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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학史 노력 없으면 남북 문학은 서로에게 '외국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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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학史 노력 없으면 남북 문학은 서로에게 '외국 문학'"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가 말하는 '문학과 국가'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5일 "대한민국 건국 이후 남한 학자들이 북한 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남북이 국가를 형성한 이후 각각의 문학은 서로에게 외국 문학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 '분단된 조국, 나의 삶과 우리 문학'에서 "북한 문학은 한글로 돼 있지만 영문학과 다를 바 없이 외국 문학으로서 연구하는 것"이라며 "북한은 같은 동포이긴 하지만 같은 민족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족의 제일 중요한 개념은 경제"라면서 현재 남북이 전혀 다른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문학의 토대가 되는 '구체적 삶의 체험'이 전혀 달라졌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이 점 때문에 "통일문학사론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으면서도 그는 분단 이전까지의 역사에서 공유된 체험적 이해의 지평을 넓혀 '준(準) 통일문학사론'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준통일문학사는 분단 문학의 극복"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문학에 공통으로 드리운 '국가'의 그림자

▲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김 교수는 분단 시대 및 그 이전의 문학을 '한국 근대문학'으로 보면서, 근대문학이란 "이 시대, 즉 근대가 인간을 어떻게 비틀고 괴롭히고 성숙케 했는가를 문학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대문학은 근대국가라는 배경과 결합돼 있다며, 한국의 근대문학은 1919년 4월 수립된 임시정부(임정)와 함께 시작했다고 보았다.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과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결합됐을 때 근대가 '합의된다'고 전제한 그는 "사랑이나 자의식 같은 것은 신라 시대에도 있었다"며, 그냥 '한국 문학'이라면 몰라도 '한국 근대문학'은 국가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는 임정의 영향력이 미약했다 해도 중요한 것은 임정이 수행한 상징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임정은 헌법도 가지고 있고 국가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면서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밝힌 것처럼 어차피 국가 또는 민족이란 상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근대문학이 '국어'로 쓰여졌다는 점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그는 "국어는 국가가 정하는 것"이라며 당시 한반도 안에서는 임정을 대신해 조선어학회가 맞춤법을 제정하는 등 이 부분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의 근대 만들기

근대문학이 국가와 긴밀히 형성돼 있었던 것은, 문학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국가 형성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주어져 있었던 배경과 무관치 않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의 문학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내재적인 미학보다는 당시의 숙제가 '나라 찾기'였기 때문인 것처럼, 문학 역시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

8.15 해방으로 '나라 찾기'라는 목적이 달성된 후의 평가 기준은 '나라 만들기'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오갔던 해방 이후 3년에 주목한다. 당시 한반도에는 △부르주아 단독 독재형 국가, △노동자 단독 독재형 국가, △인민연대(인민전선전술)에 기반한 연합독재형 국가라는 3가지 선택지가 주어져 있었는데 남북한이 각각 첫째와 둘째를 선택하고 셋째를 주장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남북 모두에서 배척당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분단이 시작됐고, 상이한 국가체계를 갖게 된 남북의 근대문학도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분단은 됐을지언정 남북 모두의 학계에 주어진 과제는 동일했다. '나라 찾기', '나라 만들기'에 이은 다음의 과제는 식민사관의 극복이었다며 "당시 학자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연구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에 힘입어 근대의 두 요소인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남북한은 각각 학문적 체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서 북한은 18세기 후반 광산 경영이 근대적 자본재 생산양식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고, 남한에서도 규장각 양안(量案)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형 부농의 존재를 밝혀내 이들이 자본주의의 맹아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1950~60년대 출생 세대에 대해 "국가가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태어난 이유까지 밝혀 준 세대"라며 "이는 우리 세대가 이후 세대에게 한 '짓'이지만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이 단일민족이고 단군의 후손이며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아니지만 자신들 세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스스로 "나는 4.19 세대도 아닌 전후(戰後) 세대"라고 밝힌 김 교수는 1936년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통일문학은 불가능하지만…


이런 역사를 고려할 때, 분단 이전까지의 문학은 남북 모두에 공유된 경험이지만 이후에는 서로에게 외국 문학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의 문학사를 통합하려는 시도의 많은 경우는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발전해 온 각자의 문학사를 단순히 더한 '병행' 문학사라고 보았다.

다만 그는 1920년대 카프(KAPF :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와 민족주의 문학의 대립이라는 모순이 나타났고, 해방공간에서도 좌우익 간의 대립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같은 공동의 경험이 통일문학사 수립에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외에도 빨치산 문학,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들, 역사소설 등을 남북 문학사의 통일을 가능케 할 근거로 보았다. 또한 이들을 포함한 20세기 전체의 근대 민족문학에는 국민국가로의 지향성이 내면화돼 있다며, 국민국가의 의미가 축소되고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표현된다면 그 역시 통일문학사론 수립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내다봤다.

그는 "(남북의 문학사를) 통일하려면, 아니 준통일문학사 정도라도 되려면 남북 학자들이 수시로 모여 토론하고 조정해야 한다"며 "그래야 (각각의 문학이) 서로 접근할 수 있으며, 그게 안 되면 병행 문학, 외국 문학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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