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내가 대북 강경책 해봐서 아는데…" 부시 조언 절실한 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내가 대북 강경책 해봐서 아는데…" 부시 조언 절실한 때

[한반도 브리핑] '역주행' MB 정부 알고보니 '대리운전'

고르바초프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지중해 연안의 몰타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한지 올해로 22년째다. 베를린 장벽이 내려앉았고, 전체주의와 독재로 변질된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반세기 동안 세계를 군사적 긴장으로 몰아갔고, 서구 식민지에 벗어나려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수많은 국가들에 이념 싸움을 강요함으로써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국가 건설을 좌절시킨 엄청난 역사적 과오에 대해 소련만 책임질 일은 결코 아니었지만, 아무튼 패자는 말이 없었고, 승자 미국은 새로운 시대의 무대와 이득을 독식했다. 그래도 세계는 적어도 냉전 붕괴가 가져다 줄 평화에 대한 기대로 이런 부조리를 눈감아 주었다.

그런데 오늘날 과연 우리는 기대했던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1990년대 초부터 계속된 수많은 지역 및 인종 분쟁이 지금도 여전하고, 연간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고의 군사비가 지출되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승자 미국은 그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돈을 퍼부으며 두 개의 전쟁을 수년이 넘도록 벌이고 있다.

사실 한반도에는 냉전이 사라진 적도 없고, 탈냉전의 막이 오를 때부터 소외된 지역이었다. 유럽에서 불었던 급격한 변화의 바람은 동북아까지 오면서 미풍으로 바뀌어버렸다. 미풍에라도 기대어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하고 북·미 역시 상당한 수준의 접근을 이루며 평화의 가능성을 보였던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냉전의 굴레를 못 벗어나고 있다.

작년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 긴장이 최고조로 달아올라, 비극적 전쟁을 겪은 지 60년 만에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와버렸다. 그야말로 역사에 대한 역주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체제의 존재와 도발이 '역사 역주행'의 주요 원인인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냉전의 기원이 단지 소련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듯이, 현재의 긴장 구도에 대한 책임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남한을 포함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모두 일정 부분 지고 있다. 또한 해결과 관련된 책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유턴'(U-turn)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이들에게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러한 한반도의 분열 구도가 이롭다는 판단으로, 아니면 적어도 현 질서의 변경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회피하려고 한반도의 냉전 구조에 끊임없이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오마마 대신 운전대 잡은 MB

문제의 중심에는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의 영변 핵시설을 촬영한 이후 22년을 끌어온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놓여 있다. 북핵 문제는 세계적 냉전 구조의 붕괴 속에서도 한반도 냉전 지속의 상징이자 핵심 축이 되어왔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그 동력으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지만, 북·미 양자 해법이었던 제네바 체제 8년과 다자 해법의 6자회담 체제 8년도 일단 실패했다. 북한은 이미 실질적인 핵 보유국이 되었고, 이제 대량 보유와 확산을 우려하는 지경까지 왔다. 현재는 미국도 한국도 손을 놓고 있으며, 유엔 제재 역시 북·중 협력으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부시 행정부가 망가뜨린 북미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2년 남짓 보여준 것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허울만 좋을 뿐 거의 무대책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출범 초부터 대북 강경책에 집착한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양상이다.

'비핵·개방·3000'을 비롯해 북한에 기회를 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도발이었기에 대북 강경책으로 전환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앞뒤가 바뀐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식 정권교체론과 더불어 선(先)핵폐기론을 초지일관 답습하고 있다. 국내정치에서 대북 담론이 가지는 중요성을 의식해 북한과의 대화의 문이 열려있는 것처럼 포장했을 뿐이다.

출범 직후 통일부 폐지 시도부터 지난 3년간의 대북정책의 근간은 북한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단절하고 봉쇄하는 것이었다. 북한의 전적인 개과천선과 급변사태 사이에는 어떤 옵션도 '플랜 B'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전자보다는 후자를 기대하고 있지만, 후자 역시 현실화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는 김영삼 정부 당시 유행했던 흡수통일론의 재판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도 북한은 곧 붕괴될 것으로 판단했지만 이후 20년 가까이 흘렀다.

아무튼 미국이 대북정책의 부재를 아웃소싱으로 메워가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운전석에 앉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양상이 상당 기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운전대를 잡긴 했지만 역주행이라는 것이다. 역주행의 결말은 앞에서 말한 이루어지기 어려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냉전적 대결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또 다른 도발에 대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고, 재차 도발이 감행되었을 때는 단호하게 응징함으로써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최소한의 목표일 뿐, 우리가 지향하는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재발을 막는 방법은 불안한 냉전 구조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건설하는 것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대결 구조를 방치 또는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난방 잘되는 지하벙커에서 가죽잠바를 입는 것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이미지 전략만 있고, 실질적인 안보 관리에 있어서도 사실은 낙제다.

뒤틀린 진실, 그러나 차가운 현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역주행인데다가 대리운전이다. 필자는 북한 핵문제가 우리의 문제이지만 북·미 양자가 먼저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이는 명분과 이상의 측면에서 뒤틀린 진실이지만, 또한 차가운 현실이다. 시작부터 북한의 생존권 보장과 핵무기 비확산의 맞교환이 논의의 중심이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들이 아무리 무모하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결과적 진실은 그들이 미국을 대상으로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미가 매듭을 풀지 않으면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기에 현재 남한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착시현상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이후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발언권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도 대화의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으며, 꿈쩍도 하지 않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이 서서히 변화를 모색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의 재개 필요에 대한 공감을 피력했으며, 최근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3월 식량 분배 모니터링 문제로 중단되었던 대북 쌀 지원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측의 사과를 쌀 지원과 굳건하게 연계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한국이 얼마나 오랫동안 미국과 다른 자세를 견지할 수 있을지 주목해볼만 하다.

▲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청와대

부시의 마지막 2년을 돌아보라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과 대리운전이 길어지면서 한국의 동북아 외교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고 있다. 친미와 대북 강경책에 집착함으로써 우리가 피해자이거나 적어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던 사건들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대척점에 서게 만들었다.

한중관계를 수교이후 최악으로 몰아갔으며, 러시아 역시 북한 편을 들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냉전붕괴 이후 동북아에서 잃어버린 외교 지분을 회복할 여건까지 마련해주었다. 더욱이 대북위협을 강조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하다보니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는 상대적으로 침묵했으며, 그 결과 북-중-러 3국과 한-미-일 3국의 냉전 구조 재현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는 내심 대북정책에 있어서 '끝까지 원칙은 지킨 정부'라는 후세의 평가라도 받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역주행이라도 일관성만 확보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실용정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4대강 개발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해도 대선 공약이라고 끝까지 지키면서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공약은 쉽게 던져 버렸다. 비슷하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조건적으로 하겠다는 선거 공약도 이러한 역주행의 일관성 앞에 사라져버렸다.

혹시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내가 해봐서 아는 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북한과 대화를 해봤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권고하고 싶다. 앞으로 레임덕 논란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대북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통해 돌파해보라고 말이다.

레임덕 극복에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평가가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을 악의 축이나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하며 적대시하던 부시 정권조차 6년간의 대치를 풀고 마지막 2년을 협상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에게 전화라도 걸어 '내가 (강경책) 해봐서 아는데 소용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해줄 수는 없을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