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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돌맹이를 물고 산을 넘는 갈매기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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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돌맹이를 물고 산을 넘는 갈매기가 돼라"

[한반도 브리핑] '교활한 외교'만이 살길이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지난 2년 반 이명박 정부의 외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대북 강경과 친미외교를 통한 10년 과거 지우기'로 압축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외교를 실패로 규정하면서 핵심 외교정책 기조를 180도 뒤집어왔다.

물론 정부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진보정권 기간 흔들렸던 한미동맹을 단순히 복원한 것을 넘어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고, 북한에 이용만 당했던 햇볕정책을 과감히 폐기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왔다고 자평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와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글로벌 역량 외교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외교의 지평을 확대했다고도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한반도를 우회하고 미국의 등에 올라타 국제사회의 주역이 되려는 노력을 했지만, 우리가 북한 문제를 외면하고도 그게 가능할 지 의문이다. 또한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생각한다면 국제회의 개최만 가지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리더국가라고 하기엔 낯이 조금 뜨겁다. 도리어 호가호위의 전형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사실 이런 한국 외교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지난 반세기 냉전 논리의 부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동맹 강화 과정의 이면에는 한·미·일과 북·중·러가 맞서는 냉전 구도의 재현이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불거진 주변 4강의 미묘한 입장 차이는 바로 그 예고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자신을 너무 쉽게 노출시키고 가진 '패'를 다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타우르스 산맥의 갈매기

한반도는 냉전 종식 20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탈냉전의 바다위에 떠있는 냉전의 섬 같은 존재다. 물론 북한 정권의 존재와 행태가 핵심 원인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외교를 해왔다.

오랜 냉전 대결을 극복하고 남북화해를 이루려던 두 진보정권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딜레마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한미간 위협 인식의 차이가 노정되면서 한미동맹은 결성 이후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혼란은 냉전을 태생적 기원으로 하는 한미동맹 체제가 탈냉전을 맞으며 겪을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였다. 아무튼 두 진보정권은 시대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냉전적 요소들이 남아서 작동한다는 혼란 속에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이 자체가 친미정책 일변도였던 역대 정권들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와 마찰이 있었고, 국내 보수 세력의 반발도 컸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국의 일방주의로 인한 반미정서와 함께 대미관계에서 보다 자율성을 확보하라는 여론의 요구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세기 한미동맹의 관성은 위력적이었다. 탈냉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미동맹의 약화를 곧 생존의 위기로 직결시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사람들이 집권에 성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적 행태도 결과적으로 이를 도운 셈이다. 그동안 어렵게 외줄타기 하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던 한국 외교가 다시 이전으로 회귀하는 순간이었다.

부시 행정부 때와는 달리 미국의 압박이 강하지 않음에도 한국 외교는 스스로 미국편에 바짝 붙어 북한과는 철저히 단절하고, 러시아와 중국은 홀대하면서 신냉전 구도를 촉진했다. 초강대국이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교활할 정도의 외교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만 잘 지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치명적일만큼 단순한 외교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1950〜60년대 소련과 중국의 경쟁구도를 적절히 이용하는 소위 '시계추 외교(pendulum diplomacy)'로 상당한 실리를 챙겼던 적이 있다. 약소국의 경우 가능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외교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캐스팅보트가 먹혀들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초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동북아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사항은 분명한데, 그것은 명확하게 한쪽 편에 서는 것이다.

시리아 북쪽과 터키 남쪽에 걸쳐 있는 타우르스(Taurus) 산맥은 유명한 독수리 서식지라고 한다. 이들 독수리는 고도가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지역을 수시로 갈매기들이 지나간다. 갈매기들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고, 독수리는 그 소리를 듣고 쫓아가 잡아먹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독수리의 공격을 아는 똑똑한 갈매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비행하기 전에 돌덩이를 집어물고 산을 넘어간다고 한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이런 노련한 갈매기가 되어야 함에도 지금 정부의 외교는 너무 쉽게 자신을 노출하고, 가진 패를 다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하다.

위기를 먹고 사는 미국의 존재론적 딜레마

우리는 이 시점에서 동북아에서 가지는 미국의 존재론적 딜레마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이 물론 세계적 패권이므로 영향력이 어디든 닿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동북아 역내국가가 아니기에 최대치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안정보다는 위기 상황이다.

그것은 미국이 맺고 있는 군사동맹 구조의 메커니즘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군사동맹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질 때는 바로 위협이 확실한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은 장기간 패권 체제로 인해 비대해진 군사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위기를 생산하고 무기를 파는' 사이클이 정착되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서의 중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해보이기까지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충분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에서까지 군사충돌을 바라지는 않겠지만, 현재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 상황은 미국에게도 전적으로 손해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한반도를 진앙지로 삼아 동북아에 급속하게 신냉전 구조가 부각되는 이유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가 가장 절실한 국가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행위자보다 대북 강경책에 더욱 집착하면서 안보 위기를 키우는 것이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을 실용정부로 규정했지만,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오히려 매우 이념적이며, 대북정책에서도 여지없이 냉전적인 편가르기에 몰두한다. 북한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에게 더욱 편향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분단 관리에서 이제 통일준비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선언하며 통일세를 언급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통일론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김영삼·노태우 정부의 '3단계론'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여기에서 읽혀지는 것은 통일에 대한 진정성보다는 김영삼 정부 당시 불거졌던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이다. 아직은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점들이기는 하지만 이를 연결하는 선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그것은 현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1990년대 초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예측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편에서는 최대의 라이벌인 소련이 무너졌기에 당연히 미국의 유일 패권 시대가 온다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이 무너졌지만 중국과 유럽연합(EU)을 포함해 새로운 파워중심들이 부상하면서 다극체제의 시대가 온다는 주장이 맞서면서 국제정치학계에서도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미국이 90년대 줄곧 엄청난 경제 성장을 하면서 전자가 승리하는 듯 보였다. 70년대 한차례 겪었던 패권침체론을 다시 한 번 보란 듯이 이겨내고 비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20년이 지났고, 이번에는 최대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흔들리고 있다. 미국 패권이 이번에도 침체론을 딛고 일어설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에 상관없이 역사상 어떤 패권국가도 영원할 수 없고, 미국이 이번 위기를 다시 넘긴다 해도 과거와 같이 절대적인 유일패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새벽의 미명과 황혼의 어스름은 조명도에서는 일치할지 모르지만 다가올 미래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미국의 패권이 새벽을 지나고 있는지, 황혼에 접어들고 있는지 볼 줄 알아야 하는데 현 정부는 새벽이라고만 단정하고 미국에 모든 것을 거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한국 외교는 제발 돌이라도 물고 이 동북아라는 험한 산을 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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