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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 '연평도'와 함께 다시 후퇴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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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 '연평도'와 함께 다시 후퇴의 길로

[김성민의 'J미디어'] 재일조선학교 무상화 프로세스 중단 타당한가

연평도 사태가 일어난 다음날인 11월 24일 오전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 적용을 추진하던 모든 프로세스의 중단을 발표했다. 연평도 사태 직후의 '늑장대응', '미숙한 대처', '위기감의 결여' 등을 이유로 야당과 미디어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그 결정은 이례적으로 신속한 조치였다.

사실 한미일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중국의 확실한 입장표명을 요구한다는 외교적 수사 이외에 일본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제재 역시 납치사건 이후 이미 다 써버려 마땅한 카드가 없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제재'를 선언한 것이다.

'고교무상화'란, 작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의 공약에 기초하여 고등교육의 학비를 경감해 줌으로써 균등한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이다. 이는 일본 법인 '공립고등학교에 관련된 수업료의 불징수 및 고등학교취학지원금의 지급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공립학교의 수업료를 면제해주고 사립학교의 수업료는 공립학교의 수업료만큼의 금액을 보조해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지난 17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즉시 적용 촉구 여성단체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올해 4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일본 전역의 일반 고등학교와 재일조선학교를 제외한 모든 외국인학교에 이 정책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조선학교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초 일본 문부과학성(문부성)의 예산에는 전국의 조선학교 학생 1900여 명에 대한 지원금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반일적인 사상교육, 북한과의 관계, 납치 문제 미해결 등이 그 이유였다.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의견이 적지 않았다. 결국 부담을 늦긴 일본정부는 '일본의 일반 고등학교와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선학교를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때부터 재검토 작업이 시작되었다. 문부성은 '고교무상화는 순수하게 교육제도로 생각해야 하며, 조선학교의 교육내용을 검증하여 다시 판단하겠다'며 5월부터 학교제도와 교원양성 분야의 전문가, 대학 학장 경험 자 등 6인의 전문가 회의기구를 설치했다. 문부과학성 직원이 직접 조선학교를 방문하여 커리큘럼과 교과서 등에 관한 자료를 제공받고 수업의 풍경과 학교 시설 등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검증자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문부성 밖에서도 활발한 공론화가 진행되었다. 기존의 반대의견이 변함없이 개진되는 가운데 일본 내의 다양한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차별없는 적용을 주장했고, 몇몇 지방변호사협회가 근거없는 차별이라며 제외조치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유엔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아이들의 교육에 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한 가운데 지난 8월31일 문부성은 '일본 고등학교와 유사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므로 구별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최종적인 적용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사기준안을 내놓았다. '매년 재무표 제출 및 점검', '3년마다 검증 실시'등, 고교무상화를 적용할 경우의 구체적인 대비책까지 마련했다.

이때부터 적용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사히신문>은 9월 5일자 사설에서 '조국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존중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며 차별없는 무상화를 올해 4월로 소급적용하여 조속히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10월 21일 여당인 민주당의 '문부과학/내각부문 합동회의'는 문부성이 내놓은 심사기준안을 승인했다. '교과서의 기술 등 구체적인 내용은 묻지 않으며 수업시간 및 교사면적 등의 외형적 요소로 판단한다'는 문부과학성의 기준안이 '외교상의 배려가 아닌 교육상의 관점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이에 따라 11월 5일 문부성의 정식 승인을 거쳐 10개의 모든 조선학교가 고교무상화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 보수진영의 거센 반대를 이겨낸 결과였다. 다음날 <마이니치신문>은 '조선학교가 일본 내에 있는 다양한 학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이번 고교무상화 공론화의 과정은 일본사회가 스스로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2학기 들어서도 일본사회의 '왕따'가 되어야 했던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그 수 개월간의 시간은 매우 지난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납치문제 등과 같은 북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물리적, 심리적인 돌팔매질을 견뎌내야 했던 아이들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희망이 무너지는 데에는 20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의 파편이 조선학교로 튄 것이다. '무상화 중단'이라는 일본정부의 결정은 조선학교 문제를 순수한 교육제도의 틀 안에서 판단하기로 했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 되었다. 수 개월에 걸쳐 가까스로 한 발짝 전진했던 일본사회 역시 함께 후퇴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이 일본정부가 연평도 사태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우선적인 대책이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아이들은 민간인이고 3~4대에 걸친 일본사회의 일원이며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피해자다.

연평도 사태에서 북한군이 어떠한 정당성도 가질 수 없는 것은 그 포격이 민간인을 향했기 때문이다. 모든 민간인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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