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녀시대나 여타 걸그룹처럼 노래를 썩 잘 부르는 것도, 입이 쩍 벌어지게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외모가 뛰어난 멤버가 눈에 띄지도 않는다. 세련되기는 커녕 오히려 약간은 촌스럽기까지 한, 그냥 평범하고 귀엽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아이들. 이들이 지금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돌그룹 'AKB48'이다.
'위키피디아'에서 AKB48을 찾아보니 대략 이런 정보들이 나온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컨셉으로 2005년 결성. AKB의 어원은 아키바(아키하바라의 준말). 멤버수는 (예상대로) 48명 정도. 도쿄 아키하바라에 전용극장 AKB48을 두고 거의 매일 라이브공연 중. 2010년 8월 현재 오리지널 곡 350곡 이상.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먼 존재였던 아이돌을 친근하게 느끼고 그 성장과정을 공유하는 아이돌 프로젝트, 등등. 알고보니 그 평범함은 처음부터 그녀들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셈이다.
AKB48가 연말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으로 출연한 것이 2007년이었 다고 하니 메이저무대에서 인기를 얻은 기간이 그리 짧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최근의 붐은 그런 차원의 인기를 가볍게 뛰어넘게 했다. 아키하바라의 '지하 아이돌'에서 일본열도의 '국민 아이돌'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 AKB48이 지난 2008년 발매한 싱글 앨범(한정판)의 표지 사진 |
그 현상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지난 9월 6일자 <AERA>(아사히 신문 계열의 뉴스전문 주간지)의 특집기사. 'AKB48이 일본을 구한다'는 제목에 커버부터 도배한 그녀들의 사진과 전문가들의 분석까지 꽉꽉 채워넣은 이 기사는 자못 진지했다.
관객 7명을 앞에 두고 활동을 시작한 그녀들이 꼬박 5년을 달려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성장한 과정은 도무지 밝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숨막히는 일본의 현실에 희망을 불어넣어줄 새로운 상징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상징.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일본사회가 가장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도성장이 가져다준 풍요와 일본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던 수많은 상징들이 20여 년의 장기불황과 사회구조의 균열 속에서 이미 무너졌거나, 혹은 예전의 지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경제대국을 상징하던 전자제품, 자동차 회사들이 그랬고,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던 스모가 그랬고, 공고한 복지를 상징하던 평생고용과 국민연금이 그랬다. 근대화와 소비문화를 상징하던 백화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빠져나간 자리는 그 몸집 만큼이나 크고 허전하다.
▲ 일본 소비문화를 상징했던 백화점들도 일본에 닥친 경제 위기에 맥을 추지 못했다. 사진은 도쿄 긴자의 마쓰자카 백화점. ⓒEPA=연합뉴스 |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백 명의 100세 이상 노인들, 특히 연금을 타내기 위해 썩어가는 부모의 시신을 옆방에 두고 살아온 자식들의 이야기는 충격을 넘어 어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AKB48가 나라를 구한다'는 어찌보면 황당한 이 문구에서는, 그래서 어떤 절실함이 묻어난다. 기존의 어떤 것도 지금의 일본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과 냉소, 자괴감이 그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편 <AERA>의 기사는 그녀들의 5년 후를 물었다. 그녀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배우로, 솔로가수로, 활동가로, 지금보다 더 큰 목표를 향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하나하나가 구체적이었고, 어두운 현실이 무색할 만큼 해맑았다. 기사가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그 부분인 듯 했다. 절망과 냉소, 자괴감만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 그게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꿈을 꾸는 그 자체 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놀랍고 가치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기사는 그녀들이 성장해나갈 앞으로의 5년에서 일본의 희망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 결론은 수많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을 터였다. 그들이 AKB48이라는 새로운 상징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평범한 자신들의 미래, 그토록 꿈꾸고 싶은 희망의 근거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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