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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이스라엘처럼 만들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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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이스라엘처럼 만들고 싶은가?"

[한반도 브리핑] MB 정부가 진짜 '소프트 파워'를 원한다면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이제 국제정치에서 상용하는 보편적 용어가 되었다. 이 용어는 조셉 나이 미 하버드대 교수가 1990년 <Bound to Lead>라는 저서에서 처음으로 소개했으며, 그는 2004년에는 <소프트 파워>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했다.

소프트 파워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강제적인 위협이나 물리적인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자발적인 협력이나 동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군사력을 위시한 '하드 파워'로만 국가의 힘을 규정해온 현실주의자들이 보유 능력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보완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인정받아 왔다.

물론 하드 파워 없이 소프트 파워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으며, 이들은 소프트 파워에 대한 과대평가를 문제 삼는다. 또한 개념의 모호성이나 측정의 어려움 등도 잦은 비판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하드 파워를 대표하는 냉전체제의 붕괴와 민족국가 체제의 약화로 말미암은 세계화 현상과 함께 그 중요성이 오히려 증가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뿐 아니라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 등을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아젠다(의제) 선점에서의 소프트 파워가 강조되기도 한다.

군사력과 정복으로 특징지어지는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차별화하려는 미국에 소프트 파워는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물론 미국이 스스로를 예외주의(exceptionalism)라 부를 만큼 소프트 파워적 패권임을 주장하는 것을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자유나 민주주의 또는 인권 같은 가치들이나 미국의 문화와 교육 등은 분명 미국을 특별한 패권국가로 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 이런 가치들을 활용하면서 국제정치 영역에서 아젠다를 선점하고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게 만들어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냉전 초기에는 반제국주의 이념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던 소련이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게 뒤처진 것이 소프트 파워 영역이었다.

현재 중국 역시 미국과 대등하게, 또는 미국을 추월할 수퍼파워(초강대국)로 지목받으면서도 결정적인 한계로 늘 지적되는 부분이 이것이다. 그래서인지 2007년 17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에게 필요한 것이 소프트 파워의 강화라고 직접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소프트 파워는 초강대국에게만 가능하고, 또 유용한 것인가? 아니다! 물론 소프트 파워는 강력한 하드 파워를 기반으로 할 때 그 효과가 배가된다. 또한 소프트 파워를 통한 아젠다 선점의 필요성은 강대국의 경우에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하드 파워를 사용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강대국이 아닌 국가들도 나름의 매력적인 소프트 파워를 키우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필수사항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호주나 스웨덴 같은 소위 강소국들이 국제 중재나 유엔평화유지군에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나, 일본이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대량의 개발원조를 통해 소프트 파워 증가를 추구해온 것,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등이 반세계화의 선봉을 자처하며 국제관계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예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남북대치로 인해 키워진 군사력과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한 경제력에 걸맞는 한국이 가진 소프트 파워는 무엇일까?

▲ 이명박 정부는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국격' 높이기에 무척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대북 강경책을 유지하는 한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제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권은 출범 이후부터 이러한 부분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주장할 것이다. 소위 한국 외교에서 발목을 잡아왔던 북한 문제를 과감히 탈피하고, 글로벌 역량외교로 국격을 높이고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는 부분을 성공 사례로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G20 정상회의를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했고 올해에는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을 계기로 후진국에 대한 개발원조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나,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하며 환경 분야에서 선도국가의 모습을 갖추고자 하는 것은 소위 소프트 파워적인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곧 한국이 가진 효과적인 소프트 파워라고 말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의 활성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되고, 서방 선진국들이 선점한 국제개발 아젠다에서 한 자리를 꿰찼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소프트 파워의 증가를 가져다줄까? 더욱이 북한 문제를 우회해 글로벌 외교의 중심을 외치는 것으로 과연 우리의 명분과 영향력을 증가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이는 아젠다의 선점도 아니고, 실익을 얻을 수 있는 부분도 별로 없다. 기껏해야 단기적 이미지 고양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감안한다면 국제회의 개최만 가지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심 국가로 부상했다고 하기엔 낯뜨겁다.

개발 아젠다만 해도 그렇다. 국제 개발에 있어 한국이 가진 진정한 가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편승보다는, 오히려 현재 선진국들이 독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개발 노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안을 제공할 때 더욱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최근 일부에서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듯이 경제 발전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진국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진정한 개발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에 보다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 강경책으로는 더더욱 한국의 효과적인 소프트 파워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2년 간 미국의 대북정책의 부재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강경책이 마치 한반도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착시효과였다는 것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의 상황이 증명한다. 대북 강경책은 대미관계 외에는 사실상 모든 면에서 실패한 정책이다. 북한 비핵화는 후퇴했으며,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대(對) 중국·러시아 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과연 이를 호전적인 북한 정권의 탓만으로 돌릴 것인가? 북한이 언제 그러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소프트 파워라는 것이 이러한 난국을 힘이나 위협이 아닌 협조와 설득으로 풀어내는 외교력에 그 가치를 높이 둔다는 점에서 대북 강경책은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자랑하는 글로벌 외교 역량 강화와도 전혀 다른 방향이다. 오히려 냉전 대결, 즉 하드 파워로의 회귀라 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남북관계의 악화가 한·미·일과 북·중·러가 맞서는 신냉전 구도의 가능성까지 초래하는 것을 봐도 확인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진정한 소프트 파워는 대북 화해를 이끌어내고 한반도의 평화 아젠다를 선도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최빈국에서 경제 발전을 이룬 그 경험적 자산이 한국의 진정한 가치와 매력이 되듯이 분단을 극복하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국격과 외교 역량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것은 단순히 다른 국가들의 인정을 받는 문제를 넘어 실제로 우리 민족이 살 길이기에 더욱 시급하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사실 이명박 정권만큼 이미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노력해 온 정권이 드물다. 그간 한미 전략동맹에서도 가치와 신념 같은 소프트 파워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력들은 상당부분 국내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실효성보다는 단기간의 이미지에만 집중했기에 진정한 소프트 파워의 강화와는 차이가 있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대북 강경책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국내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이득을 가져왔을지는 몰라도, 장기적 국익에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국내정치적 효과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고 판단된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국민들은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호전성을 비난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보 부재 사실 자체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고 정부의 책임론이 한층 부각될 것이다. 연평도 사태 이후 보수층에서는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흘러나왔다.

언뜻 듣기에는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대단해 보이고, 그들의 타협하지 않는 안보관을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제 삶은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그들이 적대적 국가들에 침탈당하는 것보다는 분명 나은 것이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델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 긴장 해소와 평화 정착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이명박 정권의 임기는 2년이 채 남지 않았으며, 요즘엔 레임덕에 대한 얘기까지 빈번하게 나온다. 정략적 개헌 논의 같은 것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지 말고 대북 노선의 획기적 전환을 통해 오히려 역사적 공헌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스스로도 정치적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표현했던 것처럼, 이제는 민족의 장래를 생각해서 대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주기를 주문한다.

이전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남한 사회에서의 대북 문제는 상대적으로 이념의 굴레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보수정권이 결심하면 더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인식하기를 바란다. 대북 강경책의 변화는 현재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동시에, 한국이 동북아에서 평화 아젠다를 선점하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매우 유효한 소프트 파워가 될 수 있다. 대북 강경 아젠다로는 더 이상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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