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말 개최된 중국의 18차 당(黨) 대회는 새로운 지도부의 출범과 함께 "중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란 문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의적 요구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회의일정 동안 '개혁'을 누누이 강조함으로써 중국인들의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새로운 지도부의 탄생을 대외적으로 공포한 후, 최근 개최된 중국의 최고 정치 이벤트인 '양회(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는 다급해진 개혁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중국에서 '개혁'은 시대와 사회 각 영역을 막론하고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였다. '개혁'은 장기간 지속된 경제발전에 따른 불균형과 부조화 그리고 지속성장을 저해하며 사회적 모순을 첨예화하는 각종 도전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을 어떻게 대응하고 처방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소위 개혁에 대한 '방향성'의 문제로 수렴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대한 논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1978년 12월 제11기 3중 전회 이후,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시장화, 법제화 그리고 민주화의 개혁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논쟁은 시장화, 법제화와 민주화의 개혁 방향이 후퇴할 경우, 사회 전반에 대한 정부의 통제 및 관리를 강화하여 사회적 자원에 대한 권위적 배분에 정부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 지난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개막했다. ⓒAP=연합뉴스 |
이와 같이 서로 상반된 개혁 방향에 대한 논의가 지금,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하는 새로운 지도부의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가 18차 당 대회가 선택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방향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와 구속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중국인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최상의 선택이며, 이러한 선택이 중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대적 의의 혹은 역사적 의의라 주장하는 이 선택이 과연 중국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유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는 이러한 선택의 성패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구호에 그친 개혁은 용납될 수 없다. 이미 이와 관련된 메시지는 여러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철저한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시장화와 법제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해야 하고, 경제와 정치체제에 있어 포용성이 우선시되어야만 한다. 또한 권위적 발전 모델에서 민주적이고 법에 의거한 발전 모델로의 전환과 이행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이 실현되었을 때, 비로소 중국 사회가 직면한 경제구조의 비합리성, 자산의 거품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행위 및 보편화된 권력추구 현상 그리고 현격한 빈부 차이 등의 주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새로 등장할 지도부와 전국 인민대표들이 현재 분주히 마련하고 있는 개혁 방안들은 분명 중국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반영한 정확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
최근 중국은 두 가지 중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 내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문제이며, 이미 그 실효적 적실성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조방(粗放)형 경제성장 방식에 대한 수정 즉, 기존의 경제발전 모델에 대한 전환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이다. 이 두 가지는 지속적인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선부론'에 입각해 추진되어 온 지난 30여 년간의 개혁개방정책이 고속성장을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도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들 문제에 대한 해결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20세기 말에 수립된 구조적 그리고 체제적 문제로부터 기인했고, 당시 이미 상당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구(舊)체제가 낳은 구조적 문제점들이 각 영역에서 나타났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묵인하거나 혹은 간과하는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은 기득권의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모기업까지 이르지 못했고, 개혁이 주춤한 사이 각종 문제들로 인한 사회·경제적 모순은 더욱 심화되었다.
사회·경제적 모순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중국 지도부는 개혁의 방식과 방향을 모색하였고, 그 결과가 18차 당 대회에서 그 윤곽이 드러났다. 경제개혁의 핵심을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개혁 방향을 견지"하고,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잘 처리"하며, "시장이 보다 높은 수준에서 그리고 광범위하게 자원배분의 역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민주정치의 제도화를 가급적 빨리 추진"하며, "정부정책과 업무의 법치화 실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진단과 해법은 명확했고, 또한 정확했다. 이와 같은 전면적인 개혁안은 이미 당내 의사일정에도 포함되어 있다.
18차 당 대회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회는 중요 분야에 대한 개혁이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되며, 새로운 지도부의 구성과 더불어 개혁을 재점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은 아직 구체화되지 못한 실정이다. 중국은 1984~1988년과 1991~2001년에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 과거의 경험을 미뤄볼 때, 중국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혁의 목표를 확정해야 하고, 중점개혁 방안과 개혁의 종합적인 로드맵(road map) 마련이 선행되어야 하며, 각종 저항을 극복하고 각 분야에서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
현행 시장경제체제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지극히 민감한 거대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을 가진 시스템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임기응변식의 미봉책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설계와 시공을 각각 진행하며, 필요에 따라 시공과 설계를 자기 방식대로 처리해서는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의 시장경제는 각 영역 간 긴밀한 상호 협력과 조율을 통해서만이 시스템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중국의 지도부가 종전의 경제성장 모델로는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하다고 인식했다는 점을 전제로 볼 때, 중국은 지금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직면한 개혁의 필요성은 지도부가 판단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매우 심각하고 절박한 상태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소외되어 왔던 기층민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개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요한 상황이다. 만약 시진핑(習近平)이 주도하는 새로운 지도부가 개혁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개혁 추진을 위한 로드맵 및 시간표를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미래는 낙관하기 힘들 것이다.
개혁의 성패는 개혁 로드맵의 구체화로만 가능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는 사회의 각종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개혁방안을 하루빨리 구체화해야 한다.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및 정치 영역에 존재하는 첨예한 모순들에 대해 단순한 미봉책만을 사용한다면 중국에서의 개혁 논의는 끊임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통해 중점 개혁안을 마련하고 이를 종합하는 구체적인 개혁 로드맵과 시간표가 중요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전인대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중국의 신·구 권력들. 왼쪽부터 후진타오 국가주석,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 시진핑 총서기 ⓒAP=연합뉴스 |
2012년 중국의 지도부는 각종 스캔들과 부패문제 등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점이다. 현행 제도와 체제에 기초한 지대추구(rent seeking)로 사회적 자원은 계속 낭비되고 있어, 부정부패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사회적 모순이 점차 확대·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영점공사(零點公司)의 조사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인들은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된 정치·경제적 문제에 주목했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이런 관심들은 공개 자료의 순위로부터 벗어났다. 이는 부정부패가 감소하여 사회적 관심이 저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서의 개선 여지가 불투명해져 더 이상 관심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들 즉, 실업, 주택, 환경, 교육 및 치안 등의 문제들로 변화하였고, 2007년부터는 물가상승과 주택, 의료, 식품, 의약품의 안정성과 재취업 및 사회보장 등의 문제들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관심이 점차 경제성장과 구조조정 그리고 사회문제 등 보다 광범위한 영역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최근 중국인들의 주요 관심은 정부의 직권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는 시장 감독과 국유부문의 활동범위 제한, 행정 심의 강화 등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요구와 과거의 경험을 미뤄볼 때, 개혁에 대한 총체적인 방안 마련과 집행은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업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정책조치들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란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새 지도부가 기득권자들의 이해와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산관학 각계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협력 체계를 대안적 방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즉, 대중의 지지를 통해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시진핑 체제가 주장하는 개혁의 핵심이고 내용이다. 비록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개혁의 방향만은 명확하다는 점에서 중국의 개혁에 대한 기대는 아직 유효하다고 하겠다. 다만 개혁의 실현을 위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점은 중국인들의 인내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섣부른 판단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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