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조직의 무자비한 폭력과 불법 이민이라는 멕시코의 두 가지 골칫거리가 교차하는 이번 사건으로 '마약 범죄와의 전쟁'에 총력을 다 하고 있는 멕시코 당국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출신들 희생
멕시코 당국은 25일(현지시간) 멕시코 북동부 타마울리파스 주(州) 산 페르난도 부근의 한 목장에서 72구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멕시코 해병대는 전날 사건의 생존자로부터 마약 조직의 공격을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조직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군인 1명과 마약 조직원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격전 뒤 해병대는 목장의 널찍한 공간에 72구의 시체가 널려있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떤 시체는 앉은 채로, 어떤 시체는 다른 시체 위에 쌓아올려진 상태로 발견됐다. 이 가운데 14구는 여성이었다.
사망자들의 신원과 국적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익명을 요구한 생존자에 따르면 대부분 멕시코 외 중남미 국가들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에콰도르에서 왔다고 밝힌 생존자는 마약 조직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사람들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브라질 등지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는 무장한 마약 조직의 리더가 이민자들에게 통행료를 갈취하거나 자신들의 마약운반책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으며, 이민자들이 이 명령에 저항하자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자신 역시 총을 맞아 부상당했지만 가까스로 도망쳐 근처에 있던 해병대 검문소에 사건을 알렸다고 말했다.
▲ 72구의 사체가 유기되어있던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산 페르난도 부근 목장 ⓒ로이터=뉴시스 |
마약 범죄는 활개, 불법 이민은 급증
이번 사건은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이 취임한 2006년 이래 확인된 마약 조직의 시신 유기 사건 가운데 인명 피해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명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멕시코를 치안 불안으로 몰아넣는 마약 범죄와 중남미 빈곤의 현실을 보여주는 불법 이민 문제가 겹쳐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BBC>는 멕시코 특파원의 말을 인용해 "이와 같은 살해 사건은 마약 거래와 불법 이민이라는 멕시코의 가장 큰 두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멕시코 전문가인 미구엘 몰리나는 <BBC>에 이민자들이 국경 이동에 드는 돈을 내기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현금을 갖고 이동하기 때문에 자주 범죄 집단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사법 당국자는 멕시코의 불법 마약 조직들이 점점 인신매매라는 '수익성 좋은 사업'으로 영역 이동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여기엔 국경을 넘는데 필요한 '통행료'를 갈취하거나 이민자를 마약운반책으로 쓰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강도, 납치, 살인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편 칼데론 대통령은 취임 이래 고수해왔던 강경한 마약 범죄 소탕 작전과 관련해 지속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그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2006년 이래 마약 범죄와 연루되어 사망한 사람만 2만 8000명 이상이라는 추정이 나오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멕시코에서는 지난 23일에도 남부 이달고 주 파추카 시(市)에서 마약 조직간 싸움으로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19구 이상의 시신이 발견되는 등 한 달에도 몇 번 씩 대형 사체 유기 사건이 벌어진다. 주로 조직들간 세력 다툼에서 희생자가 나오지만 무고한 민간인들도 수 없이 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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