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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동안 준비된 이집트 혁명, 그것은 아랍판 프랑스 혁명"

서정민 "이슬람 공포증이 본질 흐려…한국에도 영향"

튀니지 혁명의 불씨에서 옮겨붙은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불길은 아랍권 전역에서 '들불'로 번져 장기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됐다.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언급됐다. 지난해 한국에서 수입한 원유 중 30% 이상이 사우디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랍의 민주화 열풍은 한국에게도 남 일이 아닌 셈이다.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17일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에서 가진 강연에서 범아랍권에 걸쳐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사우디도 중장기적으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며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매기는 국가위험지수에서 사우디가 중간 이상의 상당히 높은 위험도를 가진 국가로 분류됐다며, '오일머니'로 많은 부를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1인당 국민소득(GNI)이 1만7000달러 정도로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사우디 정부가 재정 적자 상태를 겪으면서 복지 혜택을 줄였다는 점도 불안 요인으로 보았다.

다만 서 교수는 "이집트 다음은 예멘이 될 것"이라며 걸프 산유국들의 변화 속도는 다소 느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비아, 시리아 등은 비교적 안정돼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서 교수의 분석에서는 사우디, 예멘 등 친미 성향의 정권이 들어선 국가들을 불안하게 본 점이 눈길을 끈다. 일부 언론 및 전문가들이 이란, 리비아, 시리아와 같은 미국의 '골칫거리'들을 주목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서 교수는 '이집트 혁명'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며, 이로 인해 아랍권의 민주화 시위가 장기화돼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 지역 문제는) 국익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도 매우 중요하다"며 "(원유 수급 및 무역 문제로 인해) 우리도 생활고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 교수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의미를 "아랍의 프랑스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집트 혁명은 100년 전부터 진행돼 온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토론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며 "아랍의 남성중심 가부장적 인식체계를 상당 부분 바꾼 혁명"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혁명의 동인으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과 함께 무바라크의 '부자세습' 시도, 무바라크 정권 내부의 갈등을 꼽았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 한 것은 시민들의 분노를 샀을 뿐 아니라 군부가 그에게 등을 돌리게 한 결정적 패착이었다는 것이다.

또 가말 압달 나세르 전 대통령이 1952년 군사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이래 이집트 군사 정부의 핵심은 육군이었지만 무바라크는 공군 출신이어서 군 내에서도 그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서 교수는 설명했다.

향후 이집트의 정국과 관련해 서 교수는 "현재로서는 군부의 재집권 가능성이 가장 크다"며 군부 출신 인물이 민간인 신분으로 대선에 출마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군부 내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부상한 신진세력과 구세력 간의 갈등 가능성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집트 군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민주화 세력과 '줄다리기'를 벌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 교수는 무슬림형제단의 집권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란의 시아파 이슬람교는 비교적 정치적인 특성을 갖는 반면 이집트의 수니파는 비정치적이라며 "이슬람교가 창시된 이래 천 년이 지났지만 수니파가 정치권력을 잡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 혁명이 이슬람혁명화(化) 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며 "이는 서방의 이슬람 공포증에 사로잡힌 학자들이 내놓은 분석"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이집트 사태로 인해 중동전략 전체를 재조정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서 교수는 "미국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며 중동 지방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재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서 교수의 강연을 주제별로 재구성했다.

▲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프레시안(곽재훈)

■ 이집트 혁명은 '아랍판 프랑스 혁명'

이집트 혁명은 '아랍 판(版) 프랑스 대혁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은 단지 기득권·독재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국내적인 투쟁을 넘어서는 포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집트 혁명은 지금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며, 100년 전부터 민주주의의 가치를 놓고 논쟁이 진행돼 왔던 것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집트 혁명을 프랑스 혁명에 비길 수 있는 이유는 아랍인들의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를 상당 부분 바꿨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아랍 세계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5년 동안 계속되면서 전 유럽을 바꿨고 아직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과 같다.

이집트 고대 왕조 이래로 5000년 동안 아랍에서는 시민혁명이 단 한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랍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랍에는 유목민 문화의 전통이 있다. 유목민들은 거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호전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물리력, 무력을 중시한다.

예를 들면 21세기에도 반정부 시위가 무장 봉기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슬람교의 폭력성' 때문이라지만, 아랍의 문화적 배경 자체가 그렇다. 이 때문에 힘을 가진 자의 통치가 장기화될 수 있다. 중동 지방의 정부가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죽어야 바뀌는 정권'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인식체계가 이집트와 튀니지의 사례로 인해 바뀌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아랍인들의 심적 자세를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권위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 붕괴된 것이며 이는 곧 아랍권 전체로 확산될 것이다. 나아가서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모델을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 혁명을 가능케 한 세 가지 : SNS, 부자 세습, 정권 내 갈등

이집트 혁명이 '혁명의 모델'인 까닭은 SNS와 뉴미디어가 동원된 혁명의 효시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및 튀니지 혁명의 특징 중 하나는 '리더가 없는 혁명'이라는 것이다. SNS는 독재정권의 정보 통제를 무색하게 했다. 장기 독재와 부패, 빈곤과 생활고로 인한 불만 등은 10년,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현재로서는 SNS의 역할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더딘 경제발전과 불공정한 분배, 높은 실업률에 대해 수십 년간 불만이 누적돼 온 것은 사실이다. 이 불만이 최근의 식량, 에너지 가격의 폭등과 정부의 긴축 정책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대통령 일가 등 기득권층의 부패도 국민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국민들의 가장 큰 분노를 샀던 부분은 무바라크의 정권 세습 시도다.

무바라크의 결정적인 패착은 아들 가말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 한 것이었다. 지난 2004년 대통령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처음 드러냈을 때 나타난 '키파야'('이제 그만', '됐다'라는 뜻의 아랍어) 운동은 이번 혁명의 전조였다. 군부도 세습에는 등을 돌렸다.

무바라크 자신이 군 출신이지만 군 내에는 그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었다. 무바라크는 공군 출신인데, 48만 이집트 정규군 중 43만이 육군이며 나세르 군사혁명의 주체도 육군이었다. 이 때문에 무바라크가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는 1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실제로 군은 시위대에게 총알 한 발 쏘지 않았다.

반면 경찰 소속의 보안군은 앞장서서 시위대를 진압했다. 경찰은 이번 시위에서만이 아니라 무바라크의 권력을 비호하고 철권 통치를 가능하게 해 준 집단이었다. 무바라크는 자신이 공군 출신이라는 한계 때문에 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자 경찰력을 많이 늘렸다. 정복 경관이 40~60만 명이며 사복경찰도 이와 유사한 규모로, 무바라크 집권 이전보다 3배나 늘었다. 경찰은 무바라크에게 과잉 충성을 보이며 군이 가진 특권을 자신들이 가져오려고 했다. 이것도 군이 반정부 시위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 앞으로의 전망 : 이집트 안

지금 이집트에서는 군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안에도 구(舊) 세력과 신진세력이 있다. 무바라크에서 가말로의 부자 세습에 반대한 기존의 육군 중심 세력이 구세력이며, 세습도 용인할 수 있다는 쪽이 신진세력이다. 구세력의 대표는 사미 에난 합참의장이고 신진세력의 대표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다. 향후 정국에서 두 사람 간의 알력이 벌어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현재로서는 대선을 통해 군부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최고군사위원회는 헌정을 중단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6개월 내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하는 등 시위대의 요구를 거의 받아들였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민간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술레이만 부통령이나 모하메드 탄타위 국방장관은 퇴역 장성으로 현재 민간인 신분이다. 이들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당선도 유력하다.

군에 대한 이집트 국민들의 인식이 우호적인 것도 군부의 재집권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52년 나세르 전 대통령의 군사혁명은 제3세계에서 흔히 보이는 군사 쿠데타와는 성격이 달랐다. 나세르는 왕정을 폐지하고 이집트에 주둔하고 있었던 영국군을 몰아냈다. 당시 이집트 왕조는 과거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보냈던 총독의 후손으로 알바니아계였다.

즉 나세르의 군사혁명은 외세의 통치를 뒤엎은 민족주의적인 혁명이었다. 그래서 독재정치를 했는데도 나세르의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이집트 국민들은 지금도 군부를 '디라'('방패'라는 뜻의 아랍어)라고 부른다. 외세로부터 국민을 지켜주는 방패라는 것이다. 군도 여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이것이 시위 진압에 직접 나서지 않은 배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군부가 포괄적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뜻을 전적으로 수용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무바라크의 통치 기간은 30년이었지만 나세르부터 시작된 군부의 통치는 60년이나 지속됐고, 군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대의 수혜집단이었다. 전면적인 개혁이란 이들이 기득권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군부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시위 과정에서 나타난 개혁 요구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으려 '줄다리기'를 벌일 것이다.

한편 민간인 출신으로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는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이다. 무사 총장은 1991년부터 10년 간 외무장관을 지내다가 2001년 무바라크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반(反)무바라크 정서를 가진 국민들에게 호소력 있는 인물이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오랜 해외생활과 이중 국적 등으로 인해 뒤로 처지고 있다.

■ 앞으로의 전망 : 이집트 밖

▲ 서정민 교수 ⓒ프레시안(곽재훈)
'이집트 다음은 어디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은데, 예멘이 유력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국가위험지수를 발표한다. 아랍권에서는 튀니지와 이집트를 제외하고는 예멘이 가장 불안정한 국가로 꼽혔다. 정부의 정통성이 약한 것이 원인이다. 아랍권에서 그 다음으로 위험도가 높은 나라는 알제리이며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간 이상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사우디도 중장기적으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며 결국 무너질 것이다. 사우디는 '오일 머니'로 돈을 많이 번 나라지만 현재 1인당 국민 소득은 1만7000달러 정도로 한국보다 낮다. 저유가가 지속될 때 인구가 2600만 명까지 늘면서 국가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자 사우디 정부는 국민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였다. 그러자 테러가 발생했다.

또 리비아나 시리아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이들 두 나라는 비교적 안정돼 있으며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은 편이라 변화가 있더라도 비교적 늦게 발생할 것이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42년째 통치 중이지만 '오일 머니'로 지난날 미국의 경제봉쇄도 버텨냈다. 또 SNS 등 정보 네트워크가 열악한데 이 점은 시리아도 마찬가지다. 시리아는 중동에서는 드물게 식량 자급이 가능한 나라로 잠재력이 크다.


■ 미국 등 주변국의 반응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일으키면서 중동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이 충분히 강하다고 판단했지만 이번 튀니지와 이집트 사태를 지켜보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미국의 입장이 달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새로운 중동 전략의 틀을 짜야 하는 상황이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이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은 군사력 외에 SNS가 있다. 이집트에서 무바라크를 버리기로 결심했을 때 미국은 인터넷 등 통신수단에 대한 정부의 차단을 해제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현재 이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미국은 이란에 SNS를 마구 집어넣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통신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 사우디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다면 미국이 이란이나 이집트에서처럼 SNS를 허용하라고 요구하거나 시위대를 도와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사우디가 무너지면 유가 상승 등의 압력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중 잣대'는 계속될 것이다.

이스라엘도 이번 사태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집트가 가자 지구의 봉쇄를 풀게 되면 부담이 더 커진다. 터키의 압둘라 굴 대통령이 최근 이란을 방문해 이란과 협력을 추구하겠다고 한 것도 이스라엘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현 상태를 그대로(status quo)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재자인 이집트가 제 역할을 못하면 평화협상을 연기할 충분한 명분이 되고, 이를 통해 협상을 장기화하면서 점령지를 돌려주지 않고 자국 영토에 대한 안전지대로 활용하거나 수자원 등을 확보할 수 있다.

아랍 세계에서는 사우디와 더불어 수니파 이슬람 국가의 주축인 이집트의 영향력이 당분간 약화되면서, 이란을 축으로 서쪽으로는 이라크·시리아·레바논, 남쪽으로는 바레인·쿠웨이트·오만까지 연결되는 초승달 모양 '시아파 블록'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 무슬림형제단 집권 우려는 '이슬람 공포증' 탓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집권은 가능성이 없다. 주로 서방에서 이런 분석이 많이 나왔는데 이는 '이슬람 공포증'에 사로잡힌 학자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이 이슬람혁명화 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 중동에 대한 편견 중의 하나가 이슬람교라는 틀로만 중동을 보려는 서구의 전형적 시각인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이집트는 이란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란의 이슬람교는 시아파로, 전체 이슬람교 인구 중 10% 정도에 불과한 소수 종파다. 시아파는 수니파에 의해 박해받고 쫓겨 다니다 보니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됐다. 이는 수니파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시아파만의 속성이다.

첫째는 아랍어로 '타키야', 즉 '은둔'이라는 교리가 있다는 점이다. 종교를 이유로 체포돼 죽을 위기에 놓이면 자기의 종교를 부인하는 것을 시아파는 허용한다. 둘째는 메시아 사상이다. 과거 기독교가 그랬듯이 메시아 사상은 주로 억압받고 소외된 집단에서 나타나는데, 비록 지금은 박해받지만 언젠가는 구원자가 등장해 세상을 바로잡을 것이라는 혁명적인 사상이다.

셋째는 '아야톨라' 체제다. 아랍어로 '아야톨라'는 '신의 말씀'이라는 뜻으로, 과거 이슬람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와 지금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이름 앞에 경칭으로 붙는다. 아야톨라는 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신과 인간의 중간자적 존재다. 이는 시아파가 박해받고 고난을 겪으면서 세속적인 리더십과 종교적 리더십을 합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아파는 비교적 정치적이다. 지금도 이란을 보면 성직자인 최고지도자의 지위가 대통령보다 높다. (교황의 권위가 강했던) 중세 유럽과 유사한 상황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란은 신정정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주로 믿고 있는 수니파는 다르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니파는 왕권 등 정치권력을 잡은 적이 없다.

수니파에는 시아파와 같은 성직자가 없다. 수니파의 종교 지도자는 '울라마'라고 불리는데 아랍어로 '학자'라는 뜻이다. 학자적인 식견으로 이슬람을 해석하는 사람들인데, 대부분 현실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최대한의 권력을 누린다 해도 의회 진출을 통해 터키의 정의개발당(AKP)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AKP가 터키를 이슬람화하고 있나? 전혀 아니다.

■ 이집트 혁명의 파장, 한국도 비껴갈 수 없다

이집트 혁명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중동 지방에서 플랜트 건설 등으로 400억 달러 어치의 사업을 수주했다. 또 에너지 수급 등의 문제는 국익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도 매우 중요하다. (중동이 불안정해지면) 우리에게도 생활고가 올 수 있다.

아랍의 민주화 시위 사태는 장기화될 것이며 혼란이 계속될 것이다. 아랍의 민주화란 단지 정치적인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며 경제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아랍 산유국 대부분은 철저한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다. 부의 근원인 유전이 국가 소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이 수주받은 400억 달러 중 민간부문에서 발주한 사업은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정권이 무너지면 경제 주체가 바뀌게 된다. 또 경제전략 자체가 성장을 중시하는 쪽에서 분배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실업, 고물가 등으로 인한 생활고가 민주화 시위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주로 무역에서의 대규모 수입과 플랜트 건설 등으로 경제규모를 키우려는 기존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국내의 제조업을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또 과거에는 중동 전반의 경제 구조가 유사했지만 민주화를 통해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 경제적인 특성이 나라마다 달라질 수 있다. 민주화를 통해 다양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아랍 국가들과 쌍무적, 동반자적 관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제 사회도 안정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아랍 국민들의 염원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야 할 것이다.

석유 수입, 상품 및 플랜트 수주 등에 집중해 온 한국과 서방 기업의 진출 방식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이 짜 놓은 전략에 얹혀 갈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제조업 분야 진출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플랜트 수주에서도 로비와 인맥에 의존한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동반자적 관계에 기반한 새로운 중장기 진출 전략이 마련된다면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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