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냐고 따져 물었다.

로버트 피스크는 최근 뜨거운 중동 변혁이라는 역사적 물결에 비한다면 빈 라덴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빈 라덴의 죽음이 이슬람주의자들의 보복 공격을 불러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피스크의 시각으로 보자면,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써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실리와 명분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

아울러 피스크는 파키스탄 정부가 빈 라덴의 은신처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파키스탄에 매년 수십억 달러의 군사 지원을 하는 미국은 파키스탄에 배신을 당한 것이지만, 파키스탄이 빈 라덴의 위치를 미국에 밀고했다면 그 역시 파키스탄에 배신을 당한 것이라고 봤다.

빈 라덴을 세 차례나 인터뷰한 로버트 피스크의 칼럼은 이처럼 아이러니와 이중성으로 점철된 이슬람권과 미국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그의 칼럼을 번역한 것이다. <편집자>


▲ 199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된 빈 라덴의 사진 ⓒAP=연합뉴스

배신당한 빈 라덴…파키스탄은 알고 있었다

중년의 보잘것없는 사람. 수백만의 아랍 민중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그 역사의 물결에 추월당한 정치적 실패자. 오사마 빈 라덴이 1일 파키스탄에서 사망했다. 세계는 열광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그의 출생증명서 사본을 우리에게 건네준 직후, 한밤중에 나타나 빈 라덴의 사망증명서를 생방송 연설로 전해주었다. 빈 라덴은 과거 대영제국 소령(major)의 이름을 따 명명된 도시(아보타바드)에서 죽었으며, 머리에 한 발의 총알을 맞았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시신은 몰래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져 비밀리에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테러의 성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라고는 하나, 수상하고 오싹한 시신 처리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빈 라덴 자신과 그가 만든 조직만큼이나 오싹하다.

미국인들은 축배의 잔을 비우고 만취했다.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는 "큰 진전"이라고 평했고 인도 정부는 "승리의 이정표"라고 묘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완벽한 승리"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9.11 테러에서 3000명의 미국인이 죽은 후,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중동에서 죽었다. 빈 라덴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지난 10년 동안 50만 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었다. 이제 더는 그런 '완벽한 승리'가 없기를 기도할 뿐이다.

보복 공격의 가능성? 아마도 있을 것이다. 서방에서, 알카에다와 직접 관련이 없는 소집단들에 의해 가해질 것이다. 이미 누군가는 '오사마 빈 라덴 순교 여단'을 꿈꾸고 있을 것이 확실하며, 아마도 아프간의 탈레반 세력 중에서 그런 인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난 4개월 간 아랍 세계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혁명은 알카에다가 이미 정치적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 라덴은 이집트의 무바라크와 튀니지의 벤 알리 독재정권 같이 아랍권의 친(親) 서방 정권을 파괴하고 싶다고 세계에 말했다. 나한테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빈 라덴은 새로운 이슬람 왕국(Caliphate)을 세우기를 원했다.

지난 수 개월 동안 수백만의 아랍 무슬림들이 봉기했고 '순교자'가 되었지만, 이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지 이슬람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빈 라덴은 폭군을 몰아내지 못했지만 민중들은 해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슬람 군주'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필자는 빈 라덴을 세 차례 만났지만 한 가지 질문만은 던지지 못했다. 올해 전개된 시민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 혁명은 이슬람교의 이름이 아니라 국기(國旗) 아래 진행됐고,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과 손을 잡았다.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학살하곤 했던 그 기독교인들 말이다.

빈 라덴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성취는 알카에다의 창립이었다. 이 조직에는 정식 멤버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알카에다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알카에다다. 빈 라덴은 그런 조직을 만든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실제로 싸우는 전사였던 적이 없다. 그의 은신처인 동굴에 원거리에서 폭탄을 떠뜨리기 위한 전화나 컴퓨터가 없었다.

아랍 독재자들은 서방의 지원 하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미국의 정책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직 빈 라덴만이 비난했다. 아랍인들은 절대 고층빌딩으로 비행기를 몰아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빈 라덴을 존경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미국을 비난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더 이상 빈 라덴은 필요치 않다. 빈 라덴은 하잘것 없는 인물이 돼버렸다.

하지만 '동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빈 라덴의 사살은 파키스탄에 대한 엄청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몇 달 간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의 동굴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의 맨션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신당했나? 배신당한 건 빈 라덴이다. 파키스탄 군과 정보기관 중 누가 배신한 건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파키스탄은 빈 라덴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아보타바드는 단지 파키스탄 사관학교 소재지일 뿐 아니라, 파키스탄 북부군 제2사단의 주둔지다. '아보타바드'라는 명칭은 1853년 제임스 아보트 영국군 소령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약 1년 전, 또 다른 '1급 수배자' 중 한 사람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를 파키스탄 라호르시(市)에서 만났다. 정복을 입고 기관총을 든 경찰관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는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테러조직의 리더였다.

물론 또 하나의 질문이 있지만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다. 빈 라덴을 생포할 수는 없었을까? 미 중앙정보국(CIA)이나 해군특전지원단(Navy SEAL), 특수부대 등 빈 라덴을 사살한 미군은 호랑이를 산 채로 잡을 방법이 없었던 말인가?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의 죽음을 "정의"라고 불렀다. 과거에는 '정의'란 절차에 따라 재판을 열고, 기소하고, 변론을 듣고, 판결을 내리는 것을 의미했다. 빈 라덴은 사담 후세인의 아들들처럼 총을 맞고 사살됐다. 물론 그는 산 채로 잡히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죽은 방에는 유혈이 낭자했다.

만약 빈 라덴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면 그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對) 소련 항쟁 기간에 CIA와 가진 접촉에 대해 말할지도 모른다. 또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기관의 수장인 사우디 왕자와의 호의적인 만남에 대해 입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사담 후세인 역시 '입을 열기' 전에 [시아파 마을인 두자일에서] 153명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신속하게] 교수형에 처해졌다. 수천 명의 쿠르드인을 화학무기로 학살한 것 때문에 재판을 받은 게 아니었다. 후세인에게는 크르드인을 학살한 화학무기가 미국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이나,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과의 친분, 1980년 이란 침공 당시 미국으로부터 받은 군사 원조에 대해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빈 라덴이 반인도적 범죄자이자 '1급 수배자'가 된 것은 9.11 테러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1998년] 아프리카 내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들에 대한 폭탄 테러와 [96년 사우디에 있는] 다란 미군기지에 대한 공격 때문에 수배됐다.

그는 언제나 크루즈 미사일의 공격을 기다렸다. 필자가 그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는 2001년 토라 보라의 동굴에서도 죽음을 기다렸지만, 그의 경호원들이 그가 전투에 가담하지 못하게 하고 그를 파키스탄 산악지대로 피신하도록 강권했다. 그는 한때 파키스탄 카라치에도 있었다. 그는 카라치에 매료됐다. 그는 기묘하게도 이 도시의 벽에 그려진 자신을 지지하는 담벼락 낙서, 즉 그라피티를 찍은 사진을 필자에게 주었으며, 카라치의 종교 지도자를 추켜세웠다.

빈 라덴과 다른 무슬림들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필자가 그를 아프간에서 만났을 때, 처음에 그는 탈레반을 두려워했다. 필자가 그의 훈련 캠프로부터 [탈레반의 근거지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잘랄라바드로 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다음날 그는 필자의 경호를 위해 알카에다 간부를 붙여주었다.

빈 라덴의 추종자들은 시아파 무슬림들을 '이단'이라며 증오했고, 모든 독재자들을 '믿음이 없다'고 싫어했다. 하지만 빈 라덴은 미국의 이라크 지배에 반대해 [후세인 지지자들인] 구(舊) 바트당 세력과의 협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빈 라덴은 녹음테이프에도 이같은 메시지를 담았지만 CIA는 이를 무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칭찬한 적이 없으며, 그들의 '성스러운 전사'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에도 인색했다.

필자는 2001년 이후에도 빈 라덴과 간접적인 연락선을 가까스로 가지고 있었고, 한번은 파키스탄 내의 비밀스런 장소에서 그의 신뢰를 받는 알카에다 관계자와 만난 적도 있다. 당시 [필자는 관계자에게] 12개의 질문을 건넸다. 첫번째 질문이 또렷이 기억난다. "빈 라덴의 행동이 두 무슬림 국가에 대한 미국의 점령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그는 '승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몇 주 동안 답이 없었다. 그러다 어떤 주말에,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강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알자지라>에서 방송된 새로운 녹음테이프를 들었다. 빈 라덴은 필자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2개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했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나는 미국인들이 아랍으로 오기를 바란다. 내가 그들을 박살낼 수 있도록"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대니얼 펄이 납치됐을 때 필자는 빈 라덴에게 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장문의 글을 <인디펜던트>에 썼다. 펄과 그의 아내는 필자가 2001년 아프간 국경지대에서 다쳤을 때 나를 돌봐줬다. 후에 빈 라덴은 내 기사를 읽으며 슬퍼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펄이 참수된 후였다.

빈 라덴의 망상은 그의 가족들마저 다치게 했다. 한 명의 아내는 그를 떠났고, 두 명의 아내는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필자는 1994년 빈 라덴과 그의 아들 오마르를 아프간에서 만났다. 오마르는 잘 생긴 꼬마였고, 행복하냐는 질문에 '예스'(yes)라고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나 오마르는 지난해 <빈 라덴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펴냈고, 아버지가 자신이 사랑하는 개를 화학무기로 죽였다면서 그를 "악한"이라고 묘사했다. 오마르는 필자와의 만남도 기억하고 있었으며, 당시 행복하냐는 질문에 "노"(no)라고 답했어야 한다고 책에서 말했다.

1일 낮, 아랍인들로부터 걸려온 세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미군에 의해 사살된 것은 빈 라덴의 대역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많은 이라크인들은 후세인이 죽지 않았으며, 그의 아들도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 적절한 때에 알카에다가 답을 줄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틀렸고 그날 실제로 죽은 것이 대역이었다면, 진짜 빈 라덴은 새로운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올 것이고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서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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