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도 금년은 평범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지난 21세기 첫 10년을 성찰하고 다가올 21세기 새 10년을 기획하고 전망해야 한다. 모든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듯 2010년은 국치 100주년과 한국전쟁 60주년을 거쳐 민주주의 시작인 4.19 혁명 50주년과 광주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건국과 전쟁 그리고 민주화를 일구어 낸 굵직한 사건들의 연장선에 금년이 자리매김된다고 할 때 더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6.15 10주년의 의미이다. 바로 10년 전 우리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극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은 한반도와 우리 민족에게 결정적 전기가 될 것이다. 독일이 1970년 역사상 최초의 동서독 정상회담을 갖고 신동방정책의 추진과 동서독 기본조약의 지속으로 결국 20년 후인 1990년에 통일을 이루었음을 우리는 목도한 바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20년이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극적인 계기가 도래할 것임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지난 10년의 화해·협력은 분단 이후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전변시킨 일대 사변이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적대와 대결의 반세기를 지나서야 남북은 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되었고 이후 남북관계는 화해와 공존 그리고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진행시켰다.
▲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던 1998년 11월 관광객을 실어 나를 '금강호'에서 전야제가 벌어지는 모습. 남북관계의 '상전벽해'를 상징하는 하나의 장면이었지만 현재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어 있다. ⓒ연합뉴스 |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10년 동안 남북관계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전벽해 자체였다. 당국간 회담의 종류와 숫자는 물론이고 상호 왕래하고 접촉한 남북 인사의 숫자가 급증했다. 교류와 접촉이 늘었을 뿐 아니라 상호 교역과 투자 등 남북의 경제협력도 괄목상대할 정도로 성장했다. 금강산 관광으로 남북협력의 물꼬를 열더니 개성관광과 개성공단이 자리잡으면서 상시적인 남북교류와 협력이 정착되었다.
지난 10년의 변화된 남북관계의 단적인 상징은 통일부 홈페이지 좌측에 표시되는 금일 북한 지역 체류 차량과 인원 숫자 표시일 것이다. 단절과 대결의 분단 상황이 일상적인 교류와 협력의 남북관계로 변화되었음을 알리는 결정적 사례이다.
그러나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고, 지난 2년 동안 남북관계는 상호 적대와 갈등의 과거로 회귀하고 말았다. 정상회담 이후 쌓아 온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무력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강경 대 강경의 극단적 대결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남북관계는 교착 속 정체 국면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다행히 지난 연말 북미관계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고 남북관계 역시 대화 모색의 조심스런 정세가 조성되고 있긴 하다. 특히 연초에 발표된 북의 신년 공동사설은 대미 협상과 함께 남북대화에도 긍정적 의지를 나타냈고,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연설도 이에 화답하는 뉘앙스를 보이고 있어 조건이 마련된다면 금년에 '극적인 사변'을 예감케 하는지도 모른다.
어긋난 쌍곡선
그러나 여전히 복병은 만만치 않다. 이제 막 시작된 북미협상의 향방이 우선 긍정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이 희망하는 평화체제 논의가 동시에 병행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핵 폐기의 본질적 목표와 북미 적대관계 해소라는 근본적 목표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북미 양측이 상호 신뢰에 의해 구체적 실천 이행에 나서야 한다. 십 수 년을 끌어왔던 이 복잡한 의제들이 쉽게 진전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미 협상이 원만히 진행된다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남북관계 순항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이명박 정부와 북한 당국 사이에는 풀어야 할 구원이 많다. 북은 신년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동시에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존중을 조건으로 부과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상시 대화기구와 남북관계의 전기 마련을 피력했지만 동시에 비핵화의 진전을 사실상 조건으로 걸어놓고 있다.
지난해에도 남북관계는 몇 가지 현안이 풀리는 형국이었지만 근본적으로 남북의 신뢰와 진정성이 확인되지는 못했다.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이 임진강 방류 사건 및 대청 교전과 공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남이나 북이나 상대방의 일방적 요구를 굴복하면서까지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되어있지 않다. 여전히 남북관계 정상화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다.
2000년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쌍곡선을 돌이켜보면 남북관계가 순탄할 때 북미관계가 갈등으로 치달았는가 하면 역으로 북미 협상이 진전될 때 남북관계가 경색되곤 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상호 선순환의 협상과 협력으로 병행했던 적은 오히려 짧은 기간이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갈등적 길항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 10년은 더딘 진전을 해야만 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조차도 그 해 말 공화당 부시의 당선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허니문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북미관계는 2002년 북핵 위기 등장 이후 북미 적대로 악화되었고 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2007년 북미 직접협상이 성사된 이후 2.13 합의가 도출되고 북핵 문제가 진전되면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에 들어섰지만 이도 잠시뿐, 이번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남북관계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해 2009년은 오바마 민주당 정부가 새로 출범했지만 북한과 미국의 기싸움으로 전반기 내내 갈등으로 점철하더니 겨우 하반기 들어서야 북미 양자회담이 시작되었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서먹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지난 시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어긋남을 반추해보면, 남북관계가 또 다시 경색됨으로써 어렵게 마련된 북미 협상 진전의 발목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남북관계가 진전됨으로써 진행 중인 북미 협상을 촉진하고 기여하게 될 것인지가 바로 금년뿐 아니라 향후 10년의 한반도를 가름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 분명하다.
1년짜리 계획에 아니라 10년짜리 디자인을 하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10년의 한반도를 보내고 이제 또 다시 새로운 10년의 한반도를 시작하는 지금에 우리는 단기적인 눈앞의 이익과 정세에 매몰되기 보다는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비전과 목표에 눈을 돌려야 한다.
행여라도 앞으로 10년을 북한 체제의 심각한 위기로 전제하고 주관적 기대를 내세워 급변사태와 북한 붕괴만을 희망하는 것이라면 이는 잘못된 10년 전략이 될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 북한과의 협력과 협상보다 오히려 북한 내부의 동태 분석과 급변사태 예측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관점에서 향후 10년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흐름이 있다면 이 역시 다가올 10년의 한반도를 불안으로 이끄는 잘못된 전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정부에서 북한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아닌 조만간 붕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북접근을 한 탓에 결국은 제네바 합의 이행도 북미관계 진전도 불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로 인해 제2의 북핵 위기가 터지고 북미가 다시 원점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소모적 협상에 나서고 있음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990년 독일 통일을 보면서 당시 김영삼 정부가 대북 화해·협력의 시작은 뒤로 한 채 북한 붕괴 후 흡수 통일이라는 허망한 희망에 사로잡혀 대북 강경에 몰두했음이 탈냉전의 호조건과 남북 기본합의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남북관계 파탄을 결과하고 결국 아까운 시간낭비만 하고 말았음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독일 통일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이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독의 서독 편입이라는 역사적 결과는 1970년 동서독 정상회담과 이후 20년 동안 지속된 서독의 대동독 정책 즉 화해·협력의 신동방정책의 오랜 축적의 성과이자 결과물이었다.
한반도의 미래와 통일 한국을 상정한다면 지금 2010년 새해 벽두에 필요한 것은 북미 협상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의 동시적 전략과 의지일 것이다. 1년짜리 계획이 아니라 10년짜리 디자인으로 한반도를 그리고 통일 과정을 생각한다면 2010년 새로운 10년의 시작은 분명 북핵 진전에 의한 북미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개선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진전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되어야만 오히려 북한의 급변사태 도래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올해를 잘못 시작하면 10년의 첫 단추가 잘못 매어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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