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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설비 일의 숙련은 책상 위 문제집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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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설비 일의 숙련은 책상 위 문제집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죽음의 외주화 막기 위한 진짜 공정] ① 발전산업 노동 현실과 직접고용이 필요한 이유

2025년 태안화력 故 김충현 노동자 사망 이후 출범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는 법원 판결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를 바탕으로 한전KPS 직접고용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합의 이후 공정성 시비는 '위험의 외주화' 해결을 가리며 논의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를 △발전산업 노동 현실 △언론 프레임의 문제점 △법·제도적 쟁점의 관점에서 짚어, 현재 논쟁을 '공정 논란'이 아닌 '생명·안전과 구조 문제'로 재구성하고자 세 편의 글을 기고합니다. - 공공운수노조

발전소의 심장부인 터빈 홀에 들어서면 지면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과 굉음이 온몸을 때린다. 섭씨 500도가 넘는 고온의 증기가 분당 3600번을 회전하며 전기를 만들어내는 이곳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작업복에 박힌 로고 외에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는 '공정'이라는 칼날은 이 뜨거운 현장의 실체를 오로지 '입사 시험 성적'이라는 차가운 잣대로만 재단하려 한다. 한전KPS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문제를 두고 "노력 없이 정규직 자리를 뺏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현장의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지난해 6월, 2차 하청업체 소속으로 홀로 선반 작업을 하던 고(故)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2018년 김용균의 죽음 이후 우리는 무엇이 변했는가. 최근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와 법원의 판결은 그 질문에 참담하고도 명확한 진실을 내놓았다. 발전소 현장을 지배하는 것은 '능력에 따른 공정'이 아니라, 책임은 지지 않고 위험만 아래로 떠넘기는 '구조적 불공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고 김충현 노동자 사고를 계기로 실시된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 결과는 충격적이다. 무려 1084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되었으며, 이 중 상당수는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조차 이행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노동부는 김충현 노동자가 수행했던 정비 업무 전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하고, 원청인 한전KPS에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이미 법원이 지난해 8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한전KPS의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하며 직접고용 의무를 명시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법과 정부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지점은 하나다. 형식적으로는 '도급'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이 모든 작업 지시와 설비 관리를 주도하는 '위장된 고용 구조'가 발전소 현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고용을 반대하는 이들이 흔히 전면에 내세우는 논리는 '공정'이다. 어려운 입사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이들이 정규직 자리를 넘보는 것은 '노력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발전정비 노동의 현장에서 철저히 무너진다.

발전정비 숙련은 책상 위 문제집이 아니라, 수만 개의 부품을 직접 만지고 설비의 미세한 진동을 몸으로 익히며 형성된다.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의 김충현 노동자 역시 원청의 요청에 따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선반 작업을 수행하던 중 변을 당했다. 현장에서는 갓 입사한 정규직 사원이 십수 년 경력의 하청 노동자에게 실무를 배우는 일이 일상이다.

한전KPS의 교육·경력 체계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현장에서 실현해 온 이들은 다름 아닌 하청 노동자들이다. '능력이 부족해 정규직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그들의 숙련된 노동을 저렴하게 이용해온 '위험의 외주화'가 본질이다. 시험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수십 년의 숙련과 헌신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불공정한 폭력이다.

김충현 노동자의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경찰과 노동부는 공통으로 '2인 1조 작업 원칙 미준수'와 '안전장치 부재'를 지목했다. 왜 이런 기본적인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는가.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업무 지시 권한을 가진 원청은 책임을 회피하고, 권한이 없는 하청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을 후순위로 미루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김충현 노동자가 사용한 선반기계는 원청의 자산이었지만, 그에 대한 안전 관리 책임은 1년마다 바뀌는 2차 하청업체에 떠넘겨져 있었다. 이러한 '책임의 공백'이 결국 노동자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직접고용은 단순한 고용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명확히 하고, 단절된 숙련을 통합하여 안전한 정비 체계를 구축하는 가장 확실한 안전 대책이다.

그렇게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8월에 출범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는 한전KPS 하청 노동자 전원을 직접 고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다단계 하청 구조가 안전 관리의 공백을 만들고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한 결과였다.

그러나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한전KPS는 합의에 반발하며 이행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용 불안과 죽음의 문턱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3월 17일, 한전KPS 인도 사업소에서 보일러 설비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잿더미에 매몰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충현 노동자가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현장에서 사망한 것과 같이 인도에서도 50대 팀장이 '2인 1조 작업' 원칙이 무시된 채 밀폐 공간인 호퍼 내부를 홀로 점검하다 사망했다.

정규직 사고와 비정규직 사고를 가리지 않고 한전KPS는 누가 죽던 책임을 짊어지지 않는다. 한전KPS 측은 사고 직후 "인도 법인이어서 국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았다. 공공기관이 해외 사업장에서조차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방치하고 법적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법원과 노동부의 명령에도 사측은 '공기업 효율화'와 '배임' 핑계를 대며 항소로 시간을 끌고 있다. 노동자의 생명을 비용으로 계산하며 법의 판단마저 거부하는 행태가 과연 공기업이 말하는 '공정'인가.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는 임기를 이미 넘긴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전KPS의 김홍연 사장이 있다. 지난해 6월로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후임 인선 지연을 빌미로 재임 기간을 연장하며 무책임 경영의 정점을 찍고 있다. 임기를 마친 뒤에만 벌써 두 건의 중대재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책임경영을 실천해야 할 수장이 오히려 조직의 쇄신과 합의 이행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말뿐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책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한전KPS 사장과 최고 경영진이 직접 책임지고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실질적인 업무 지시와 설비 관리 권한을 가진 이들이 처벌받지 않는 한, 현장의 '2인 1조' 원칙 미준수와 안전장치 부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홍연 사장은 거듭된 사망 사고와 합의 미이행에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

직접고용은 단순한 처우 개선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현장에서 숙련을 쌓아온 노동자들이 원청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안전을 요구하고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가짜 공정' 뒤에 숨어 노동자의 생명을 방치하는 공공기관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 한전KPS는 법원 판결과 협의체 합의에 따라 즉각 직접고용을 이행하고, 정부는 무책임한 경영진을 엄중히 문책해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바로 세워야 한다.

▲태안화력발전소.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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