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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세계경제, 땜질 처방으로 회생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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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세계경제, 땜질 처방으로 회생 불가능

[월러스틴의 '논평'] 세계공황 속의 불가능한 선택들

세계공황 속의 불가능한 선택들

세계의 지도자들과 석학들이 세계 공황이라는 현재의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가운데 - 이들은 공황이라는 단어조차 쓰려 하지 않는다 -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차례차례 불가능한 선택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날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바로 지난 달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자.

미국의 5월 실업률은 근래 최악의 수준이었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기는 했다.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의 95%는 임시직인 통계조사원이었다. 민간부문에서의 고용은 당초 기대됐던 수치의 10%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 결의에 의한 경기부양자금의 투입이 이제는 더 이상 정치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재무부 채권의 구매를 중단했다. 이 두 가지는 (미국의) 고용 창출을 위한 양대 전략이었다. 왜 불가능해진 것인가? 재정적자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제는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가장 즉각적인 영향은 각 주정부 차원의 예산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경제위기의 결과 메디케이드(장애자들을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의료보험)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 비용은 주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 주정부는 연방정부의 보조금으로 메디케이드 예산의 부족분을 메워왔다. 그런데 연방의회는 이제 더 이상 (주정부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 펜실베니아의 에드워드 랜델 주지사는 연방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단만으로 주정부 재정의 적자규모가 3분 2 가량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의료 혜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교사, 경찰관, 기타 공무원 등 약 2만명을 감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경제회복 가능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영국의 경우, 데이빗 캐머런 신임 총리는 "오늘날 영국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부 차입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의 제안을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으로 요약했다: "캐머런, 내핍의 시대를 선언하다" 캐머런 총리의 새 정책에 대한 <파이낸셜타임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정부지출을 그토록 과감하게 축소한다면 여러 필수적인 서비스들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정부지출 감소는 심지어 대처정부가 고려했던 그 어떤 정책보다도 훨씬 잔인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독일판 내핍정책을 내놨다. 그 골자는 즉각적인 공공지출 축소와 향후 4년간 매년 공공요금 인상이다. 또한 메르켈 총리는 항공사에 대한 증세를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전세계 항공사들은 즉각 증세는 현재의 적자상태를 벗어나 도산을 모면하려는 항공업계의 노력에 중대한 장애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독일의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는 반면 실업자들에 대한 여러 혜택은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정부들은 세계의 유효수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독일이 더 많은 재정지출을 하고 수출은 줄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최우선과제는 부채 감축이라며 이러한 요구를 일축했다.

일본의 형편은 어떤가. 간 나오토 신임 총리는 정부 부채의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서 그리스와 같은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이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세금을 늘리고,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공공지출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모든 선진국들이 초강력 내핍정책을 펴고 있는 와중에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 사태에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스페인 역시 유럽의 많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경제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부채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30일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다른 신용평가회사의 뒤를 이어 스페인의 신용수준을 AAA에서 AA+로 하향조정했다. 문제는 하향조정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바로 하루 전, 스페인 의회가 지난 30년래 최대 규모의 정부예산 축소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정부예산 축소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과도한 부채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독일 등 여러 당사자들이 핵심적으로 요구해 온 사안이다. 스페인은 이들의 요구와 압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피치는 스페인의 국가신용 등급을 강등했다. 피치의 스페인 신용등급 담당자인 브라이언 콜튼은 신용등급 강등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외 부채와 민간부문의 침체에 따른 적응과정으로 말미암아 스페인의 중기적 성장 전망은 악화될 것이다"

결국 (재정적자 감소를) 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는 얘기다. 금융투기꾼들은 세계경제의 재앙적인 추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각 국가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과업이 떨어졌다. 국가는 갖고 있는 재원은 적은 반면 (국민들, 그리고 대외 채권자들로부터의) 요구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선 돈을 꿀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대부자들이 기꺼이 꿔주려 할 때까지, 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리를 요구할 때까지 뿐이다. 세금을 거둘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면 기업들은 증세가 기업의 고용창출 능력을 저해한다고 반발할 것이다. (정부) 지출을 줄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출을 줄이면 모든 사람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큰 고통은 취약계층이 감당해야겠지만 말이다- 미스터 콜튼이 스페인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저해한다는 것이 큰 문제다.

사실, 정부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부문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군사부문이다. 군사비 지출은 다른 부문에의 지출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 이는 미국처럼 엄청난 군사비를 지출하는 나라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의 부채 문제 중 사실상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항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도한 군사비 지출이다. 그런데 지구 상의 정부 중 군사비의 심각한 축소를 단행할 용의가 있는 정부가 과연 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하는 식으로 그저 마구잡이 시도를 할 뿐이다. 작년에는 경기부양, 올해는 부채 감소, 아마도 내년에는 증세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전반적인 상황은 계속 나빠질 뿐이다.

중국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모건 스탠리의 예리한 분석가인 스티븐 로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정부가 "민간부문 성장을 위한 경기부양책을 쓰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 경우 노동임금의 상승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이는 생산성 향상에 의해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현재까지 이러한 정책을 택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중국에게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정책 목표이다. 게다가 (중국역할론의 신봉자라 할 수 있는) 로치마저도 한 가지 큰 걱정을 갖고 있다. (중국경제가 활성화될 경우) 워싱턴의 반중감정(China-bashing)이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로 이어질 것이라는. 나 자신은 미국의 경제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그(미국의 대중 무역제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

통화주의자가 됐건, 이런저런 형태의 케인즈주의자가 됐건 여기 저기 조금씩 땜질 하는 식으로는 이 모든 곤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현재 세계가 갇혀 있는 경제적 곤경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세계체제의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 그러한 변혁이 오기는 와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오느냐 하는 것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 문제 칼럼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 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6월 15일 283회 논평 원문보기)

* '( )'는 월러스틴의 표기이며 '[ ]'는 번역자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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