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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아우성과 상실을 남기고 한반도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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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아우성과 상실을 남기고 한반도는 어디로

[한반도 브리핑] 2010년 한반도, 변화인가 현상유지인가

"그 많은 아우성과 그 많은 상실을 남기고 너는 갔다."

저명한 법조인인 한승헌 변호사가 오래 전에 썼던 "어느 제야(除夜)에"라는 시의 첫 귀다. 2009년도 여느 해 못지않게 수많은 아우성을 남겼고 끝없는 상실을 남겼다. 지난 1년을 아우성과 상실의 시대였다고 규정한다면 한반도 정세만한 것이 또 있으랴.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으로 북미관계의 순조로운 진전이 예상됐지만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 2차 핵실험 등으로 미국을 도발적으로 선제 압박하는 전략으로 나왔다. 곧이어 나타난 유엔 안전 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로 긴장감이 날로 팽배해 갔던 것이 2009년의 상반기 역사였다.

아우성으로 끝날 것 같았던 북미관계는 7월 북미 접촉,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다시 대화국면으로 급선회했다.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북으로 북한의 대화 재개 의지를 다시 확인했고,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특사 방북으로 북미관계는 대화 재개의 가능성을 품은 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한반도의 정치적 국면을 바꿀만한 거대한 변동 가능성을 품은 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북미관계가 곧장 순항했더라면 자칫 외교적 고립무원의 위험까지도 감수할 뻔했던 우리 정부로서는 1년의 시간은 번 셈이 되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학습효과를 주었는지는 내년 남북관계의 진전을 두고 보면서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2009년의 남북관계에는 여전히 "수많은 상실"이 남았다. 북한의 대미 선제 압박전술로 인해 국제사회의 분위가 싸늘해지자 지난 2년간 유지해 왔던 대북 전략이 탄력을 받은 듯 보였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한미공동비전에 "확장된 핵억지" 명문화 등으로 북한을 압박했으며, 결국 서해상 군사충돌로 최대치의 압박감이 표면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북미관계의 전환과 함께 북한도 유화적 태도로 바뀌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초청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문제에 물꼬를 터 보려 했고,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특사조문단을 보내 이명박 정부와 대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 정부 일각에서는 그러한 북한 태도 변화를 지난 2년간 유지해 왔던 압박전술의 승리라고 자축했겠지만 말이다.

북미관계의 대화국면이 가시화되자 이명박 정부는 소위 "그랜드 바겐"(혹은 원 샷 딜)을 제안하기는 했으나 대북 접근방식에서 한미 간 충분한 공감대가 없는 것 같다는 비판도 나왔고, 구상안의 본질이 '비핵·개방·3000'의 틀을 되풀이 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설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던 것이 2009년 남북관계였다.

이처럼 작년에 이어 올해의 남북관계도 "수많은 상실"을 남긴 한 해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12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보낸 신종플루 치료제가 한반도의 오랜 '감기'를 치료하는 훌륭한 처방이 될지, 2010년 북미관계의 진전에 따라 유연한 실용주의가 점화되어 남북관계에도 해빙의 빛이 비치게 될지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들어 본다.

현상유지 세력들은 역사부터 읽어야

이제 "아우성과 상실"의 제야를 넘어 새로운 한 해로 들어서려 한다. 2010년의 한 해 동안 현상의 변화에 따라 남북 당국의, 그리고 주변국들의 수많은 정책과 전략들이 한반도 역사 위에 다시 켜켜이 쌓일 것이다. 그리고 정책과 전략이라는 이름 뒤에 도사린 인식 체계, 변화를 위한 발상전환, 오랜 증오와 불신, 각종 이익 계산법의 논리도 함께 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높이 나는 새가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듯, 한반도 역사의 상공 위로 높이 떠서 한반도의 먼 어제와 먼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정책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 대응이라는 근시안적 논리에서 한 번 쯤 벗어나 보라는 주문을 담은 기대다. 정책이 현실임에 틀림없지만 대응논리의 전략(Tit-for-Tat)에만 몰두할 경우 방향감을 상실하기 쉽다는 지적도 귀담아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 통일전망대에서 한반도 모형을 보고 있는 어린이들 ⓒ연합뉴스
한반도는 지금 역사의 어떤 지점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가끔 이런 상상도 해본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이 흐른 후인 21세기 중반, 세계사 책에는 한반도가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1945년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시작되었던 독특한 양식의 냉전의 세계사는 한반도에서 마침내 냉전적 대립이 종식됨으로써 냉전의 한 시대가 마침내 종언을 고하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20세기 후반 탈냉전의 조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의 군사대립과 분쟁은 동북아 지역질서를 대립의 시대로 회귀시킨 원인으로 남았다."

어떤 세계사의 기록으로 남겨질지는 지금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남북한 당사자들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한반도에는 냉전을 종식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보려는 동력과 오랜 인식적 관성이 주는 두려움 때문인지 분단과 대립의 현상유지 동력이 팽팽하게 맞물려 있다.

당장 2010년에 전개될 북미관계만 해도 그렇다. 북미관계는 양자 및 다자 회담 재개, 핵문제 해결 의사의 표명과 확인, 연락사무소 설치, 경제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외교관계 정상화 등의 수순으로 진행될 길을 열어두고 있다.

그것을 주도해 나가는 인식은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 낸다. 북미관계의 안정적 변화가 동북아 질서의 안정성을 가져오고 그것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간주하는 중국과 일본의 전략가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촉진시키려 할 것이다.

반면, 납치문제의 선결을 외치는 일본의 일부 정치가들, 북미관계 정상화가 오히려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는 중국의 전략가들, 핵을 포기하는 것이 미국의 술수에 말려드는 것으로 판단하는 북한 군부 일각의 판단, 남북관계에는 여전히 대립과 압박전술이 핵심이며 그것을 통해 북한을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한국 내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은 한반도를 제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현상유지 동력의 원천이 된다.

그것은 변화 동력에 제동을 걸고 대립의 시대로 회귀시키는 힘으로 작동할 것이다. 대립중심의 구도는 북한에게 극렬한 저항 의지로 되돌아온다. 조지 부시 행정부 기간 동안 나타났던 그러한 구도다. 대립구도는 불안감과 위기를 증폭시키게 된다. 그리되면 한반도가 동북아 대립의 중심지로 회귀될 것은 명백하다.

변화는 역사의 어느 시점이나 존재한다. 어떤 시대이건 우리는 전환기를 시대를 살아간다. 다만 그 감지되는 강도에는 차이가 있다. 다가오는 2010년에는 한반도에 거대한 전환이 시작될 것 같다는 생각은 북미관계의 변화 추이를 고려한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정책기조나 전략구상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학습의 기간을 가진 만큼 기대감도 가져본다. 그리하여 올 한 해 그득했던 아우성과 상실의 시대를 넘어가 보자.

희망을 안고 새해를 시작해보자. 희망은 한반도의 역사적 궤적을 면밀히 읽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새로운 한반도의 역사를 열어가는 나침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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