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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재계, 박근혜 정부에 도전장 내미나?

한경연 연구원, 경제 민주화 비판…재계의 불편한 심기와 일맥상통

새 정부 출범을 며칠 앞두고 '재계의 입'으로 알려진 경제 연구 기관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 공약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논문이 나왔다. 재계가 이미 상당히 후퇴했단 비판을 받는 박근혜식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마저 거센 공격을 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열린 '2013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의 송원근 선임 연구원은 경제 민주화가 경제 활력을 저하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낮춘다는 내용의 논문을 공개했다.

논문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순환출제 규제, 대기업 진입 제한, 공정거래를 위한 제재 강화, 금산 분리 정책, 재벌 총수 사면권 제한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이들 경제 민주화 정책이 "기업과 경제의 혁신 유인을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순환출자 규제와 대형마트 규제에 대해서는 경제 민주화에 기여하는 정도가 낮은 비효율적 규제라고 비판했다. 기업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좁힌다고 기업 가치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며, 순환출자 규제로 기업의 신규 투자 시도만 어렵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또 대형마트 규제는 지역 유통산업 발전을 저해하므로 비효율성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송 연구원은 지적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에 대해서는 2006년에 이미 폐지된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했다. 앞서 새 정부는 생계형 서비스업의 적합업종을 조속히 지정하고 지정 범위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송 선임 연구원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해 '수준 이하'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면 해당 분야의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기업이 국내 중소기업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지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고 고발 요청 권한을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조달청장에게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고발권이 남발돼 과잉 제재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 선임 연구원은 △재벌 총수의 사면권 제한 △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형량 강화 △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 집단소송제 도입 등이 경제 활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새 정부는 '사면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엄격하게 상신하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송 선임 연구원은 금산 분리 강화가 자본시장 발전의 발목을 잡으며 경제 역동성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 정부의 금산 분리 강화 방안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되, 일정 요건 충족 시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하고,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2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이 나란히 앉아 있다. ⓒ연합뉴스

재계의 반대 논리, "민주화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전체주의"


아울러 논문은 기업 전반에 대한 규제 강화가 경제 민주화를 대표하게 되면 정부 개입과 관료적 관리가 개인의 일상생활까지 옥죄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화=전체주의'라는 이 같은 도식은 그간 재계가 경제 민주화를 비판할 때마다 내세웠던 단골 논리다.

이번 보고서를 발표한 송원근 선임 연구원은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비슷한 내용의 칼럼 <경제 민주화와 관료주의>를 내놓은 바 있다. 칼럼에서 송 연구원은 "경제 민주화를 강화할수록 정부의 시장 개입은 강해질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관료제 영역 팽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개입과 관료적 관리가 특정 집단이 아닌 개인 일상생활까지 옥죄게 될 수 있고, 민주화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전체주의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며 "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본질이고 앞날"이라고 규정했다.

경제 민주화 논의가 한창 달아올랐던 지난해 6월에도 경제 민주화 담론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한경연이 주최했던 토론회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일부 참가자들은 "경제 민주화는 민주화라는 말의 오용이며 그 귀결점은 전체주의"라고 발언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전경련은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박근혜·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에 이어 경제 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들고나오자 곧바로 '대선 후보 대기업 정책에 대한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 논평 역시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등 13개 경제 민주화 관련 제도를 조목조목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반(反)시장적 규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를 지양하라"고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재계의 경제 민주화 공격, "국민에 대한 도전"

이처럼 비록 재벌 총수가 직접 나서 경제 민주화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더라도, 재계는 전경련이나 유관 연구기관의 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나온 이번 논문의 근저에도 재계의 불만이 깔려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재계가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한 생산적인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이권 지키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컨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이하 특경가법) 형량 강화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대표적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새 정부의 특경가법 가중처벌 제도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상당히 축소됐었다"며 "그럼에도 재계가 여전히 해당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공정한 시장 경제를 스스로 거스르는 것으로, 진정한 시장주의적 발상도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의 특가법상 가중처벌 방안은 지난해 11월에는 배임과 횡령 행위를 모두 집행유예 불가 대상으로 설정했었으나, 최종 공약집을 발표하던 시점에 '배임'은 대상에서 누락됐다. 이 외에도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웠던 경제 민주화 공약들 가운데 재벌을 견제하는 공약은 상당수가 축소되거나 아예 삭제돼 '재벌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샀다. (관련 기사 보기 : 현오석-조원동으로 경제 민주화? "물 건너갔다")

위 연구위원은 "재계의 경제력 남용과 횡포를 근절하려는 경제 민주화는 이미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시대적 흐름"이라며 "재계가 이를 비판하는 것은 단지 박근혜 정부에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에 대해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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