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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가 뿌려놓은 고통의 씨앗, 검은 대륙은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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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가 뿌려놓은 고통의 씨앗, 검은 대륙은 울부짖는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아프리카, 내전·에이즈·빈곤 '3중고'로 신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군사적 업악통치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모습들은 그런대로 널리 알려진 편이다. 그동안 영국 <BBC>나 미국 <CNN> 같은 세계적인 언론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언론사들도 그 지역들에 관심을 기울여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사는 지구촌에는 국제적인 언론보도에서 소외된 전쟁들도 많다. 이른바 '소리 없는 전쟁'(soundless war)들이다. 유혈분쟁에 휘말린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지만, 흔히 우리가 '국제사회'라 부르는 바깥세상에 제대로 그 참상이 알려지지 못하는 전쟁을 가리킨다.

'소리없는 전쟁'의 세 가지 이유

그 이유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로 유혈분쟁 현장이 너무 멀고 교통이 불편해서 취재기자의 접근이 쉽지 않고(아프리카 콩고 동부지역 내전의 경우), 둘째로 현지 상황이 너무나 위험하고 무장조직에 납치돼 곤욕을 치를 가능성조차 있어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를 아예 보내지 않거나(러시아-체첸 내전, 아프리카 소말리아내전의 경우), 셋째로 워낙 오래된 유혈분쟁이 워낙 오래 끈 탓에 상업적인 미디어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인도-파키스탄의 해묵은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등)이다.

10억의 인구가 모여 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유혈분쟁들도 대부분 '소리 없는 내전'들이지만, 알고 보면 그동안 엄청난 희생을 치러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90년대 이후만 해도 콩고내전 300만 명, 수단내전 150만 명, 르완다내전 80만 명, 앙골라내전 50만 명이란 많은 희생자들을 낳아왔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선 콩고, 수단, 우간다, 부룬디, 알제리 등 곳곳에서 유혈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내전들은 평화협상도 쉽지가 않다. 수단내전과 부룬디내전처럼 정부군에 대항하는 반군 조직들이 여럿으로 나뉘어 있는 탓에 내전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12만명의 소년병

아프리카의 유혈충돌에는 겨우 12~15살의 나이 어린 소년병들도 한몫 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배고픔과 공포에 못이겨 어른들의 전쟁에 끌려들어가 강요된 전쟁을 치른 셈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1990년대 이래 전세계에 걸쳐 18세 아래 소년병들이 30만 명 규모를 유지해 왔는데, 현재 아프리카에는 적어도 12만명의 소년병이 실전에 투입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년병이 어른들과 함께 전쟁에 나서는 것은 AK-47같은 소총들이 가볍고 사용하기도 편한 덕이다. 아프리카 내전들은 대량살상무기(WMD)나 최신예 전폭기, 탱크가 나서는 전쟁이 아니다. 기껏해야 RPG(어깨걸이식 총류탄)이다.

어른들의 싸움에 휘말린 소년병들은 놀랍게도 어른 못지않게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러왔다. 1990년 초부터 다이아몬드 광산 이권을 둘러싸고 10년 동안 이어졌던 시에라리온내전이 대표적인 보기다. 반군 혁명연합전선(RUF) 소속 소년병들은 어른들이 강제로 먹인 마약에 취해 도끼로 손목을 치는 잔인성으로 악명이 높았다.

전쟁은 많은 이들의 고통을 자아내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돈을 버는 기회로 여겨진다. 지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전범재판을 받고 있는 라이베리아의 전 독재자 찰스 테일러는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무기를 팔고 그 대신 반군들이 불법채취한 다이아몬드를 건네받아 밀수출해 검은 돈을 벌었던 인물이다. 전쟁을 통해 돈을 버는 '죽음의 상인'이란 바로 테일러 같은 자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붙잡혀 두 손목을 모두 잃은 한 농민. 아프리카 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관심이 낳은 희생양들이다. ⓒ김재명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 개정판 낸다면…

19세기 프러시아의 장교이자 전쟁이론가로, 유명한 <전쟁론>의 저자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가리켜 '다른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라 정의 내렸다. 그가 다시 태어나 <전쟁론>의 개정판을 낸다면, 전쟁이란 ''다른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 경제적 관계의 연장'이라 쓸 것이다. 전쟁이란 정치적 이해관계와 아울러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아프리카 내전의 성격이 바로 풍부한 자원을 둘러싼 이권전쟁이다. 숱한 목숨을 앗아간 그곳 내전들은 석유나 다이아몬드, 금광 등 자연자원 이권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콩고내전은 아프리카 이웃나라들이 콩고의 풍부한 자연자원에 군침을 흘리고 군대를 보내 개입했기에, '아프리카의 제2차 세계대전'이라 일컬어진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전쟁들이 만일 유럽에서 벌어졌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석유는 앙골라, 수단, 나이지리아에서 보여지듯이 분쟁의 주요요인이다. 수단내전은 남부의 풍부한 석유자원을 둘러싼 친정부세력(이슬람교도)과 반정부세력(수단인민해방군, 기독교도와 토속종교 연합)의 긴장에서 비롯됐다. 21세기에 들어 양쪽이 석유 이권을 골고루 나누어 쓰는 것으로 합의하고 내전은 막을 내렸지만, 곧이어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새로운 유혈분쟁이 터져 3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 지역기구인 아프리카연합(AU)에 속한 2만6000명 병력이 유엔 평화유지군의 푸른 헬멧을 쓰고 주둔 중이지만, 지금도 상황은 좋지 못하다.

풍부한 자원 누구 배 불리나

석유를 비롯해 아프리카 분쟁지역의 자연자원 판매대금은 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고 무장 세력을 키우는 전쟁비용으로 쓰인다. 그 나라 다수 국민들의 삶을 어제보다 낫게 만드는 데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 특권층과 그들에게 줄을 댄 외국 기업인들이 배를 불릴 뿐이다. 지난 10월 1일로 독립 50주년을 맞이해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이명박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문했던 나이지리아가 대표적인 보기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선 내전-질병(에이즈, 말라리아)-빈곤이라는 만성적인 3박자가 민초들의 고통을 더해왔다.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최근자료로는 2억4000만명의 아프리카 인이 기아선상에서 굶주리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 4명 가운데 1명 꼴이다.

지난날 강대국들은 아프리카 지도를 놓고 직선으로 국경선을 그어 부족공동체를 분리시킴으로써 내전의 씨앗을 뿌렸다. 강대국들은 풍부한 자원에만 군침을 흘리지 말고 그곳 사람들의 '인간안보'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아프리카가 내전과 질병, 그리고 가난의 3중고를 겪어온지 오래됐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전쟁과 가난을 잊고 밝게 뛰어놀지 못하는 데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김재명

* 위의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이메일 :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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