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집트는 '다양성의 혁명'…이란과 다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집트는 '다양성의 혁명'…이란과 다르다"

"'이슬람 공포증'이 美 눈 흐려"…오바마는 '인도네시아 모델' 검토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끝장낸 이집트 시민혁명 결과 이슬람 세력이 득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맺은 이스라엘은 30여년 전 '이란 혁명'의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반미‧반이스라엘 국가들로 둘러싸이지 않을까 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는 잘못된 역사 인식과 '이슬람 공포증'으로 인해 눈이 흐려진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13일자 기사 '봉기 후 이집트가 걸어갈 길은 이란과는 다르다'에서 이집트의 상황은 이란과는 전혀 다르다며 이스라엘식의 우려는 근거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란에서는 급진적 이슬람주의 세력이 주도적으로 봉기를 이끌었지만 이번 이집트 혁명에서 종교적인 영향은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집트의 상황은 "다양성의 혁명"이라면서, 종교적인 세력 외에도 청년 세대와 여성, 노동자 등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다는 점을 이란과의 차이점으로 들었다.

신문은 "이집트 봉기는 이슬람 정치세력에 기회를 주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무바라크 정권 같은 억압이 없으면 이슬람주의자들은 훨씬 온건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변할 수 있다"면서 이슬람주의에 대한 억압이 오히려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발호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인포커스>(FPIF)의 중동 부문 편집자인 스티븐 준스 샌프란시스코대 교수도 11일 진보적 웹사이트 '커먼드림스'에 기고한 장문의 글을 통해 "이집트는 '또 하나의 이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준스 교수는 "미국의 무바라크 지지 세력은 이집트에서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신정 독재체제가 수립될 것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이는 역사적 관점이 결여된 것(ahistorical)"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이집트의 투쟁은 (이란보다는) 우익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낸 라틴아메리카나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린 동유럽 등의 비폭력 대중 봉기와 유사하다"며 "이들 국가들은 현재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미국과 이스라엘 등 서방 국가 일각에서는 이집트 시위가 이란처럼 '이슬람 혁명'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집트 시위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은 함께 어깨를 걸고 시위를 벌이는 이슬람교도와 콥트 기독교도의 모습. 슬로베나아 출신의 석학 슬라보예 지젝은 이 장면을 '이집트 혁명의 가장 숭고한 순간'으로 꼽았다. ⓒ로이터=뉴시스

美 "이집트, '인도네시아 모델' 따랐으면"

미국 정부는 이집트가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는 전혀 다른 '인도네시아 모델'을 채택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은 13일 백악관이 무바라크 퇴진 이후의 이집트가 인도네시아의 상황과 비슷하게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으며,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방문 당시 독재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점에 찬사를 보낸 적이 있어 '인도네시아 모델'에 많은 공감을 갖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행정부는 세속주의 정당들에게 선거를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1년여 동안 총선을 미뤘던 인도네시아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선거를 조속하게 실시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이집트 최대 야권 세력이며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될까봐 우려한다는 시각을 밝힌 바 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13일 방영된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단기간 내에, 예를 들어 만약 90일 이내에 선거가 치러진다면 진정한 승자는 무슬림형제단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집트가 '이란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인도네시아 모델'을 따라가기를 바라는 희망은 모두 미국이 여전히 중동 지역에서 친미 성향의 정부를 세워 자신의 국익을 지키려 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데서 나온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13일자 칼럼에서 "미국은 석유 공급을 보장해 주고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않는다면 독재정권이라도 지지해 왔다"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미국의 이슬람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태도가 이슬람 근본주의 그 자체만큼이나 큰 해악을 끼쳤다"면서 "이슬람주의를 도깨비나 귀신(bogyman)처럼 취급하는 태도를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집트 상황, 무슬림형제단에도 도전적"

현재 이집트의 상황과 관련해 '이슬람 공포증'으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 미국 정치인들에게서 종종 나오고 있다. 예컨대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미국 정계의 유력자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무슬림형제단이 무바라크를 대체할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대해 "매우 걱정스럽다"며 "그들은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아랍 세계의 이슬람주의 운동은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에서 터키의 정의개발당(AKP)과 같은 주류 온건 세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며,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극단주의적인 그룹도 아니며 집권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는 시각을 소개했다.

신문은 무슬림형제단은 그동안 무바라크에 대한 반대파 이상으로 인식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의 정체성과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전했다. 또 무슬림형제단이 시위를 통해 부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단체 역시 선거 등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민주적 정치 시스템 속으로 진입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 참가자인 아말 보르햄은 "무슬림형제단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참여의 권리가 있다"면서도 "그들 역시 사회의 일부분일 뿐이며, (특히)그들은 오랫 동안 그늘 속에만 있었다"고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무슬림형제단에는 이란 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같은 대중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 없다는 점과, 조직 형태상으로도 이슬람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세력이 아니며 주로 중산층 평신도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왔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슬람주의를 극도로 경계해 온 이스라엘의 바라크 장관조차 "무슬림형제단을 가장 극단적 테러그룹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며 "그들 중 상당수는 덜 극단적이다"라고 <ABC> 방송 인터뷰에서 평가했다. 하지만 바라크 장관은 "나는 과격한 무슬림 운동 세력을 믿지 않는다"며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지는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집트 싱크탱크 '알아흐람'의 이마드 가드 정치부장은 지난 13일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혁명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며 "현재 아랍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정부 시위는 민족적, 세속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형제단이 선거에서 선전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무슬림형제단은 현재의 시위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을 뿐"이라며 다소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도 1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해 향후 이집트를 이란처럼 이슬람 신정국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우려는 과장"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한 이집트의 이슬람교는 수니파이며, 이란의 시아파와는 달리 정치가 아닌 사회적 역할에 몰입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군부와 민주화 세력의 줄다리기"

한편, 무바라크 퇴진 닷새째를 맞은 이집트에서는 최고군사위원회가 개헌 등 정치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군사위원회는 퇴직 법관 출신의 타레크 알-비슈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개헌위원회의 구성을 마쳤다.

또 군사위원회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무바라크와 그 측근들의 자산 동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위원회에 의해 과도정부의 총리로 지명된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는 다음 주 중 야권 인사 일부를 입각시키는 내용의 개각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화를 주도한 시위대는 권력 공백이 새로운 군사정권의 수립이라는 결말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며 견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위대를 대표해 군사위원회와 면담을 가진 구글 임원 와엘 그호님은 군사위원회가 앞으로 2개월 내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사위원회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총선과 대선 등의 선거 일정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모든 개혁 일정이 밝혀질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현재 타흐리르 광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이는 군사위원회가 국영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시위와 파업을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 타흐리르 광장의 한 시위 참가자는 군인들이 광장으로 들어와, 해산하지 않으면 체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군부가 지난 50년 간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시민의 요구대로 민주사회를 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군부와 민주화 세력 간 줄다리기가 예상된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