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각) 미국 연방 의회에서는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다. '부시 감세'를 2년 연장하는 감세 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하원으로 넘어갔고, 미군 내의 동성애자 커밍아웃 금지 정책인 '동성애자인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ADT : Don't ask. Don't tell)는 정책을 폐기하는 법안은 거꾸로 하원을 통과해 상원으로 넘어갔다.
미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의 양원제로 되어 있으며 어떤 분야에 속한 입법인가에 따라 양원 중 어느 곳에서 최종 의결권을 갖는지 나뉜다. 외교, 안보 등의 분야는 상원이 더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하며 예산안 심의는 하원에서 결정권을 갖는다.
러시아와의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은 상원에서 예비 투표를 통해 의안으로 상정됐다. START의 경우는 국내법이 아닌 외국과의 조약이기에 하원을 거치지 않고 상원의원 2/3의 동의를 얻으면 발효된다. 날치기가 없다는 것뿐 아니라 이런 법안 처리 방식 역시 한국 국민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미국 고유의 정치문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이 법안들이 처리될 때까지 겨울휴가까지 반납할 태세임을 밝힌 바 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가 레임덕 회기를 마칠 때까지 워싱턴에 머물러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레임덕 회기는 총선이 치러진 해에 열리며 관행적으로 크리스마스 전에 끝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차기 국회가 개원하는 이듬해 1월3일까지 계속된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법안을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는 상하원 모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내년이 되면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이 된다. 공화당이 압승을 거둔 지난 11월 중간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내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안과 관련된 법률은 미국 헌법상 하원에서 제안되어야 하며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기 전 마지막 결의도 하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번 회기 내에 감세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반면 공화당은 민주당에 비하면 한결 느긋한 입장이지만 내부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보수적 유권자 운동인 티파티 운동은 감세 연장안에 대한 합의를 '불충분'하다고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15일 이번 감세안을 둘러싼 논란을 통해 내년에 하원 다수당이 되는 공화당이 보수 우파의 압력에 대응해 어떻게 의회를 운영할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11월 중간선거 승리의 동력 중 하나가 티파티 운동으로 평가되는 만큼 공화당 의원들도 이를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 미 상원 민주당 대표인 해리 레이드 상원의원이 감세 연장안 상원 통과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 |
'부시 감세' 법안 상원 통과
법안들 중 최대의 쟁점이 되는 것은 감세연장안이다. 미 상원은 15일 최부유층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한 감세를 연장하고 상속세도 감면하는 내용을 담은 감세연장법안을 통과시켰다. 표결 결과는 찬성 81 대 반대 19였으며, 이 나라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압도적'(overwhelmingly)인 결과라고 표현했다.
이 법안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가 지난 6일 이뤄낸 타협의 결과물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애초에는 연소득 25만 달러(독신자는 2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감세 혜택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나 협상 과정에서 마음을 바꿨다.
상원 표결 결과가 발표된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하원의 모든 의원들이 이 법안의 모든 부분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 법안에는 내가 반대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이 법안은 우리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전국의 중산층 가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하원 의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부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특히 부유층 소득세 감면 뿐 아니라 상속세 면세 기준이 1000만 달러(독신자는 500만 달러)인 것은 터무니없이 높고 상속세 최고세율 35%도 너무 낮다며 합의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합의가 이루어진 직후 크리스 반 홀렌 민주당 하원의원은 당 자체 회의를 통해 검토와 토론을 가질 것이라고 말하며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아직 어떤 협상에도 서명한 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공화당의 반대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이유다. 보수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 패트리어츠'는 감세 연장안은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밀실협상이며 이 합의안에는 재정 적자 감축과 같은 티파티 성향 공화당 후보들의 공약을 위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보수 성향 인사들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공화당의 미셸 바흐만 하원의원은 이미 공개적으로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고 마이크 펜스 의원도 14일 한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해 "감세연장안이 하원에 상정되면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반대 이유는 이번 감세 연장안이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합의안 타결 당시 공화당의 존 킬 상원의원은 합의 내용에 만족을 표하면서도 이런 감세 연장 조치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더 좋다고 덧붙였다.
대럴 아이사 공화당 하원의원도 이번 합의안은 "항구적인 조세 체계를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합의안은 진보와 보수세력 양쪽에서부터의 공격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하원에서 이 합의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하루 뒤인 16일(현지시각)이다.
미 하원, 동성애자 군 입대 제한 폐지 법안 가결
▲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가운데)이 미군의 동성애 정책인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를 폐지하는 법안이 하원에서 가결된 후 웃음짓고 있다. ⓒEPA=연합 |
반면 군대 동성애자 차별 철폐 법안은 이미 하원을 통과했으며 상원 통과도 무난해 보인다. 미 연방하원은 같은날 국방부의 동성애자 정책인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ADT) 정책을 폐지하는 법안을 찬성 250 대 반대 175로 가결했다. 이 정책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람의 군 입대를 금지하고 있어 동성애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기를 강요해 왔다.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의원은 "1만3500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이 명예롭게 군복을 입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공연한 차별정책을 폐지할 때"라며 "이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인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를 제한하는 정책은 중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찬성을 표시한 의원은 민주당 소속 235명과 공화당 소속 15명이다. 공화당 소속 160명의 의원과 민주당 의원 15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법안은 상원에서 표결을 거칠 예정이며 아직 의사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상원은 다음 주 초까지는 이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 없다고 상원 원내 대변인인 민주당 해리 레이드 의원이 밝혔다. 상원에서 이 법안의 처리를 주도해 온 무소속의 조지프 리버만 의원과 공화당 수전 콜린스 의원은 표결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패트릭 머피 하원의원은 "공은 상원으로 넘어갔다"며 "양 당 상원의원들에게 이 법안을 통과시켜 DADT 정책을 최종적으로, 영원히 폐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START 상원 의안으로 상정…토의 시작
미 상원은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의 비준안을 상정했다. 상원은 예비투표를 실시해 찬성 66표, 반대 32표로 이 비준안의 의안 상정을 가결했다.
그러나 의안으로 상정되긴 했지만 공화당은 그동안 연내 비준 저지 의사를 고수해왔기에 최종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공화당의 유력자인 존 카일 상원의원 등은 제한된 레임덕 회기에 복잡한 협정 비준을 마무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안건을 내년 1월 3일 시작되는 회기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총 100명으로 구성되는 미국 상원에서 비준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족수의 2/3인 67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다수당인 민주당은 58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내년 1월이 되면 53석으로 의석수가 줄어든다.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려면 공화당 의원 9명을 설득하면 되지만 내년 1월 새 의회에서는 공화당 의원 14명의 찬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화당은 협정 비준을 위해 미국 핵군비 현대화 보장과 미사일방어(MD) 구축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다고 주장해 왔으나 존 매케인 등의 공화당 의원들과 보수 성향 인사 가운데 일부는 연내 비준을 성사시켜야 한다며 공화당의 전향적 입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연명으로 <워싱턴포스트>에 새 START의 연내 비준을 촉구하는 칼럼을 기고했으며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제임스 베이커, 로런스 이글버거, 콜린 파월 등 역대 국무장관들도 지난 2일 이 신문에 칼럼 '왜 공화당이 새 START를 지지해야 하나'를 통해 조기 비준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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