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20일부터 나흘간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일본에서 또 한 차례의 '납북 이벤트'가 벌어질 전망이다.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은 김현희가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20일부터 23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납북 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인 요코다(橫田) 메구미 씨의 부모 등 납북자 가족을 만날 계획이라고 17일 보도했다.
김현희는 1990년 3월 사형판결(그해 4월 특별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범을 제외하고 국내외에서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사람의 입국을 불허'하는 일본의 입국관리난민법상 입국이 어렵다.
그러나 일본 법무상(장관)이 특별한 사정을 인정해 김현희에게 '입국 특별허가'를 발령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또 일본 경찰은 김현희가 범행 당시 일본 이름의 위조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용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해야 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를 초청한 만큼 이를 유보하기로 했다.
김현희는 23일까지 도쿄에 머물면서 요코다 메구미 씨의 부모와 또 다른 납치피해자인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씨의 장남 등을 만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1978년 북한에 납치된 뒤 2년가량 김현희와 함께 살며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라는 인물을 다구치 야에코로 추정하고 있다.
김현희는 작년 3월 11일 부산에서 다구치 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와 오빠인 이즈카 시게오 일본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일본 민주당 정부는 작년 8.30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뒤 납북자에 대한 정보 수집과 납북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내 여론 조성을 위해 김현희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초청을 추진했고 황 씨는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했다.
김현희는 이번 일본 방문에서 다구치 씨가 1987년에도 일본어를 가르쳤고 아직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그가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무덤은 저수지 제방이 쓸려 내려가 찾을 수 없다고 밝혔었다.
김현희는 또 요코다 메구미 씨가 사망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가 또 한 차례 사회적 파장을 불러 올 것으로 보인다.
김현희의 방일은 한일 양국의 정보 당국간 협조에 의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이 문제는 외교부에서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작년 3월 부산 면담 당시 "납치자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정부의 입장에 따라 이번 면담을 주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현희가 도쿄를 방문해 납북자 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하는 게 적절하느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아무리 인도주의 활동이라고 해도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리스트가 나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청의 주체가 일본 정부지만 이에 한국 정부가 협조하는 것은 KAL 858 희생자 유가족들에 대한 도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김현희가 일본에서도 '노무현 정부가 KAL기 사건을 왜곡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할 것인지도 주목거리다. 김현희는 그간 '노무현 좌파정권이 KAL기 사건을 북한의 테러가 아닌 전두환 정부 시절 안기부의 조작 사건이라고 말하라고 강요했으나 거부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든 국정원 진실위원회는 2006년 8월 'KAL기 사건은 북풍을 노린 안기부의 자작극' '안기부가 북한의 폭파 계획을 알고도 방조'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김현희가 폭파범이라는 기존의 사실을 재차 확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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